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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만의 미투-‘강제키스 혀 절단 사건’ 재심] ③이후 유사 사건에 대한 판결은?

-사안마다 정당방위 인정 여부 다르게 적용
-대체로 피해자에게 유리한 판결 추세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성인지 감수성 중시

  • 기사입력 2020.05.06 17:55
  • 최종수정 2023.06.02 10:33

[우먼타임스 한기봉 편집위원]

여성이 남성의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경우가 이른바 ‘혀 절단’ 사건이다. 상대를 신체 불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결과만 놓고 보면 엄연한 중상해죄다.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56년 전의 최말자씨(74) 사건은 아마도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툰 첫 ‘혀 절단 사건’일 것이다. 성폭행 피해 당사자인 최씨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채 유죄 판결을 받은 반면, 상대 남성에게는 강간미수죄나 폭행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 사건 후로 비슷한 여러 사건이 법정에서 다뤄졌고 그때마다 뉴스가 됐다.

최씨 사건 후, 법원은 대체로 피해자인 여성의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유사한 사건들의 판례를 살펴본다.

[1988년 변월수씨 사건, 1심 유죄, 항소심 무죄, 영화가 되다]

1964년 최말자씨 사건 이후 가장 논란이 된 비슷한 사건은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1988년에 발생한 변월수씨 사건이다.

30년 전, 성폭행을 시도한 남성의 혀를 자른 그녀에게는 어떤 판결이 내려졌을까?

1988년 9월 1심은 변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1989년 1월 2심과, 그해 8월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법사상 매우 유의미한 판결로 기록된 재판이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88년 2월 32세 주부 변월수씨는 술을 마시고 새벽에 귀가하다 두 남자(20대의 대학생과 20대 무직)에 의해 두 팔이 잡힌 채 골목길로 끌려갔다.

한 남자가 변씨를 쓰러뜨리고 음부를 만지며 반항하는 변씨의 옆구리를 차고 강제로 키스를 했다. 변씨는 엉겁결에 그 남자의 혀를 깨물어 혀의 일부가 절단되었다.

혀를 잘린 남자의 가족이 변씨를 고소하며 배상금을 요구했고, 구속된 변씨는 성폭행 혐의로 그들을 고소했다.

당시 재판 기록을 보면 두 남자는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에 길바닥에 앉아있던 변씨가 식당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 부축해서 가다가 성폭행을 시도했다.

제1심 재판부인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은 두 남자의 주장을 인정해 변씨에게 폭력행위를 적용,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행장소가 상가가 밀집돼 있고, 범인이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변 피고인이 당황하거나 공포에 떨어 혀를 깨물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정당방위가 아닌 과잉방어라고 판시했다.

그리고 강제추행 치상혐의로 구속된 가해 남성 2명에게는 각각 2년 6개월과 3년형을 선고했다.

변씨에게 유죄가 선고되자 여성계는 강력하게 비판하고 긴급시민토론회도 열었다.변씨는 여성계의 도움을 얻어 항소했다. 2심은 변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구고등법원은 원심을 깨고 변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가해 남성 두 명에게는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대구고법은 “한밤중 골목길에서 건장한 젊은이들이 달려들어 양팔을 붙들고 강제로 키스를 하며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강간하려는 위기에서 혀를 물어뜯은 것은 성적 순결과 신체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판시했다. 또 “변씨가 술을 먹었다거나 밤늦게 혼자 다녔다거나 하는 사정이 정당방위의 성립을 저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변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해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들의 변호인은 변씨가 당시에 술을 마셨고, 동서와 불화가 있었다고 주장하여 변씨를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세웠다. 총각이 나이 든 유부녀에게 성적 충동을 느낄 리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변씨의 오랜 과거까지 파헤쳐지며 변씨는 ‘충분히’ 단죄당했다. 가해자측은 오히려 변씨가 자신을 유혹해 성관계를 하고 혀를 깨물어 상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변씨는 유부녀가 총각을 유혹했다는 항간의 손가락질을 견뎌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극한 선택까지 시도하는 등 여성에 대한 갖은 편견에 무기력하게 노출돼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려야 했다.

무죄판결 이후 인터뷰에서 변씨는 “재판정에서 검사와 가해자측 변호사는 내가 술을 마셨다는 부분을 계속 추궁하면서 ‘강간당해 마땅한 상황’으로 몰고 갔는데 이런 태도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판결이 여성 인권회복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기존의 판례를 뒤덮고 여성의 성과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 를 마련할 수 있는 귀중한 선례를 남겼다.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변월수 사건은 발생 2년 뒤인 1990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원작은 극작가 이윤택이 썼고 김유진이 감독했다. 김유진은 그후 '신기전' '헨젤과 그레텔' '약속' 등을 만든 감독이다.

원미경이 주인공 변월수 역으로, 손숙이 그를 돕는 변호사로, 이경영이 상대 변호사로, 이영하가 남편으로, 김민종이 성폭행범으로 출연했다. 잘 만든 여성주의 법정드라마다.

그해 원미경이 제1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손숙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김유진 감독은 1991년 제15회 황금촬영상 감독상을 받았다. 1991년 제29회 대종상에서는 우수작품상을 받았고 이영하가 남우주연상, 원미경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서울에서 5만 명이 관람했다.베를린, 모스크바, 몬트리올국제영화제와 아태영화제에 출품됐다.

법정에서의 명대사가 회자됐다.

"​사건이 일어나던 때에 이미 그녀는 여자로서 죽었고, 현장 검증에서는 그 모욕과 수치 속에서 한 인권을 가진 그녀가 죽었고, 법정에서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가 송두리째 까발려지면서 한 가정의 주부인 그녀가 죽었던 것입니다." (변호사 손숙)

"우리는 즐겼습니다. 그녀의 처참했던 과거를 즐겼고, 치욕적인 현재를 즐겼으며, 이제 결정되지 않은 미래까지 즐기려하고 있습니다." (손숙)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유죄입니다. " (손숙)

"재판장님, 만일 또 다시 이런 사건이 제게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여자들한테 말하겠습니다. 반항하는 것은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안 된다고, 재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입니다. (원미경)

"세상의 모든 진실이 예, 아니요로만 답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원미경)

변월수씨는 법정에서 치욕스런 추궁을 받아야 했다. (네이버 영화)
변월수씨는 법정에서 치욕스런 추궁을 받아야 했다. (네이버 영화)

[2012년 함께 술 마신 후 추행한 의정부 택시 기사 혀 절단 사건-여성 무죄]

2012년 10월 의정부지법 형사4부(재판장 정지영)는 함께 술을 마신 후 성폭행을 시도하던 택시 운전기사(54)의 혀를 깨물어 잘리게 한 혐의(중상해)로 입건된 여성(23)에 대해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정당방위로 판단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여성은 6월 새벽 1시쯤 술을 마시러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함께 술을 마시자고 제안했고 두 사람은 횟집에서 함께 술을 마신 후 기사의 집으로 갔다. 기사는 집에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만지고 입에 혀를 집어넣으며 성폭행을 시도했고 여성은 그의 혀를 깨물어 3분의 1이 잘려나갔다.

서로 합의해서 술을 마시고 남성의 집에 간 것과 성폭행은 당연히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안으로 본 것이다.

[2015년 남성에게 먼저 강제로 키스하다 혀가 잘린 여성 사건-남성 유죄]

앞의 경우와 달리 여성이 먼저 남성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다가 남성이 놀라서 여성의 혀에 상해를 입혔다면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2013년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23세 여성 박모씨는 일행 중 만취한 남성 김모씨가 쓰러지자 부축을 하면서 그의 목과 허리에 손을 두른 채 강제로 입을 맞췄다. 이에 당황한 남성 김씨는 저항하다가 여성 박씨의 혀를 깨물었다.

이 과정에서 혀 앞부분 살점 2cm가 잘린 여성 박씨는 남성 김씨를 중상해죄로 고소했다. 남성 김씨는 “나보다 체구가 큰 여성이 억지로 키스를 하고 가학적인 행동을 해 혀를 깨물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공개된 장소였고 다른 방법으로 거부할 수 있었다”며 남성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남성 김씨가 키스를 시도한 여성의 몸을 밀쳐내는 등의 방법으로 제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도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가해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며 “이런 행위는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7년 함께 술 마시던 남자가 추행하자 혀 절단-여성 유죄]

남성에 의한 성폭력 상황에서 여성이 남성의 혀에 상해를 입힌 정당방위가 항시 인정된 건 아니었다.

인천지법 형사12부(재판장 이영광)는 2017년 함께 술을 마시던 남성(46)이 강제로 키스를 하자 혀를 깨물어 6㎝가량이 절단되는 상해를 입힌 여성 A씨(56)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여성 A씨는 2016년 2월 밤 인천의 카페에서 알고 지내던 남성 B씨와 술을 마셨다. 그런데 남성 B씨가 갑자기 성관계를 요구했다. 여성이 거절하자 남성은 얼굴을 때리고 강제로 혀를 밀어넣었다. 놀란 여성이 남성의 혀를 깨물어 혀 앞부분이 6cm 가량 절단돼 여성은 중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인천지법 형사 12부(이영광 부장판사)는 여성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여성은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으나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 전원은 유죄 평결을 내렸고 재판부도 이에 따랐다. 배심원들은 징역 6월∼1년에 집행유예 1∼3년의 양형 의견을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입은 상해의 정도가 중하고 피해자와 합의하지도 못했다. 다만 여성 피고인은 추행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혀를 깨물었고 남성 피해자에게도 범행 발생의 책임이 있고, 여성 피고인이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 대해 여성계는 “남성의 강간미수에 대한 정당방위가 유죄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비난했다.

[2019년 여성 택시 기사 성추행한 초등학교 교감 해임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사회 경험이 풍부한’ 60대 여성은 성범죄 피해자가 아닌가]

이 사건은 강제 키스와 혀 절단 사건은 아니지만, 성인지감수성과 관련해 비판을 많이 받은 판결이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 교감 A씨는 2017년 9월 여성 택시 운전사 B씨의 가슴을 만지고 추행했다. 이에 광주시교육청은 A씨를 해임했고 A씨는 해임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교사에게는 일반 직업인보다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므로 해임조치는 비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만취해 의사 결정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했고 피해자 B씨가 즉시 차를 정차하고 하차를 요구해 추행 정도가 매우 무겁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1심과 달리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경찰 조사에서 ‘추행을 신고하려던 것이 아니라 경찰 도움을 받아 하차시키려 했다’고 진술했고 원만히 합의했다”며 “피해자가 사회 경험이 풍부한 60대 여성인 점, 진술 내용을 볼 때 피해자가 느낀 충격이나 성적 수치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밝힌 ‘사회경험이 풍부한 60대 여성’이라는 말이 큰 논란을 불렀다.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논리다”, “나이 든 여성은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인가”, “수십 년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은 많이 맞아서 덜 아파도 되는가”,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강화하는 판결”이라는 비판 여론이 많았다.

이 판결은 ‘나이 많은 여성은 섹시하지 않아서 성 충동을 일으키지도 않고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며, ‘사회경험이 풍부한 여성이란 성 경험이 많은 여성’이라는 남성의 잘못된 인식이 덧칠돼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91년 김부남씨 사건-성폭력특별법 제정으로 이끌다]

이 사건은 혀 절단 사건이 아닌  살인 사건이지만 성폭행 범죄와 관련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1972년 9세 어린이 김부남은 전북 남원군 자신의 집 근처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주인 송모씨(당시 35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때 받은 충격으로 대인기피 증세를 보여 두 번의 결혼생활에 실패한 뒤 19년이 지난 1991년 식칼을 들고 송씨 집을 찾아가 송씨를 살해했다.

김씨는 어린 시절의 성폭행 트라우마로 자신의 삶이 뒤틀리자 송씨를 고소하려 했으나 당시 성범죄는 6개월 이내의 친고죄로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였다. 김씨는 스스로 그를 벌한 것이다.

1991년 8월 1심 전주지법은 김씨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치료감호를 선고했다. 이후 항소와 상고가 모두 기각돼 1년 7개월간 치료감호소에서 치료감호를 받은 뒤 1993년 5월 석방됐다. 김씨는 1심 3차 공판에서 나는 짐승을 죽인 것이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사건은 아동 성폭력의 후유증을 세상에 알린 사건이다. 그리고 여성단체들이 연대해 3년 뒤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경향신문 보도)
(당시 경향신문 보도)

[성폭행 사건 재판의 변화-성인지감수성 중시]

이후 성폭행 사건에서 정당방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점차 피해자의 입장을 중시하는 쪽으로 갔다. 하지만 과거에는 성범죄를 대하는 법원의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해 현재의 사법정서에는 부합되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심지어 가해자와의 결혼을 종용하는 적도 있었다.

과거 성범죄 관련 판례를 보면 피해 여성에게는 귀책 사유를 묻고, 평소 행실을 따지며, 가해 남성에게는 음주나 순간적 욕정 등을 이유로 죄를 경감해주는 경향이 있었다.

미투 파문 이후 법원의 성폭력 관련 소송에서는 성인지감수성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비서를 성폭행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2018년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2019년 2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바로 구속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인정하지 않은 ‘업무상 위력 행사’를 인정했고 대법원도 2019년 9월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여 형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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