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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짚기] 낙태죄 폐지 3년…국가는 손 놓고 무얼 하나

대체 입법 마련 안 돼 낙태는 여전히 '회색지대'
임신중지 약물도 도입 안 돼...온라인 서는 불법 판매
여성단체들, 정부와 정치권 성토 집단 시위

  • 기사입력 2022.04.11 17:52
  • 최종수정 2022.04.13 14:48

우먼타임스 = 심은혜 기자

정확히 3년 전인 2019년 4월 11일은 여성의 건강권과 관련해 역사적인 날이다.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며 낙태(임신 중지)를 전면 금지하고 위반하면 처벌하도록 한 낙태죄(형법 269조 등)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 법을 제정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낙태죄는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했다. 병원이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에게 낙태수술을 시행하는 건 이제 위법이 아니다.

하지만 대체입법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정부와 국회의 방기 속에 낙태라는 중대한 문제는 방치 상태에 머물러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낙태 전후로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돌봄이 제공돼야 한다”고 했지만 입법과 가이드라인의 공백 속에 ‘안전한 낙태’는 아직 요원하다.

정부는 임신 14주까지 전면 허용, 15~24주에서 조건부 허용, 25주부터는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시기를 제한한 데 대해 여성단체가 반대하고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는 종교계 반발로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당들도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대선 정국이 오면서 낙태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관련 입법을 하려면 이와 충돌하는 모자보건법도 개정해야 하는데 이 법 개정안도 지지부진하다. 모자보건법 14조는 부모에게 신체·정신적 장애가 있는 경우나 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 간 임신 등 제한된 조건으로만 임신 중지를 허용하고 있다.

현재 임신 중지는 병원의 자의적 판단으로 이뤄지는 상태다. 대표적인 임신중지 약물인 ‘미프지미소’ 도입 허용 여부도 아직 결정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여전히 온라인에서 불법으로 유통되는 임신중지약을 사고 있다.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이 약의 정품 여부는 불확실하다. 가격은 40만 원 안팎이다. 의사의 처방 없이 온라인에서 전문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임신중지 수술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도 불확실하다.

입법 공백으로 임신 중지가 여전히 불법처럼 취급되는 ‘회색지대’에 놓이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임신중지 비용은 병원마다 천차만별이고, 관련 진료를 거부하는 병원도 적지 않다.

10일 조속한 낙태죄 대체 입법을 촉구하며 종로를 행진하는 여성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10일 조속한 낙태죄 대체 입법을 촉구하며 종로를 행진하는 여성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급기야 3년 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외치던 여성들이 10일 다시 거리에 나섰다.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등이 연대한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기획단’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3주년을 하루 앞둔 이날 종로 보신각 앞에서 200여 명이 모여 집회를 가졌다.

이 단체는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과 조속한 대안입법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임신중단 혹은 출산에 수반되는 권리와 건강의 문제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요구한다”며 “유산유도제 미프지미소의 식약처 승인을 서두르고, 임신중단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정부와 국회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를 만들지 않고 있다. 방치된 의료 체계 속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높은 임신중지 의료비용을 부담하고 있고, 임신중지 관련 상담, 정보 제공 등의 서비스, 안전하고 비교적 저렴한 유산유도제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성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은 임신중단 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 보건기구에서 승인한 유산유도제 미프진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구한 약이 검증된 약인지 알기 어렵고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유산유도제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여성은 여전히 안전하게 임신중단할 온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경구용(먹는) 임신 중단 의약품 미프지미소의 품목 허가에 대해 아직 안전성과 국내 임상을 이유로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허가 심사를 진행 중이라 구체적인 일정을 예측해 언급하긴 어렵다. 심사과정 중 업체에 보완 자료 제출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미프지미소는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의 경구용 임신 중단 의약품이다. 지난 30년간 76개 국이 허가를 해 사용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 이 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현대약품이 국내 판권과 허가심사권을 확보해 지난해 7월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이날 집회에서 한 참가자는 “정부도, 국회도 눈치만 보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각자 할 일 좀 합시다!”라고 외쳤다. 이에 다른 참가자들은 “할 일도 안 하는 국회의원들 배지를 반납하라!” “대체입법, 지금 당장 입법하라!”는 외침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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