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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100대명산 ⑪ 조령산] 백두대간 중 최고 험난 구간… ‘한반도의 허리띠’

기암ㆍ괴석ㆍ노송 어우러진 한 폭의 진경산수화

  • 기사입력 2023.01.31 20:47
  • 최종수정 2023.02.01 09:57

우먼타임스 = 박상주 편집국장

다들 참 바쁘게 삽니다. 지름길을 찾고, 직행이나 급행을 타려 하고, 지하철 계단에서도 뜁니다. 너무 쫓기며 삽니다.

산을 탈 때조차 느긋함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정상을 찍고 내려올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100대 명산 산행기를 올린 많은 이들이 정상으로 가는 최단코스를 소개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산의 매력을 흠뻑 즐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 산의 특징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지를 알리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모름지기 산행은 ‘완행’이어야 합니다. 쉬엄쉬엄 걸어야 합니다. 두루두루 살펴야 합니다. 현미경 같은 눈으로 풀 한 포기를 들여다보고, 망원경 같은 눈으로 산맥을 바라봐야 합니다. 

모름지기 산은 종주를 해야합니다. 종주 산행을 해야 그 산을 제대로 맛볼 수 있습니다. 같은 산이라고 하더라도 동쪽과 서쪽이 다르고 북쪽과 남쪽이 다릅니다.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에 걸쳐 있는 조령산 종주 산행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지난해 4월에 이어 아홉 달 만에 다시 조령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지난번 산행은 조령산과 주흘산 연계 산행이었습니다. 조령산은 이화령~정상 간 왕복 5킬로미터 맛보기 산행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산행이었지요. 

조령산은 백두대간 중 가장 험난한 구간으로 꼽힙니다. 조령산은 주흘산과 백화산, 이화령, 마패봉과 더불어 ‘한반도의 허리띠'를 형성합니다. 깎아지른 절벽과 내리꽂는 계곡과 거칠게 솟구친 암봉들로 명성이 자자한 산입니다. 

이번엔 조령산을 제대로 누벼볼 생각입니다. 이화령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해 조령샘물~조령산정상~신선봉~쭈꾸리바위~깃대봉~조령3관문을 거쳐 조령1관문에서 마무리하는 17킬로미터 산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조령산과 갈미봉 사이의 안부(鞍部)인 이화령은 해발 548미터입니다. 조령산 정상은 해발 1,017미터입니다. 이화령을 들머리로 하면 정상까지 절반 이상을 올라온 셈입니다.

길마저 평탄한 흙길입니다. 동네 뒷산 산책하듯 휘적휘적 걷습니다. 정상까지 800미터 남았다는 이정표를 조금 지나자 조령샘물이 나타납니다. 동그란 돌확 안으로 이슬처럼 맑은 샘물이 떨어집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이 혹한의 날씨에 조령샘물만 얼어붙지 않은 게 신기합니다. 

노란 표주박으로 샘물을 뜹니다. 벌컥벌컥 조령산의 정기를 마십니다. 달고 시원하고 개운합니다. 샘물의 기운으로 한달음에 정상까지 잡아챕니다. 

정상에 오르니 ‘새도 쉬어가는 조령산’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람도 잠시 쉽니다. 조령산 안내 표지판에 눈길이 갑니다.

‘조령산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에 있는 해발고도 1026m의 산이다. 한강과 낙동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중략) 조령산의 주능선 상에는 정상 북쪽으로 신선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암봉과 암벽지대가 많다. 능선 서편으로는 수옥폭포와 용송골, 절골, 심기골 등 아름다운 계곡이 발달했다.’

이제 주능선을 따라 신선봉으로 향합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반대편 쪽에서 내려오는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많이 지쳐 보이는 친구들입니다.

“신선봉 다녀오시는 길인가요?”
“신선봉 올라가는 길이 끊겼어요. 되돌아가는 길입니다. 바위들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어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더군다나 신선봉까지는 몇백 미터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신선봉 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과연 눈과 얼음에 덮인 거대한 바위가 나타납니다. 경사는 그리 가파르지 않습니다. 바위 한 가운데로 길쭉하게 우툴두툴한 홈까지 파여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우툴두툴한 홈을 밟습니다. 마찰력을 확보합니다. 큰 위험 없이 바위를 통과합니다.

마침내 신선봉입니다. 숨이 턱 막힙니다. 조물주가 그린 거대한 진경산수화 한 폭이 장대하게 펼쳐집니다. 함박눈이 하늘의 빈 공간을 채웁니다. 흰 눈을 머리에 인 기암과 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진 산세는 금방이라도 신선이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이제 쭈꾸리바위와 깃대봉을 거쳐 조령3관문 방향으로 하산을 합니다. 신선봉을 내려서자마자 밧줄을 타야 하는 거친 암릉길이 나타납니다. 꽁꽁 언 밧줄은 미끄럽기만 합니다. 

오르락내리락 험한 비탈길이 이어집니다. 집채만 한 바위를 이고 있는 우뚝한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바위가 눈보라를 막아줍니다. 바위 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보온 통에 담아온 뜨거운 쌀죽을 먹습니다. 겨울 산행엔 뜨거운 쌀죽만 한 게 없습니다. 추위도 달래고, 먹기도 편하고, 금방 에너지로 전환되는 탄수화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길을 나섭니다. 이정표 하나가 나타납니다. 왼쪽은 신풍리(절골), 오른쪽은 한섬지기로 가는 길이라고 안내를 합니다.

아뿔싸!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능선 동쪽의 쭈꾸리바위와 깃대봉으로 간다는 게 능선 서쪽의 계곡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다시 되돌아 가기엔 너무 많이 왔습니다. 신풍리와 한섬지기 모두 2.5킬로미터 거리입니다. 한섬지기 쪽 길로 발자국 하나가 찍혀 있습니다. 발자국을 따라 하산합니다. 등산 지도에는 점선으로 표시된 비정규 탐방로입니다. 

90도 절벽 위에 달랑 밧줄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마찰력 확보를 위해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밧줄을 잡고 내려옵니다. 몸 하나를 겨우 빼낼 수 있는 비좁은 바위 틈새를 지납니다. 눈 덮인 거친 너덜겅에 발이 자꾸 끼입니다.

마침내 마을이 보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한섬지기 마을까지 무사히 왔습니다.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산행이었습니다. 이화령을 들머리로 조령샘물~조령산정상~신선암봉~공기돌바위~절골·한섬지기 갈림길을 거쳐 한섬지기를 날머리로 하는 9킬로미터 산행을 한 것입니다. 평생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때론 자의로, 때론 타의로, 애초에 생각했던 방향과 다른 길을 가는 수가 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립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문경새재 제1관문 앞 식당에서 약돌돼지 석쇠구이를 안주로 오미자 막걸리를 마십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주시던 고추장 두루치기 맛입니다. 돼지고기 본래의 단맛과 기름기 쪽 빠진 쫄깃한 식감과 고추장의 매콤달콤함이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입안에서 탄산이 터지면서 새콤한 맛을 내는 오미자 막걸리는 또 어떻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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