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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작가 칼럼] ‘어머니 연금’을 알고 있나요?

  • 기사입력 2020.12.07 18:33
  • 최종수정 2020.12.31 15:52

‘노후대비’란 장밋빛 미래일 수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일 수도 있다. 언젠가 미래에 남루하게 살지 않으려면 열심히 채워 나가야 하는 재산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재능과 콘텐츠가 겸비돼야 하는 게 이 시대의 노후대비 아닐는지. 

어쨌든 재산과 재능, 콘텐츠를 마련하려면 가장 필요한 건 역시 돈이다. 돈이야 벌면 그만인 가치라지만 아무래도 불리한 건 전업주부 아닐까? 보통의 직장인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며 일하고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이 확보되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전업주부는 퇴근도 휴가도 없이 줄곧 일한다. 그런데도 월급이 없다. 심지어 그 일이 겉으로 보기엔 너무 소소한 나머지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는 사람’으로 오해받는 안타까운 현실도 있다. 

‘전업주부=노는 사람=편한 삶’으로 오해하는 우리 사회와 달리 여성의 육아와 가사의 사회기여도를 존중하는 국가와 제도가 있다. 독일의 ‘어머니 연금(Mütterrente)’이다. 영어로 옮기면 ‘마더 펜션(Mother Pension)’이라 할 수 있다. 

(pixabay)
(pixabay)

독일에서 어머니 연금을 도입한 이유는 세대 간의 불합리한 계약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195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16세에 학교를 졸업하고 45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 쉬지 않고 노동했다. 당시의 제도로는 이들의 노후가 보장되지 않았고, 이들의 자손 세대가 노령의 은퇴자를 부양하는 일종의 사회계약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때 문제가 더욱 심각한 세대는 여성이었다. 다수의 여성이 거의 강제적으로 집에 머물면서 아이들을 양육했기 때문에 소득을 축적할 수 없었다. 독일 정부는 50년대 근로자와 여성들이 사회에 기여한 바를 존중하고자 법정연금제도를 개정했고, 어머니 연금은 2014년 시행됐다. 

어머니 연금의 내용은 1992년 이전에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한 여성에게 지급되는 연금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1992년 이전에 태어난 아이마다 다르게 계산된 연금을 매월 받는다. 연금의 이름은 어머니 연금이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에게 지급되는 연금이라 할 수 있다. 시점이 1992년인 이유는 독일이 분단국가로 소득과 복지의 격차가 심각했던 시기를 반영해서다.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전업주부로 살아온 여성과 일부 남성은 생계 능력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경력단절’이라고도 하는데, 어머니 연금은 경력이 단절되는 아픔을 넘어 생계 능력이 결여되는 치명적인 문제를 바로 보는 독일 사회의 시선이다. 

어머니 연금은 시행 첫해인 2014년 약 950만 명의 수급자가 연금을 받았다. 여기에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단계적으로 20억 유로의 예산을 추가했다. 

독일 내에서 어머니 연금이 불러온 변화는 신선했다. 한평생 아이를 키워 노령에 접어든 어머니들의 당황, 즉 생계 능력이 없어지고 키워야 할 아이들이 모두 성장했을 때 다가오는 공허와 불안이 해소된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할 걱정이 없어지고 전업주부로서 살아온 지난 삶을 정부가 인정해주니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독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듣기로는 어머니 연금이 지급되면서 가정의 주요 소득원이었던 아버지에게 의존하지 않게 돼 부부간 평등이 이뤄졌다고 한다. 혹여나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이혼한 여성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일도 사라졌다. 

독일과 달리 우리 사회는 어떻게 어머니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주로 아버지가 돈을 벌어오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어머니에게 여전히 ‘편하게 산다.’라는 편견을 갖고 있진 않을까? 반강제적으로 전업주부가 되면서 잃어버린 생계 능력을 배우자에게 의존하며 고분고분 아랫사람으로 살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독일에서 연금의 필요성을 깨닫고 제도를 시행한 지 이제 6년여다. 여성의 경력단절과 집안에 필요한 업무가 잘못 분배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지도 수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건 특정 세대의 희생을 인정하는 마음과 배우자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터전일 것이다. 

 

*작가 도란은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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