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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 원래 남성들의 전유물?

-10세기 페르시아서 시작…기병들 활동성 위해 제작
-17세기 이후 여성성과 연계...세계대전 후 상용화

  • 기사입력 2020.01.17 15:08
  • 최종수정 2020.02.25 18:41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주인공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역)가 빨간 하이힐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이 장면은 고전영화 <The Red Shoes(1948)>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사진=유튜브)

[우먼타임스 박종호 기자] 2014년 개봉한 장진 감독의 영화 <하이힐>은 여성이 되고 싶은 한 강력계 형사의 고충을 담았다.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감독은 내면의 여성성을 표출하고 싶은 욕망의 상징으로 하이힐에 주목했다. 애초에 하이힐이 워낙 여성성이 동일시되는 것도 놀랍지 않은 세상이다. 

그 동일시의 시작을 세계적인 스타였던 마릴린 먼로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그녀가 주연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1959)>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조시 디밥 연구원은 “당시 하이힐을 신은 먼로는 앙증맞고 성적 매력이 넘쳤지만 동시에 이동성이 제한되고 어딘가 불편한 모습이었다”며 “그것이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는 여성다움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 과거엔 남성들을 위한 전유물

그러나 과거 하이힐은 워낙 남성들을 위한 전유물에 가까웠다. 토론토에 위치한 엘리자베스 젬멜학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하이힐의 시초는 10세기 페르시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등자(말 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가 막 발명된 상황이었고, 하이힐은 기병들이 등자에서 일어나 활을 쏘고 창을 휘두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실제로 아직까지 드물게 남아있는 카우보이들이 말을 탈 때 굽 있는 신발을 착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간이 흐르며 하이힐은 사교계의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유럽 전역의 남성 귀족들의 신발에 굽이 달렸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 하이힐은 차츰 ‘여성스러운’ 성품과 연관되기 시작했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여성의 경박함과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보인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굽은 오늘날처럼 뾰족하지 않았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굽은 뭉툭하고 둔탁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하이힐의 디자인에 혁신이 깃들여졌다. 항공기 공학에 사용되는 기법과 재료가 신발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날렵한 힐이 사용자의 체중을 견딜 수 있을만큼 단단해졌고, 이동성을 더 용이하기 하기 위해 금속 생크(shank)가 들어갔다. 

하지만 여성에게 더 ‘불편한’ 변화였다. 이에 착용자들은 높으면서도 편안한 힐을 끈임없이 추구했다. 그 중 한 방법이 높은 굽의 각도를 완화하는 방법이었다. 구두 디자이너 조안 올로프는 발바닥의 충격흡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구두 안에 메모리폼을 넣었다. 구두 발바닥 역시 구부러진 발을 더 안전하게 받치고 체중을 보다 균등하게 배분하도록 했다. 안토니아 세인트 던바는 구두를 신고 걷다가 삐끗하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구두 속에 마찰제를 넣었다.  

물론 극단적인 방법도 존재한다. 신발을 신을 때 세 번째와 네 번째 발가락을 테이핑하면 하이힐 신기가 한결 편하다고들 한다. 서양 여성들을 중심으로는 아예 발바닥에 보톡스를 맞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건강에도 좋지 않은 하이힐을 아예 안 신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은 영국 여성들에게 특별한 해였다. 관측 이래 처음으로 하이힐보다 여성용 운동화가 더 많이 팔린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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