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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치열했던 오스카 시상식(上)

  • 기사입력 2020.02.19 14:28
  • 최종수정 2020.02.20 11:24
마침내 오스카에 우뚝 선 봉준호 감독 (연합뉴스)
마침내 오스카에 우뚝 선 봉준호 감독 (연합뉴스)

[우먼타임스 박종호 기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아카데미) 시상식을 놓고 각계각층의 반응이 뜨겁다. 국제장편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은 물론이요, 내친김에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을 기록했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역사에 남을 쾌거를 이루었다.

<기생충>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만장일치의 호평이 있었으나, 사실 이 같은 성과를 예상한 사람은 무척이나 드물었다. 외국어 영화에 관대하지 못한 보수적인 오스카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올해 작품상을 놓고 자웅을 겨루었던 경쟁작들의 면모도 만만찮았다. 

전문가들도 <기생충>의 수상에 회의적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최근 약 2년간 아카데미의 라인업부터가 예년에 비해 돋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밋밋한 시상식이 이어지고 나면 어느 순간에선가 뛰어난 작품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와 그야말로 ‘피 터지는’ 경쟁이 벌어지고는 하는데, 이번 오스카가 바로 그러한 해였다.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작으로 꼽혔던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에서부터, 호아킨 피닉스의 역사적인 호연이 빛난 <조커>, 올해도 역시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이 그러했다. 거기에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1세기 최고의 걸작 (이동진 평론가) <아이리시맨>도 작품상의 다크호스로 손색이 없었다. 

헐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거장들과의 전쟁에서 최후의 깃발을 든 이가 다름 아닌 한국인 봉준호와 <기생충>이라니!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워낙 평소 오스카 시상식에 관심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올해 오스카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나를 아무리 떠들어봐야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국내 네티즌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기생충의 성과를 <포레스트검프>와 <펄프픽션>, <쇼생크탈출>, 그리고 감독으로도 훌륭했던 로버트 레드포드의 <퀴즈쇼> 등이 경쟁했던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과 비교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포레스트검프>가 <쇼생크탈출>을 제치고 작품상을 차지한 사실에 의문을 표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명작들이 경쟁할 때마다 생길 수밖에 없는 논쟁에 가깝다. 기실 <포레스트검프>가 경쟁작들보다 명백히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는 미약하다. 기자 역시도 <펄프픽션>이 다소 과대평가되었다는 소수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 정말 치열했던 해는 따로 있었다

수상 결과를 놓고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치열했던 경쟁 끝에 뒤따르는 숙명과도 같다. 그 점에서 보자면 올해 오스카 시상식의 결과는 오히려 다소 싱거운 편이었다. <기생충>이 가장 중요한 작품상과 감독상, 그리고 각본상까지 ‘싹쓸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할리우드의 많은 관계자들은 아직까지 1977년 열린 49회 오스카 시상식을 역사상 최고로 치열했던 시상식으로 기억한다. 영화사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작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한 해였을 뿐더러, <작품상>과 <감독상>의 수상에서까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다시 말하자면 치열했던 경쟁의 과정과 그 뒷이야기가 어우러지며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시상식으로 기억되고 있는 셈이다.  

1977년 오스카의 주인공이었던 실베스터 스탤론(왼쪽)과 페이 더너웨이(오른쪽), 그리고 가운데는 남우주연상 피터 핀치의 아내인 엘레사 (핀터레스트)
1977년 오스카의 주인공이었던 실베스터 스탤론(왼쪽)과 페이 더너웨이(오른쪽), 그리고 가운데는 남우주연상 피터 핀치의 아내인 엘레사 (핀터레스트)

당시 <작품상>을 놓고 경쟁했던 작품들로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걸작 <택시 드라이버>와 실베스터 스탤론의 출세작 <록키>, 사회풍자의 대가 시드니 루멧 감독의 최고작 <네트워크>,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명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그리고 아메리칸 뉴웨이브의 선봉에 섰던 할 애슈비 감독의 최전성기를 이끈 <바운드 포 글로리> 등이 있었다. 

수상 전에는 <네트워크>와 <택시 드라이버> 중 하나가 작품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 두 작품 모두가 워낙에 걸작이기도 했다. 두 작품 모두 아직까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화를 뽑는 순위 앞자락에 늘 위치해 있기도 하다. 거기에다 <네트워크>는 시나리오 작법 측면에서, <택시 드라이버>의 주연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 측면에서 오늘날까지 연출 및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두고두고 교보재로 삼는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들이다. 

영화 의 포스터.
영화 의 포스터.

당시 흥행을 기록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던 <록키>가 유력한 다크호스로 합류했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역시 동시기의 닉슨게이트 사건을 심도있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함’을 중시하는 오스카의 구미를 잡아당겼다. <바운드 포 글로리>의 할 애슈비 감독은 작품상보다는 감독상의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뚜껑을 열자 초반부터 예상대로 <네트워크>가 맹렬히 기세를 올렸다. <네트워크>는 일찌감치 총 7개 부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및 남녀 주조연상 전 부문에 후보를 올리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심지어 남우주연상에만 두 명의 후보 (빌 하워드 역의 피터 핀치와 맥스 슈마커 역의 윌리엄 홀든)를 배출하며 총 5명의 배우가 수상을 노리는 모양새였다. 

<네트워크>가 일찌감치 각본상을 수상하며 선공을 취했고, 이어 남우조연상을 제외한 주조연상을 싹쓸이하며 루멧 감독을 흐뭇하게 했다. 애초에 한 영화에서 연기 부문에 5명이나 후보에 올린 영화는 이 <네트워크>가 마지막이며, 또한 한 영화에서 연기상 3부문 수상자를 배출한 기록도 아직까지 <네트워크> 이후로 전무하다. 그러나 ‘드니로 어프로치’라는 독특한 연기법을 남긴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를 제치고 <네트워크>의 미치광이 방송인을 연기한 피터 핀치가 남자 주연상을 차지하자 장내는 돌연 숙연해졌다.

다름이 아니라 피터 핀치가 시상식 직전 심장마비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상은 <네트워크>의 각본가였던 차예프스키와 핀치의 처인 엘리사 핀치가 대리 수상했다. 사후 수상은 워낙 피터 핀치가 처음이었고, <다크 나이트>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히스 레저가 뒤를 이었다. 

네트워크에서 빌 하워드를 연기한 피터 핀치.
네트워크에서 빌 하워드를 연기한 피터 핀치.

피터 핀치와 히스 레저 모두 ‘광기에 휩싸인 다크 히어로’를 연기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히스 레저의 오스카 대리수상을 지켜보던 많은 원로 영화인들 중에서는 피터 핀치와 그의 연기를 동시에 떠올리면서 눈물을 훔친 이가 많았다고 한다. 

◆ 여배우들의 호연이 빛난 <네트워크>

<네트워크>가 <록키>나 <택시 드라이버>에 비해 국내에 잘 소개되지 못한 사실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경쟁작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역시 당대 최고 인기배우였던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의 ‘투톱’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렸고, 최근에도 몇몇 평론가들이 ‘언론을 소재로 한 역대 최고의 영화’로 소개함에 따라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트워크> 역시 신문과 방송의 차이라는 있지만 엄연히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다. 더군다나 매스미디어 비판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이 쪽이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이 중론이다.

<네트워크>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UBS 방송국의 뉴스 앵커 하워드 빌(피터 핀치)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UBS 저녁 뉴스의 간판 앵커였으나, 점점 떨어지는 시청률 때문에 음주와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직속 상사이자 ‘절친’이기도 한 뉴스부장 맥스 슈마커(윌리엄 홀든)에게 2주 후에 해고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다음 날 생방송에서 빌은 자살하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사장 해켓(로버트 듀발)의 노여움을 사 즉시 해고되었지만, 맥스 덕분에 간신히 고별 방송이나마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초반 도입부는 결말과 더불어 작년의 화제작 <조커>의 주요 테마에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돌발행동에 관해 사과하겠다던 약속과 다르게, 빌은 고별방송에서 ‘삶은 쓰레기 같은 것’이라며 다시 한 번 난장판을 만든다. 하지만 앞서의 자살 소동으로 인해 역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게 되자 기획부 다이애나(페이 더너웨이)는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 이에 사장에게 빌의 해고를 철회하고, 자신에게 빌의 방송을 맡겨 달라 고 요청한다. 다이애나는 천부적인 수완을 발휘해 UBS의 입지를 다져놓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영화 역사상 최고의 결말 중 하나로 손꼽히는 <네트워크>의 마무리는 유명 평론가 로저 이버트로 하여금 “TV뿐만 아니라 70년대의 모든 해악을 거침없이 공격하는 잘 짜여지고, 인상적인 영화”로 평하게 했다. 이러한 평가는 당대에도 마찬가지였는지, 영화의 공식 포스터는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표현함에 부끄럼이 없다.

네트워크의 여주인공 역을 맡은 페이 더너웨이.
네트워크의 여주인공 역을 맡은 페이 더너웨이.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페이 더너웨이는 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커리어의 정점을 쌓았다. 원조 페미니스트로도 유명한 더너웨이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차이나타운> 등에서도 주체적이고 강한 캐릭터를 연기한 데 이어, <네트워크>에서는 능력 있는 방송가 커리어우먼으로 분했다. 그야말로 출세와 시청률에 목숨을 건 다이애나는 악역에 가깝지만, 그 자체로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냈다는 평가다. 이에 쟁쟁한 대배우들이 합을 겨루는 장면에서마저 더너웨이의 캐릭터와 에너지는 좌중을 압도했다. 특히 UBS의 시청률을 고공행진으로 이끌며 환희를 맞는 장면에서는 촬영 관계자들이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는 후문이다. 

아울러 여우조연상을 차지한 <네트워크>의 비어트리스 스트레이트를 둘러싸고도 이런저런 뒷말이 나왔다. 연기 자체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지만 출연 시간이 5분 40초로 매우 짧았다는 점이 걸렸다. 애초에 역사상 가장 짧은 출연시간으로 조연상을 수상한 사례다. 

배역 자체(맥스 슈마커의 아내로 출연했는데, 맥스가 그녀 앞에서 불륜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대부분의 출연시간을 할애했다)도 극 흐름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에 논란이 가중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여우조연상 수상은 이 모든 약점을 극복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피츠버그대학교 극단에 속한 엘리자베스 마치 교수는 당시 이러한 논란에 대해 “5분 동안 펼쳐진 역사상 최고의 연기 중 하나”라며 “불륜을 대하는 아내의 배신감과 절망을 포함해 온갖 종류의 감정을 한 순간에 살펴볼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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