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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에 담겨진 여러 가지 사실들

  • 기사입력 2018.08.28 09:06
  • 최종수정 2018.08.28 09:07
(사진=박기철)

나는 고추를 좋아한다. 매운 고추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고추가 매울까봐 겁내지만 나는 고추가 맵지 않을까봐 염려한다. 맵지 않은 고추를 먹으면 싱싱한 풀을 심심하게 먹는 맹맹한 느낌이 든다. 매운 고추라야 고추답다. 

매운 맛은 아픔을 겪고 느끼는 맛이다. 맛이라지만 혀의 미각세포가 감지하는 맛이 아니다. 고추에 있는 캡사이신 성분이 혓속 수용체 세포를 때림으로서 느끼는 통증(痛症)이 매운 맛의 본질이다. 매운 맛은 혀만 때리지 않는다. 매운 고추를 손으로 다듬으면 손의 촉각과 코의 후각을 자극해서 아프다. 눈물이 난다. 마늘이나 양파에 열을 가하면 단 맛이 나지만 고추는 열을 가해도 여전히 맵다. 

추어탕에 넣는 산초, 고기에 뿌리는 후추, 냉면에 치는 겨자, 생선회에 바르는 와사비, 커리를 만드는 강황 등이 있어도 매운 맛의 챔피언은 고추다. 겨자나 와사비는 먹을 때 코가 잠깐 맵다. 맛이기 보다 향에 가깝다. 고추는 지속적, 전반적으로 맵다. 혀와 위를 때리며, 머리에서 열과 땀을 나게 하며 항문까지도 맵게 한다. 

고추는 매워야 입안에서 아픈 통쾌(痛快)한 맛이 난다. 통쾌에서 통은 통할 通, 거느릴 統, 꿰뚫을 洞도 아니고 아플 痛을 쓴다. 아픔을 겪고 난 후에야 느끼게 되는 시원한 기분이 통쾌함이다. 고추를 먹으면 입안이 매워서 아픈데 그 이후 오히려 시원한 통쾌한 맛이 난다. 

이렇게 통쾌한 맛을 주는 매운 고추를 대개 청양고추라 한다. 이 이름의 유명세에 반기를 드는 청송고추, 영양고추도 있다. 괴산고추, 밀양고추, 나주고추도 있다. 고추의 어원은 매운 산초란 뜻에서 고초(山椒)에서 왔다는 설도 있으나 아무래도 맵고 쓴 풀이라는 뜻의 고초(苦草)에서 온 듯하다. 녹색 풀에 가까운 고추와 달리 산초는 후추에 가까운 거무튀튀한 열매 알갱이라서다. 

나는 밥을 먹을 때 고추를 될수록 먹는다. 냉장고에 꼭 비치되어 있다. 식당에서도 맵지 않은 고추가 나오면 별나게도 매운 땡초를 달라고 부탁한다. 서울에서는 청양고추, 부산에서는 땡초를 달라고 하면 된다. 이성계에 의한 조선의 개국에 반대하여 산으로 들어간 고려의 스님들이 맵게 저항했다고 하여 그들을 땡초라 했는데, 그들의 매운 저항이 매운 고추 이름에 붙었다는 설이 그럴 듯하다. 

이 땡초보다 매운 고추가 있다. 매운 정도는 스코빌 단위로 측정한다. 1912년, 미국의 화학자 스코빌(Wilbur Scoville)이 최초로 개발했단다. 물을 몇 배로 희석시켜야 매움이 없어지느냐로 따진다. 하나도 맵지 않은 파프리카는 0이다. 청양고추, 10,000, 남미의 하바네로 100,000, 인도의 졸로키아 1,000,000 수준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땡초보다 10배 더 매운 태국의 쥐똥고추도 있고, 30배 더 매운 멕시코의 죽음고추도 있고, 100배 더 매운 인도의 유령고추도 있다. 얼마나 매울까? 그 지독한 매움의 통쾌함을 느끼고 싶다. 

그런데 내가 먹는 이 고추의 종자권이 우리한테 없다고 들었다. 종자권을 가졌던 종묘(種苗)회사가 외국기업에 매각되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종자권을 가진 외국기업에게 매년 특허권(royalty) 사용비를 내야 한단다. 우리 땅에서 나는 땡초이며, 설령 청양고추를 육종기술로 만들었다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이 개발했는데 어찌 그리 되었을까? 사연이 있겠지만 각박한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참 흉흉하다. 

박기철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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