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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 복식은 일제의 오리엔탈리즘으로 비하됐다”

몰랐던 한복 이야기, 한복특별전 총괄 ‘서봉하 예술감독’에게 듣다

  • 기사입력 2015.10.16 11:29
  • 최종수정 2020.02.18 16:43

[우먼타임스 심은혜 기자]우리의 얼이 담긴 한복은 그동안 우리에게 외면당해 왔다. 그나마 어렸을 적 명절 때 종종보아오던 한복은 이제 그 자취조차 감추었다. 아시아 46개국 중 필리핀, 동티모르와 함께 전통복식이 소멸된 세 나라 중 한 나라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욱 슬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젊은 층에서 신(新)한복 놀이가 유행하고 있는 것. 젊은 친구들이 예쁘게 디자인 된 신한복을 입고 인사동이나 삼청동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등 한복을 입는 것이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됐다.

이제 한복은 ‘입고 싶은 옷, 세계가 입는 옷‘으로서 발돋움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 일환으로 청와대 사랑채에서는 9월 15일부터 11월 1일까지 ’한복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 전혀 익숙하지 않은 한복, 한복특별전을 총괄한 ‘서봉하 예술 감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한복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용인 송담대학교 스타일리스트과 교수로 있습니다. 패션 아트 전시, 설치 미술도 했었고 2010년에 개최된 서울 국제 패션아트 비엔날레에서 전시 총괄도 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현대패션을 가르치지만 한복에 관심이 많아 전통복식, 아니면 한국근대복식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 한복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복식미학을 공부했는데,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자 아시아 43개국을 혼자 배낭매고 돌아다니며 아시아 전역의 전통복식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이렇게 전통복식을 공부하다 보니 한국복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왜 우리가 흰 옷을 입게 되었는지 등 한국복식을 이념적 이데올로기와 관련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 한복의 특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한복은 서양복처럼 몸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입니다. 펑퍼짐한 옷으로 몸을 가리며 드러내지 않죠. ‘감춤의 미’라는 표현을 쓰는데, 사실 이것은 동양복식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복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 깃든 옷입니다.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습니다. 옷이나 건축 양식, 공예, 그리고 색상들을 보면 우리 민족정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유교는 금(禁)채색 사상이 지배했기 때문에 그 당시 한복에는 색이 없는 것이고, 도교 또한 자연주의 사상이기에 무명은 낡은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옷이었어요.

책에서는 색은 천한 것이다, 색이 있는 옷은 기생이나 무당이나 입는 옷이라고 배우는데 어떻게 색이 있는 옷을 입겠습니까.

일제식민 사학자들은 ‘한국은 염료도 없고 경제 개발도 안됐으며, 슬픔의 민족이기 때문에 흰옷을 입는다’고 비하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 상류층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녹색이나 자색, 청색 등으로 된 관복을 입었지만, 집에서는 흰옷을 입었습니다. 양반들이 흰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만큼 흰옷을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민족정신이 깃든 옷인 거죠.

- 한복 특별전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요?

70년간의 변화상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쓱 보면 비슷한 한복처럼 보이지만 한복마다 다 다른 스토리가 있습니다.

해방 이전에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도 있었지만,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흰 옷을 많이 입었습니다. 흰옷은 민족정신이 깃든 옷이라고 생각했기에 특히 시위하는 날에 입었습니다.

▲ 50년대 한복

일제 해방 이후에는 나일론이 등장했습니다. 싼 값에 옷이 보급되다 보니 많은 사람이 다양한 패션을 입기 시작했어요. 나일론이 등장하기 전 패션은 일반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그냥 무명치마 하나로 버티며 살았죠.

나일론의 등장은 본격적으로 패션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소재의 옷들이 많이 들어왔으며, 레이스, 실크, 양단 등 모든 원단들은 한복감으로 변했습니다.

▲ 50~60년대 한복

때문에 50~60년대는 한복이 다양해집니다. 동시에 50~60년대에는 개량화와 함께 신생활운동이 벌어집니다. 신생활운동은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며 거추장스러운 치마대신 짧아진 길이의 통치마와 소매통이 좁아진 간편한 옷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 70~80년대 한복

70~80년대에 한복은 절정을 이룹니다. 자수나 그림, 색동, 금박 등을 사용해 상당히 화려합니다. 또한 한국인의 체형을 보완하기 위해 가슴선부터 아래까지 A라인으로 뚝 떨어지는 실루엣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해진 한복은 평상복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화려한 옷은 평소에 입기 부담스럽고,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입지 않습니까. 한복이 화려해지니 행사 때 입는 옷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죠.

한복이 아름다워지면서 예복화되었고, 사람들은 서양복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부터 한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착용한 한복

최근 상당히 고무적인 것은 한류바람을 타고 사극 드라마와 영화가 동남아나 중국에서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서 기능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한복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신(新)한복이라고 해서 젊은 사람들이 개량된 한복을 입는 것이 놀이 문화가 되었어요.

한복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것과 신한복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 이 모든 흐름을 전시를 통해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 한복이 사라진 또 다른 계기가 있을까요?

서구의 가치가 몇 십 년 동안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앞선 가치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한복을 입은 사람은 구닥다리가 된다’라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이 우리 사회에 박히게 된 거죠. 사람의 정신이 물질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데, ‘서구의 것이 가장 좋다’라는 가치관을 갖고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전통복이 금방 소멸하지 않았나 싶어요.

- 연구 경력에 ‘일제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왜곡된 한국의 복식문화’가 있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패션이나 디자인 쪽에서 보면 ‘오리엔탈리즘’이란 단어의 진짜 뜻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서구가 동양을 침략하는 제국주의 시대에 많은 동남아 국가를 식민지화 시키며 비하를 했어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은 상대를 비하함으로써 자기 우월성을 확보 하는 것입니다. 서구가 동양을 침략하고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양을 비하하고 서양을 상대적으로 우월주위에 빠지게 한 것이 ‘오리엔탈리즘’의 진정한 속성입니다.

일제가 한국을 침략한 것은 서구가 동양을 침략한 오리엔탈리즘 속성과 똑 떨어집니다. 일제가 한국을 침략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조작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한국 사람들은 미개하다’는 것이에요.
 
일제가 제작한 엽서를 보면 어린 아이들이 정말 더러운 옷을 입고 노동에 착취당하고 있는 모습, 여성들이 속살이 보이는 불편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조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일제의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 의해서 왜곡된 한국의 복식문화입니다.

근데 오리엔탈리즘이 우리를 비하하는 발언인지도 모르고 사용하는 오류가 너무 많아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오리엔탈리즘 패션’에 관한 책을 저술하고 있습니다.

- 대중들이 알고 있는 사실 중 한복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들이 있나요?

많은 사람들은 한복이 불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학생들이 입는 스키니진은 몸에 딱 달라붙는데다 몸을 조여서 활동하기 불편해 보입니다. 또한 미니 스커트도 짧아서 계단을 오를 때나 앉을 때 불편한데 여성들은 일상복으로 매일 입습니다. 이처럼 서양복도 따지고 보면 불편한 점들이 많이 있는데, 한복은 왜 불편하냐 이겁니다. 한복 바지를 생각해보면 펑퍼짐해서 몸이 편안하고 자유롭습니다.

실제로는 불편하다, 불편하지 않다가 아니라 ‘익숙함의 차이’ 같아요. ‘한복은 익숙하지 않고 서양복은 익숙하다’. 정말 불편한 사실은 몸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시선’이 불편한 거죠.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안 입다 보니, 입고 밖에 나가게 되면 상당히 눈에 띄게 되니까요. 
 
옛날 전통을 고수하는 어르신들은 요즘 개량한복을 보고 저게 무슨 한복이냐고 하시기도 하는데, 옛날 것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은 젊은 세대에게 입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편하지 않고 예쁜 디자인의 신한복들이 많으니 기업과 정부가 노력을 해서 일반인들에게 좀 더 많이 보급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전시를 주관한 한복진흥센터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옷을 우리가 안 입습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잃어버릴 순 없지 않습니까? 우리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한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인데, 우리가 우리옷인 한복을 안 입는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복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한복이 옛날 것이고 불편하다는 인식을 깼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을 잃어버리고 민족정신을 잃어버리면 절대 융성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세계화 되는 것이 잘 사는 길이었지만 지금은 우리 것을 지켜 나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니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한복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한복을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입으라면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절대 안 입습니다. 입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어요. 그냥 하나의 놀이 문화처럼 옷을 입어도 좋고, 어떤 식으로든 한복을 즐겨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출처 = 러브즈뷰티 DB, 한복진흥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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