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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로만 폴란스키를 향한 엇갈린 시선

-가장 유명한 ‘아동 성범죄자’…아직도 영화계 영향력 행사
-옹호론은 앞으로도 쉬이 가라앉지 않을 듯

  • 기사입력 2020.01.15 10:18
  • 최종수정 2020.08.01 17:45
로만 폴란스키 (사진=연합뉴스)

[우먼타임즈 박종호 기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할리우드의 ‘아픈 손가락’이다. 그는 아동 성범죄자라는 전력을 갖고 있지만, 고전 느와르의 새로운 해석에 열중인 오늘날 영화계를 중심으로 옹호와 용서의 분위기도 만만찮다.

폴란스키는 지난 77년 당시 13세 소녀 사만다 가이머에게 계획적으로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아 할리우드에서 도피했다. 아동 섬범죄에 엄격한 미국과는 달리 프랑스와 그의 고향인 폴란드에서는 따뜻한(?) 환대 속에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벌였지만, 최근 또다시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며 영화계는 다시 지리한 논쟁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폴란스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다시 이어진 것이 시작이었다. 이에 그의 작품들은 줄줄이 개봉이 연기됐으나 주류 영화계에서는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쉬이 찾을 수 없었다. 프랑스 영화계에는 아직도 그의 불행했던 과거와 그의 영화적 업적을 동정하는 분위기가 있다. 

프랑스 여성계를 중심으로 그의 신작 ‘장교와 스파이’의 개봉을 철회하려는 등 대대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주류 영화게는 요지부동인 듯하다. 이에 폴란스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발랑틴 모니에는 “프랑스 예술계가 무조건적으로 폴란스키를 지지해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왜 이 시점에 로만 폴란스키인가?

로만 폴란스키를 둘러싼 논쟁이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현재까지도 유럽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점도 있겠지만, 그의 연출 스타일이 현재 할리우드의 제작 트렌드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마틴 스콜세이지의 영화가 현재 다양한 경로로 소비되는 경우와 흡사하다. 화제작 <조커> 역시 스콜세이지에 대한 헌정과도 같은 영화였다.

내달 9일 열리는 올해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기생충>과 함께 오른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대놓고 그와 그의 아내 샤론 테이트의 이야기를 담았다.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과 그의 추종자가 폴란스키 감독의 집에 난입해 당시 임신 8개월이던 샤론 테이트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을 담았다. 프랑스 매체들은 이 영화가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1974)>에게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했다.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였다가 살해된 샤론 테이트 (사진=페이스북)

그의 불행한 과거는 공공연히 제기되는 ‘폴란스키 옹호론’의 첨병 역할을 해 왔다. 폴란스키 본인이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고,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됐다. 그러니 그의 정신세계가 셰익스피어를 핏빛으로 각색한 <맥베스(1971)>를 통해 드러났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폴란스키 옹호론자는 이에 “예술과 개인의 인생은 별개”라며 “그를 처벌하면 국제적인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며 선처를 요청한다.

당시 성폭행 피해자가 폴란스키를 이제 용서했다는 발언이 나온 이후로는,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 이 논쟁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피해자야 언론을 통해 당시 이야기가 자꾸 재생산되는 것에 지쳤다지만, 여성계는 “그렇다고 폴란스키의 과거를 지울 수는 없는 일”이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실제로 미투 운동의 촉발제가 되었던 하비 와인스틴 문제로 홍역을 겪은 할리우드건만, 아직도 폴란스키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쉬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할리우드의 ‘큰언니’ 격이자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인 틸다 스윈튼마저 ‘옹호파’에 속한다. 

영화 <차이나타운>의 한 장면. 잭 니콜슨과 77년 <네트워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페이 더너웨이의 반전 연기가 빛난 로만 폴란스키의 대표작이다. (사진=연합뉴스)  

◆ 영화를 너무 잘 만들기 때문에...

폴란스키가 다양한 시선에서 동정받는 이유는 그가 업계 관계자들에게는 최고의 연출자로 통하는 점과 무관치 않다. 물론 장기인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 외의 장르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령 그의 1985년 블록버스터 <대해적>은 제작사를 쫄딱 망하게 할 정도로 처절하게 실패했다. 이 영화 때문에 <캐리비안의 해적>의 성공 이전까지 해적 영화는 만들면 망하다는 속설이 생겼을 정도다) 전성기가 지난 지금까지 일정 수준 이상의 영화를 꾸준히 연출하며 배우들의 필모그래피를 더욱 두텁게 하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최근 폴란스키가 아직도 유럽 주류에서 존중받는 이유에 대해 “배우들은 폴란스키의 영화를 거치고 나면 추가된 경력 한 줄에 뿌듯함을 느낀다”며 “폴란스키의 영화를 통해 활약한 배우들은 좋든 싫든 할리우드에서도 주목받는다”고 지적했다. 모니카 벨루치 등 유럽 출신 여배우들이 폴란스키를 옹호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그의 인생이 말해주듯,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여배우의 궁합은 좋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차이나타운>의 주인공이었던 페이 더너웨이와의 불화가 대표적이다. 영화 자체는 대성공이었으나, 유난히 까탈스러웠던 더너웨이에 대한 앙금은 여전했는지 폴란스키는 아직까지 “(스포일러) 그 때 더너웨이가 총을 맞아 눈이 ‘뻥’하고 뚫렸지요”하면서 그녀를 조롱하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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