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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작가 칼럼] 40대 여성의 이직 아닌 퇴직

  • 기사입력 2020.11.28 16:32
  • 최종수정 2020.11.30 20:30

얼마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알게 된 40대 초반의 여성이 있다. 직장생활을 꾸준히 해온 그녀는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길에 들어섰다. 최소 십 년 넘게 일했을 그 직업을 그만둘 땐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 이유는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자 집에 있는 자녀들에게 돌봄이 필요해서였다. 그녀에겐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 자녀부터 사춘기에 들어선 자녀까지 두루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등교가 수월치 않으니 아이들이 맥없이 노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어느 정도 자기 생활이 가능한 큰 자녀들은 방에서 컴퓨터와 달라붙어 살 것이고, 컴퓨터가 능숙하지 못한 어린아이는 거실에서 하염없이 엄마만 기다릴 터인데 직장에서의 그녀가 오죽 고단했을까. 

그렇게 일을 그만둔 이에게 나는 참 대책 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다시 새 직장 구할 수 있지 않아요?”

질문하고 나서야 아뿔싸 싶었다. 40대에 퇴직하고 재취직하거나, 이직에 성공한 여성을 나는 몇이나 봐왔는가? 아니, 본 적이나 있는가? 본 적도 없는 유토피아의 ‘이직’과 ‘재취직’을 묻는 실언을 하다니. 상대 역시 솔직하게 답을 했다. 

“제 나이엔 이직이 어렵죠. 일 그만둔다고 하니까 남들은 부럽다고 속 모르는 소릴 하지만, 재취직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니까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직장에서 40대 이상 연령의 여성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다. 마치 사람 찾는 그림책 ‘윌리를 찾아라’의 윌리처럼 있을 법하지만 참 없다. 

20대 중후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경력이 10~15년의 베테랑이 되고, 자기만의 업무 타입이 확고해진 40대 이상의 여성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40대 남성은 경력이 쌓이면 관리자 직급으로 이직이 빈번한 데 비해, 여성에게는 이직의 통로가 왜 이토록 좁은 걸까. 물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은 성별 구분 없이 이직이 이루어지긴 한다. 다만 대다수가 일하는 직장, 즉 회사원의 삶은 유독 나이 먹은 여성에게 이직 아닌 퇴직의 통로를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필자가 직장생활을 할 때만 해도 35세가 넘는 여성 선배가 한 명도 없었다. 당시에는 선배들이 모두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한 줄 알았다. 자기 직업을 그다지 아끼고 좋아하던 사람도 업계를 억지로 떠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음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중년에 다가가는 여성의 선택지에 이직 아닌 퇴직을 내미는 세상, 누구의 문제일까? 경력과 나이를 겸비한 여성에게 높은 연봉과 근무조건을 제시하는 것보다 적당한 기초실력과 젊은 나이를 갖춘 여성에게 낮은 연봉과 충성을 제시하는 게 편해서일까. 

자꾸 영화나 드라마에서 40대 이상 여성 직장인을 눈꼬리 올라간 진한 화장과 냉정한 이미지로 그려놓으니 나이 먹은 여성 경력자가 너무 무서운 걸까. 그것도 아니면 여성 스스로 마흔이 넘었으니 할 일도, 갈 곳도 없다고 자포자기 해버린 걸까. 

‘경력단절’의 문제가 수년째 논의되고 있지만, 세상은 변함없이 굴러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개한 경력단절 여성 현황을 살펴보면 15~54세 기혼 여성 중 경력단절 여성의 비율은 2011년 19.1%였다. 마지막 통계 지표인 2019년엔 달라졌을까? 2019년 경력단절 여성의 비율은 19.2%였다. 10년 가까운 세월, 문제만 논의되고 신세만 한탄했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개인의 생애 직업발달을 ‘진로’라 한다. 세상이 나이 먹은 여성에게 길을 안 내주는 곳이었다면 애초에 진로를 규정할 때 ‘생애’라는 단어를 지웠어야 했다. 마흔이 넘었다고, 나이를 먹었다고 당연하듯 경력단절을 내세우는 사회로 인해 여성의 생애가 끝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의 생애가 어떤 숫자와 외압에 고개 숙이지 않는 사회는 고정관념을 하나씩 부수어나갈 때 당장 내일이라도 찾아올 멋진 신세계이다. 

*작가 도란은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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