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도란 작가 칼럼] "예뻐요"를 거절하겠습니다.

  • 기사입력 2021.02.19 18:08
  • 최종수정 2021.02.19 18:37

얼마 전 공지영 작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읽었다. 그중 강연을 위해 타지에 방문해 처음 만난 이들로부터 “예쁘다.”라는 칭찬을 받은 작가가 ‘외모 품평’을 사양한다며 소신을 밝히는 부분이 있다. 

“제가 오늘 처음 만난 여러분에게 제 얼굴에 대해 품평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얼굴 때문에 여기 강사로 초대받은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곳은 예의가 많은 곳이라 들었습니다. 남녀 사이에 ‘예쁘다’라는 말이 어떤 뉘앙스로 쓰이는지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가 쓴 책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외모에 대한 일절 품평을 사양합니다.” 공지영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 ‘외모에 대한 일절 품평을 사양합니다’에서.

공지영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즈덤하우스)
공지영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즈덤하우스)

초면에 예쁘다고 말하는 상대에게 굳이 외모 품평을 하지 말아 달라는 작가를 보며 혹자는 ‘유난’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예쁘다는 말은 칭찬인데 뭐가 문제냐는 거다. 못생겼다, 뚱뚱하다 등 부정적인 표현도 아닌데 예쁘다, 귀엽다 등의 칭찬을 들은 상대는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만연하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외모 품평을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공지영 작가처럼 품평을 거부하지 못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초면인 상대에게 예쁘다느니 키가 늘씬하다느니 하는 소릴 듣는 건 기쁘거나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짧은 찰나에 전신 스캔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예쁘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반사적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거나 ‘과찬입니다’라고 겸손한 내색을 했다. 그 순간마다 외모 품평을 받은 게 분명한데도 삐딱하다거나 예민하다는 후속 평가를 듣기 싫은 나머지 마음에도 없는 감사를 전한 것이다. 외모 품평을 받은 자가 굽신거리면 예의 바르다는 후속 평가를 듣는 사회, 확실히 잘못된 게 맞다. 

(pixabay)
(pixabay)

여성에게 예쁘다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자면 타인의 시선으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상화이다. 이때 대상화란 신체를 하나의 사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여성에게 예쁘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질수록 여성은 타인에게 보이는 사물과 같이 인식된다. 물론 남성도 마찬가지다. 

이 현상이 악화되면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사진에 외모를 평가하는 악플이 되고, 특정 젠더나 외모가 상품화로 이어질 수 있다. 예쁘다는 표현뿐만 아니라 몸의 특징을 과장되게 평가하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꿀벅지, 동안, 극세사다리, 개미허리, 초콜릿복근 등의 표현은 전부 외모 품평인데도 불구하고 언론사의 기사 제목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한 외모 품평은 주변 지인이나 모르는 사람들의 외모에 점수를 매기거나 성희롱을 주고받던 단체 대화방의 수준과 뉘앙스가 조금 다를 뿐이다. 

‘예쁘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 행동이나 동작이 보기에 사랑스럽거나 귀엽다는 뜻이다. 확실히 칭찬이 맞다. 하지만 이 칭찬은 친밀한 사이에서만 발휘될 수 있다. 나와 상대가 이 정도의 칭찬을 주고받아도 흐뭇할 정도로 친밀함이 확실한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초면이거나 예의가 필요한 사이에는 단언컨대 외모 품평이 될 수 있다.

여전히 예쁘다는 표현은 칭찬인데 왜 나쁘게 받아들이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외모 품평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기 고백이다. 한편으로는 친밀하지 않은 상대와 가까워지기 위해 쉽게 꺼낼 수 있는 표현 중에 ‘예쁘다’가 편리하다는 사실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외모가 상품화되고 평가받는 대상으로 전락하는 분위기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습관처럼 꺼내는 품평을 중단해야 한다. 나 역시 오랜 친구들을 만나면 ‘얼굴색이 밝아졌다’라거나 ‘피부가 좋아졌다’라는 말로 친근함을 표현한다. 이는 서로 간의 친근함이 확실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서로 어색한 친인척이나 초면의 상대에게는 주로 ‘요즘 재미있어하는 일이 있다면 들려달라’거나 상대가 전하는 근황에서 대화의 물꼬를 튼다. 뜬금없는 외모 품평이 없어도 충분히 유연한 대화가 가능하기에 ‘예쁘다’를 고집할 이유는 우리 사회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만 안 본 뉴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