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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봉 칼럼] 연상연하의 결혼이 말하는 것

  • 기사입력 2017.01.20 15:19
  • 최종수정 2020.08.24 16:15
▲ 15세 소년과 36세 여인의 엇갈린 사랑(사진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최근 S.E.S의 리더 바다가 9세 연하의 남성과 결혼을 발표하면서 연상연하 커플 이야기가 다시 화제가 됐다. 물론 셀렙들의 이야기다. 백지영-정석원(9세), 한혜진-기성용(8세) 김소현-손준호(8세) 부부 이름이 다시 매스컴을 탔다.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말 자체가 어찌 보면 우습다. 동갑내기 간의 결혼보다는 나이 차가 나는 결혼이 다수니까. 매스컴은 언젠가부터 남자가 열 살 안팎으로 한참 나이가 많은 경우도 연상연하 커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연애를 인정한 17세 나이 차이의 세 커플 신하균-김고은, 김주혁-이유영, 마동석-예정화 같은 경우다. 문희준-소율(13세), 송승헌-유역비(11세), 현빈-강소라(8세) 커플 정도까지도 보통 연상연하 커플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연상연하의 통념적 의미는 역시 연하남-연상녀의 조합이다. 기준은 없지만 대략 신부가 서너 살 이상 나이가 많으면 그리 부른다. 거꾸로의 경우라면 연상연하라고까지 부르진 않는다. 자기보다 어린 남자와 결혼하는 여성이 많지 않기 때문일 터다. 

이 세상 선남선녀들이 다 사랑을 하지만 나이 든 여자와 젊은 남자와의 사랑은 아직까진 ‘스토리’가 된다. 뉴스 밸류의 기준에 희귀성이라는 항목이 포함되는 것처럼. 진화인류학적으로 긴 기간 동안 남성은 애 잘 낳고 살림 잘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간택하는 남성 본위 사회였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연상녀-연하남의 사랑을 소재로 삼은 국내외 영화가 제법 많다. 그런 영화는 보통남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보다 그 결이 다양하다.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부터 가슴 절절한 순애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적 만남도 있지만, 이상 심리적 애증 관계, 동반 파멸이 감지되는 금지된 사랑, 젊음과 관능이 수작하는 부적절한 관계를 그린 것도 적지 않다. 강도와 반전이 있고 때로 파격적이거나 치명적이다.

나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감동적인 영화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2008년)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케이트 윈슬렛의 쓸쓸한 명대사 “You growing up kid!(꼬마야, 너 이제 다 컸구나)”가 잊히지 않는다. 할머니가 된 그녀가 교도소에서 다 큰 ‘꼬마’를 만났을 때 한 말이다.

15세 소년 미하엘과 36세여인 한나는 ‘오묘한 끌림’으로 만나서 사랑을 한다. 꼬마는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샤워를 하며 사랑을 나누고 또 나란히 가만히 누워 있기도 한다. 누가 누구를 버렸는지 모르지만 꼬마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녀의 모든 걸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둘은 긴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났지만 꼬마의 사진을 품고 있던 한나는 출소 당일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나이와 감정, 욕망과 현실, 역사와 세월의 엇갈림에서 직조되는 사랑과 관계의 쓸쓸함이다. 

연상연하 영화 이야기를 더 해보자. 영화들은 대체로 해피엔딩이 기대되지 않는다. 낭만적인 듯 전개되다가도 엄연한 현실로 돌아온다. 짙은 불온과 강한 성애적 냄새를 풍기는 19금도 많다. 성숙하지만 충동에 빠지는 여자가 주연이고, 미숙하지만 저돌적인 남자는 조연이다. 

배우자가 있거나 중년을 넘긴 여인이 젊은 남자에게 빠져드는 이른바 ‘불륜 영화’에 수작이 많다. 이미숙-이정재의 ‘정사(1998)’, jtbc 드라마의 시청률을 높인 김희애-유아인의 ‘밀회(2014)’, 애드리안 라인 감독이 가정에만 충실했던 여인의 욕망과 이중적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다이안 레인-리차드 기어의 ‘언페이스풀(2002)’, 국내에도 잘 알려진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 원작의 ‘도쿄 타워(2004)’가 그렇다. 그리고 명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으로, 이자벨 위페르가 21세 연하의 제자에게 빠지는 뒤틀린 욕망의 변주곡 ‘피아니스트(2010)’에 이르면 조금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까지 있다.

여기 영화보다 더 영화적 현실을 살아온 세기의 연상연하 커플이 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다. 그녀는 66세부터 죽을 때까지 16년 동안 연하의 작가 지망생 얀 앙드레아와 함께 했다. 둘은 서른다섯 살 차이였다. 

얀은 뒤라스의 열렬한 팬이자 연인이고, 조수이자 동반자였다. 장자크 아노 감독에 양가휘가 주연한 유명한 영화 ‘연인(1992)’의 원작은 뒤라스가 구술하고 얀이 받아 적은 것이다. 얀은 뒤라스의 사후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이를 영화화한 게 잔 모로 주연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사랑(2001)’이다. 뒤라스의 심리적 혼란과 격정으로 둘의 사랑은 위태위태했지만 끝은 아름다웠다. 

영화 이야기를 뒤로 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정부의 통계를 보면 연상연하 커플이 매년 확실하게 늘어나고 있다. 2016년 3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초혼 부부 가운데 여자가 연상인 부부는 16.3%였다. 동갑내기 부부(16.0%)보다 많다. 반면 남자 연상 부부는 67.6%로 2011년 이후 감소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가 32.6세, 여자는 30.0세였다. 여자 초혼 나이가 처음으로 30대에 진입했다. 11년 전인 2005년과 비교하면 남자 초혼 연령은 1.7세 올랐지만, 여자는 2.2세가 많아졌다. 초혼 부부의 평균 나이 차는 몇 살이나 될까. 2.6세로 조사됐다. 10년 전인 2006년에는 3.2세였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여성 가구주도 늘어났다. 2016년 6월 통계청의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를 보면 여성 가구주는 전체의 28.9%였다. 세 가구 중 한 가구 꼴이다. 1990년만 해도 15.7%에 불과했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38.7%, 남성은 51.8%로 조사됐다.

부부 나이 차가 줄어들고, 여성의 초혼 연령이 높아지고, 여성 가구주가 많아지고, 결혼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많아지는 게 흐름이다. 이는 연상연하 커플의 증가와 직간접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상연하 커플이 왜 꾸준히 늘어날까. 그 이유는 바로 여성에게 있다. 다는 아니지만 대체로 남성 때문이 아닌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의식적 변화가 연상연하 커플을 만들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고, 젊고 아름답고 건강한 신체와 외모를 가꾸는 여성이 늘어나고, 남녀 평등의식이 굳어지고, 대중문화에서 연상연하 소재가 자주 다뤄지면서 사회적 편견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혼여성 다섯 명 중 네 명은 연상연하에 긍정적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결혼중개업소 조사가 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여성이 젊은 남성과 산다는 것은 사랑 말고도 여러 심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젊음과 활력과 때론 보살핌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자신이 아직은 젊고 매력적인 여자라는 걸 안팎으로 증명 받는 ‘선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회 경제적 성공을 젊은 배우자와의 결합으로 확인하는 심리도 작용한다고 한다. 나이가 있는 남자가 한참 어린 여자와 결혼하면 사람들이 “능력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나이 든 여성이 연하남과의 결혼을 발표해도 같은 소리를 듣는다. 

반대로 연상녀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남자는 연상녀가 지닌 편안함과 배려와 이해심이 좋다고 말한다. 또 남자가 통상 짊어지는 가족부양과 경제적 부담을 덜 느끼고, 성적인 궁합에서도 조화스럽다는 측면도 있다. 

조사통계 상으로 보면 결혼을 원하는 쪽은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많다. 그만큼 남성의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는 결혼의 ‘파워 게임’이 점차 변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랑에 나이와 국경이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연상연하 조합에서는 대체로 볼 때 연상녀가 어떤 면에서든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인류 역사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은 늘 가치 있는 존재였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젊고 건강한 남성’의 가치도 이야기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는 연상연하의 러브스토리가 특별한 ‘스토리’가 되지 않는 날이 올 거 같은 예감이 든다.

한기봉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전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_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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