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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리더] 슈퍼모델 이만의 삶과 사랑

소말리아 출신으로 흑인 여성 인권 운동에 헌신
최초의 흑인 슈퍼모델 출신, 데이비드 보위 전 부인
어두운 피부톤 여성을 위한 이만 코스메틱 설립

  • 기사입력 2020.01.30 10:03
  • 최종수정 2020.01.31 08:49
생전의 데이비드 보위와, 아내 이만 압둘아지드 (사진=유튜브)

[우먼타임스 박종호 기자] 오늘도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며 여성권익 운동에 헌신하는 슈퍼모델 출신의 유명 화장품 설립자가 있다. ‘브리티시 록’의 선구자 데이비드 보위의 전 부인 이만 압둘아지드다.

보위는 2016년 1월 사망했다. 이만은 늘 1월이 되면 SNS에 그에 대한 추모의 글을 써 올린다. 올해도 변함없이 보위의 생전 사진과 둘의 사랑을 담은 짤막한 글이 공개됐다. 보위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녀의 SNS를 방문해 다시금 그의 삶을 기렸다. 이만 역시 보위가 사망한 해 런웨이를 떠났기에 일각에서는 ‘쓸쓸한 여성’이라는 표현으로 그녀를 묘사하지만, 그녀는 애초에 한 남자의 배우자라는 타이틀에 머물 여인이 아니었다. ‘보위의 생전 와이프’로서 기억되는 건 그녀로서도 바라는 게 아니다.

이만은 1955년 소말리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소말리아 대사와 산부인과 의사의 딸로 태어났다. 비교적 부유하게 자랐지만, 소말리아의 사회혼란과 내전으로 조국을 떠나야 했다. 이집트와 케냐 등지로 옮겨간 그녀는 1976년 나이로비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다가 유명 사진작가 피터 비어드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곧 유명잡지 보그의 모델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178cm의 키와 세련되고도 서구적인 마스크로 패션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70년대 당시 흑인 여성들이 성공하려면  ‘외모’가 특히 중요했다. 암암리에 너무 어둡지 않은 피부 톤에 이목구비는 기존 백인 스타와 크게 다르지 않아야 이목을 끌 수 있었다. 동시기에 활동한 여성 그룹 <슈프림스>의 리더 다이애나 로스가 유독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휘트니 휴스턴도 이 때문에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초창기에는 ‘백인 코스프레’로 인한 비판이 만만치 않았다.

이만은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remember the time'에서 네페르티티 왕비로 분해 널리 이름을 알렸다. (사진=핀터레스트) 

아무튼 그녀가 아프리카 출신으로 성공한 세계 최초의 흑인 슈퍼모델이라는 점에는 이견은 없다. 워낙 유명한 나오미 캠벨보다도 나이로 열 다섯 살이나 위인데, 워낙 까칠하기로 유명한 캠벨도 그녀를 두고 ‘큰언니’로 한수 접어두는 모양이다. CNN에서는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빅토르 위고 등과 함께 ‘세계를 바꾼 10명의 난민’으로 선정됐다. 그녀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교는 무슬림이다. 그녀는 소수자 중 소수자로서 성공한 경우였다. 

그녀는 여성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선구자이기도 했다. 애초에 흑인에 대한 차별이 지금과는 상상도 못했던 시기부터 활동해온 여성 모델이었다. 오늘날의 흑인 유명인사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흑인 여성의 인권과 처우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그의 고향인 소말리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여성의 커리어 개발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흑인 청소년들을 위한 행사에 자주 참여하며, 개인적으로도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동 구호 운동인 <Save the Children>의 대사로도 오래 활동했다. 미국패션티자이너협회(CFDA)는 “이만은 슈퍼모델로서의 커리어 이외에도 평생에 걸친 봉사활동으로 업계의 이미지를 크게 높였다”며 2010년 평생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녀는 당대 여성과는 달리 매우 적극적인 삶을 살았다. 우스갯소리로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 나머지, 결혼도 세 번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NBA선수로서도 유명했던 스펜서 헤이우드와의 짧은 결혼생활을 뒤로 하고. 1992년 마침내 데이비드 보위에게 정착했다. 마이클 잭슨의 <Remember the Time> 뮤직비디오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유명 코미디언 에디 머피와 함께 파라오 부부로 출연했던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이만이 설립한 이만 코스메틱 (사진=이만 코스메틱)

그녀가 흑인 여성들의 ‘롤모델’로 추앙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녀 자신이 피부톤이 어두운 여성들을 위한 화장품 브랜드 ‘이만 코스메틱’의 설립자이기 때문이다. 1994년 이만은 문득 흑인 여성들의 잡티나 두드러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화장품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에,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었다. 주 고객층의 경제력을 고려한 전략이 적중했고, 지금까지도 합리적인 가격대에 고품질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이 화장품은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요즘 사회에서 지향하는 공정 및 평등의 가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기업으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사업도 꽤 성공적이어서 2010년에 미국에서만 약 2,8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우리 돈 1만 7,000~1만 8,000원 대의 파운데이션과 쉐이드가 주력 품목이다. 파운데이션의 종류는 4개 정도로 많지 않지만, 미국의 유통체인인 월그린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파운데이션 브랜드다. 

실제로 그녀는 가장 성공한 슈퍼모델로서의 삶보다는, ‘이만 코스메틱’의 대표로서의 이미지를 선호한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그녀는 지난해 말 프랑스의 한 유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한 때 피부색을 구별하는 사람들의 차별적인 언어 습관을 바꾸고 싶었던 적이 있다”며 “그러나 나는 내 브랜드를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2019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만. 올해 64세다. (사진=유튜브)

그녀는 “내 브랜드 앞에서 인종 간 구별은 무의미해진다. 단지 흑인만 쓰는 브랜드여서가 아니다”라며 “화장품 앞에서 우리 모두는 소비자다. 우리에게는 구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구매력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시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슈퍼모델로서의 삶, 데이비드 보위 등 유명인과의 사랑을 통해 획득한 셀럽으로서의 위치보다는 ‘이만 코스메틱’을 통해 그녀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만족해 한다. 1955년생으로서 올해 64세를 맞은 그녀는 늘 발자취(legacy)라는 표현을 통해 그러한 방식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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