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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정수 서울도서관장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도서관 변해야"

  • 기사입력 2018.06.11 17:37
  • 최종수정 2020.02.18 16:22
(사진=심은혜 기자)

[우먼타임스 신동훈 기자] 지난 5일 인터뷰를 위해 찾은 서울도서관은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적지 않은 시민들로 붐볐다. 옛 서울시청을 리뉴얼한 건물에 자리잡은 까닭에 여느 지역도서관과는 다른 장중함이 느껴지면서도, 두 개 층에 걸쳐 책들이 벽면 서가를 가득 채운 '생각마루'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지하철역과 새 서울시청 건물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리함도 인상적이다.
  
2012년 개관한 서울도서관은 이용훈 초대관장(2012~2016년)을 거쳐 지난해 1월 현 이정수 관장이 취임해 올해로 개관 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이정수 관장은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사서와 언론사를 거쳐, 취임 직전까지 12년 간 서울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 관장으로 일했다. 이정수 관장이 이끄는 동안, 이진아기념도서관은 공공 도서관의 모범사례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3년 연속 우수도서관으로 선정되는 등 여러 차례 수상을 했다.

전시실로 공개되고 있는 크고 화려하고 권위적인 옛 서울시장실과는 대조적으로, 소박하지만 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관장실에서 최근 활동 및 앞으로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도서관 관장직을 맡으신 지 1년 반이 됐습니다. 공식임기가 2년이니 사분의 삼이 지난 셈인데요, 취임 후 지금까지 "이 점은 보람을 느낀다"고 하실 만한 성과가 있으시면 소개해 주세요.  

"서울도서관은 일반도서관과 달리 정책도서관이자 대표도서관으로서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취임 후 서울도서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리매김하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특히, 올해 5월에 향후 5년 간의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외부용역 대신 내부직원들이 함께 고민해 자체적인 계획을 세웠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도서관 업무를 가장 잘 아는 도서관 직원들이 스스로 도서관의 발전 방향을 세웠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편으론,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부담감도 있습니다." 

서울도서관에 오시기 전 서울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을 이끌며 여러 좋은 평가를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성공경험을 서울도서관에 어떻게 접목시키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이 성공적으로 운영된 데는 지역주민과의 교감, 지역사회와의 협력에 힘입은 바 컸습니다. 예를 들어, 도서관을 기반삼아 지역주민들이 독서회 등 동아리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다양한 강연 프로그램들도 운영했습니다. 지역주민들이 도서관의 각종 문화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서울도서관은 지역밀착형 도서관이 아니어서 다소 차이는 있습니다만, 직원들이 이용자 관점에서 왜? 누구를 위해? 란 질문을 계속 던지게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 밖에, 서울도서관이 지역도서관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제가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의 겪었던 경험들이 지역도서관들이 겪고 있는 고충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도서관의 기능과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듯합니다. 예전처럼 단순히 책을 빌려주고 열람하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강연이나 교육 프로그램들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관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람직한 도서관의 역할은 무엇인지요?

"해방 이후 우리나라 도서관들은 일제가 남기고 간 도서관 인프라는 남았으나, 도서관을 운영할 국가 자금이 부족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지적 역량 발전 등 사회가 바라는 가치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개인 공부방'으로 변질되고 말았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한 인터뷰에서 "‘10년 후 변하는 것'보다는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도서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시대의 역사를 축적해 계속 이어가는 ‘문화전승 기관’의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변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책을 대여하고 책을 열람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 활동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공간'으로 발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화전승 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동시에, 한 사람의 삶과 괴리되지 않는 공간, 즉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도서관의 역할이 변하고 확대되어야 합니다."

서울도서관 생각마루. (사진=서울도서관 홈페이지)

현재 우리나라 도서관들의 위상이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수준인 지 궁금합니다. '작은 도서관'들이 새로 들어서는 등 최근 도서관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만.  

"OECD국가들의 도서관 1개 당 평균 이용자 수는 독일 7000명, 미국 1만 명, 일본 3만 명 수준인 데 비해, 한국은 5만5000명입니다. 최근 도서관이 많이 늘어났다고 해도 아직은 부족한 수준이지요. 

서울의 경우, 도서관 수는 많지만 규모가 작아 감당해야하는 이용자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1개 도서관에 사서 4.5명이 일하고 있다보니 일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마침 지방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과거와는 달리 지역도서관 관련 이슈들이 선거 공약에 포함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관심을 받고 있다는 얘기니까요. 다만, 겉으로 드러나는 도서관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예를 들어 디지털 격차해소를 위해 도서관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 등과 같이, 도서관 이면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수반한 정책적 고민들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서울도서관은 서울시 자치구 도서관들에 대한 정책 개발과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평소 자치구 도서관과의 협업의 중요성과 협의체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는데요, 현재 추진 상황은 어떠한가요?

"현재 서울시 자치구 도서관들은 운영체계가 모두 제각각입니다. 운영주체만 해도 재단, 공기업, 사회법인 등으로 다양하고, 조직이나 직원의 고용체계 등도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공공성을 담보해야하는 도서관들의 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도서관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고요. 이 때문에 협의체 필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행히, 지난해 가을 서울지역 도서관장들의 협의체가 마련됐습니다. 저는 한 발 떨어져 서울도서관장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과 지원방안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68억 원 규모인 올해 자치구 도서관 지원 예산을 분배하기 위한 도서관 평가 방식에도 변화를 줬습니다. 즉, 기존에는 각 도서관들을 개별적으로 평가해왔는데요, 올해부터는 도서관이 아닌 자치구를 평가하는 것으로 변경했습니다.

자치구들을 재정자립도와 도서관수 측면에서 50%, 사서수 측면에서 50%로 평가하고, 이를 기준으로 예산을 책정해 자치구를 거쳐 지역 도서관에 지원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평가방식이 변경되면서 지역 도서관 입장에서 당장은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길게보면 사서수를 늘릴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행정체계와 서비스체계가 나뉘어져 있는 지역 도서관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처럼 평가방식을 바꾸면 자치구(행정체계)로 하여금 지역 도서관(서비스체계)에 대한 지원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있겠고요. 이를 통해, 지역 도서관들의 자율성도 높아지고 '풀뿌리 민주주의'도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진=심은혜 기자)

종종 도서관에 들리게 되면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제게 맞는 책을 고를 좋은 방법이 없나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도서관 사서들께 책 추천도 받을 수 있을까요? 

"사서는 책에 대한 기본정보 뿐만 아니라, 책을 고르고 읽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함께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전국도서관들이 협력해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서에게 물어보세요'란 서비스가 대표적이겠네요. '독서클리닉'도 있고요.  

도서관에서 보다 다양한 서비스들을 제공하기 위해선 사서의 개인 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서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5개년 발전계획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사서와 도서관 이용자 간의 교류를 좀더 늘릴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서들의 도움을 받아 논문 작성 등에 도움을 받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부분은 좀더 알릴 필요가 있겠네요."

화제를 조금 돌려보지요. 관장님께서 인생을 살아가시며 큰 도움이 되었거나 특별한 계기를 마련해준 책은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당시로는 흔하지 않던 그림책들을 접하며 책에 대한 애정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읽었던 『그리스인조르바』 『스콧 니어링 자서전』 등 애정이 가는 책들이 여럿 있습니다만, 딱 한 권만 뽑으라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입니다. 얼마 전 새로 나온 번역본을 구해 다시 읽어봤는데 여전히 좋았습니다.

어린왕자의 말들은 간결하고 꾸밈이 없지만, 비리나 허세 등 온갖 문제들의 종합선물세트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제겐 최고의 책입니다."

최근 들어 예전보다는 여성의 사회진출과 위상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맘(워킹맘), 경력단절여성 등으로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여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관장님께서도 도서관장에 오르기까지 비슷한 경험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가정의 양립에 고민하는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회사를 다니던 때는 사내결혼을 하면 대부분 경우 여자가 회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일과 가정을 함께 지켜내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죠. IMF로 인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는데요, 아이를 키우는 중에도 경력단절만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 강의를 나갔습니다. 저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전쟁같은 순간들을 경험했습니다. 우울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육아휴직, 출산휴가 등으로 그 전 보다는 여건들이 나아졌지만,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일하는 엄마들이 아이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요 너무 큰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에게 일을 해야하는 엄마의 상황과 일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이해를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거든요. 사실 아이들도 학원에 다니는 등 자기 생활하느라 바쁜 것도 사실이잖아요. 엄마의 삶이 아이들의 삶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도서관의 젊은 여성 사서들도 일과 가정을 슬기롭게 병행해 더 많은 사회진출을 이뤘으면 합니다. 맡은 바 업무 뿐만 아니라 관계형성에도 힘쓰고 시야도 좀더 넓혀서 도서관 분야에서 여성 리더들로 자리잡으면 더욱 좋겠지요."

정리ㆍ사진=심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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