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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폐지 논란' UN 무대까지 불똥... 정부 “기능 강화” vs 여성계 “뻔한 기만”

UN 회원국, UPR서 한국 성차별 문제·여가부 폐지 우려
정부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개편해도 업무 축소 無”
여성계 “성평등 정책 총괄 기능 축소 불가피...거짓 답변”

  • 기사입력 2023.01.30 16:51
  • 최종수정 2023.01.31 18:39

우먼타임스 = 곽은영 기자 

정부가 유엔인권이사회의 4차 국가별인권상황 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이하 UPR) 본심의에서 여성가족부가 폐지되더라도 정책과 업무는 축소되거나 약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전담부처가 타부처 산하로 축소 이관되면 입법권·집행권이 상실돼 성평등 정책 기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현 정부가 성평등 전담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단순히 사회적 약자로서의 ‘피해 여성’, ‘아동’ 정책 담당으로만 국한해 보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가족부가 담당하는 성평등 정책은 구조적으로 차별받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임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6일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공식 발표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청소년·가족·여성정책 및 여성의 권익증진에 관한 사무는 보건복지부로, 여성고용 기능은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윤 정부의 기조에 따른 여성가족부 폐지 수순에 여성계는 단순한 복지 혜택 축소가 아닌 여성인권을 퇴행시키고 성평등 정책을 후퇴시키는 사안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4차 국가별인권상황 정기검토(UPR) 본심의에서 정부는 여성가족부가 폐지되더라도 정책과 업무는 축소되거나 약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전담부처가 타부처 산하로 축소 이관되면 성평등 정책 기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4차 국가별인권상황 정기검토(UPR) 본심의에서 정부는 여성가족부가 폐지되더라도 정책과 업무는 축소되거나 약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전담부처가 타부처 산하로 축소 이관되면 성평등 정책 기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 UN 회원국, 성차별 문제·여가부 폐지 우려...정부 “업무 축소 없을 것”

스위스 제네바에서 26일(현지시간)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UPR 본심의에서는 95개 회원국이 한국의 인권상황을 평가하고 개선점을 제시했다. 

UPR은 유엔 회원국이 돌아가면서 자국 인권 상황과 권고 이행 여부 등을 동료 회원국들로부터 심의받는 제도다. 2008년부터 생긴 인권제도로 유엔인권조약 비준 유무와 관계없이 4년마다 정기적으로 전반적인 인권상황을 상호 검토한다. 

한국은 2008년 4월 첫 심의를 하고 이번에 4차 심의를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사전심의를 거쳐 26일 본심의가 진행됐다. 이번 심의에서는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이끄는 정부 대표단이 3차 심의보다 개선된 인권 정책을 소개하고 의견을 들었다. 

회원국들은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성별 고정관념에 의한 여성 차별 근절을 권고하고 젠더기반 폭력을 방지하는 정책 강화와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통한 인권 증진을 권고했다. 고질적인 성별 임금격차와 경력단절 문제를 비롯한 노동영역에서의 성차별 해소, 의사결정과정에서의 낮은 여성 대표성 개선, 낙태 비범죄화가 실질적인 임신중지 보장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내렸다. 

독일과 벨기에, 핀란드, 노르웨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과 장애 유무,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법으로 2007년부터 입법이 추진돼 왔지만 처리되지 못했다. 

아울러 여성가족부 폐지 추진 문제로 여성과 아동 인권 보호에 공백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과 함께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양성 평등을 증진할 대책을 마련하라는 주문도 나왔다.

미국, 캐나다, 스위스, 영국은 사전질의와 현장질의에서 모두 한국의 성차별 문제와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영국은 사전질의에서 성폭력과 젠더기반 폭력 문제, 성별임금격차, 공사영역 고위직에서의 여성대표성, 일터에서의 성차별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질문했다. 현장에서는 앞선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거론되는 여성가족부 폐지 사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 정부는 국제 인권 규범을 선도적으로 실천해 국제 인권기준에 부합하는 것을 넘어 ‘모범 사례’가 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해서는 “여성가족부를 보건복지부와 통합시켜 보건복지부 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려 한다. 기존 여성가족부에서 추진하고 있던 여성과 한부모 가족, 위기 청소년에 대한 지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직 개편이다. 여성가족부의 정책과 업무는 축소되거나 약화되지 않으며 여성과 아동은 기존에 받고 있던 지원을 계속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오히려 그동안 아동 정책과 청소년 정책 대상이 중복되고 본질적으로 제공되던 서비스를 통합해 실질적 권한과 전달 체계가 강화될 것이다. 특히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공무원 지자체 전달 체계 전산망 등을 활용해 보호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과 아동을 더욱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 여성계 “입법권·집행권 사라지면 성평등 기능 자연 축소”

UPR 본심의에서 정부의 답변에 국내 여성계는 일제히 반발했다. 공통적으로 정부가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담부처를 축소 이관하게 되면 성평등 정책 기능은 어쩔 수 없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7일 논평에서 “성평등을 지우면서 국제인권규범을 실현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거짓이다. 여성가족부는 폐지가 아니라 강화가 답”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본 심의에서 회원국들의 우려와 한국에서 여성들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은 공사영역 모두에 존재하는 성차별을 해결하는 일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고 그것은 법제도 전반에서 성평등 관점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낙태죄 폐지 이후 후속 조치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마치 법적인 공백으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국회로 책임을 돌렸다.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것도 법무부와 여성가족부 모두 국내에서는 반대 입장을 발표했으면서 심의에서는 강간죄 개정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답변으로 책임을 피해갔다”고 반박했다.

정부가 ‘성평등 전담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여성가족부가 사회적 약자로서 피해 여성, 아동, 노인을 지원한다고만 보고 그 기능의 효율을 따지며 부처를 폐지하겠다고 낸 발상과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가족부가 담당하는 성평등 정책은 여성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아니라 뿌리 깊은 성별 고정관념에 의해 구조적으로 차별받는 집단으로서의 ‘여성’을 의미한다. 여성폭력, 성매매와 인신매매, 불안정하고 열악한 여성 노동의 지위, 공사영역의 낮은 대표성 등 유엔 회원국이 UPR 본 심의에서 우려한 상황뿐만 아니라 정부가 우려하고 있는 ‘인구문제’는 구조적 성차별의 결과이고 성평등 실현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국 900여 개 여성·시민·노동·인권·종교·환경단체의 연대체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약칭 여가부 폐지 저지 전국행동)은 27일 논평을 통해 “성평등 없이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며 정부가 여가부 폐지 입장을 고수한 점을 규탄했다. 

여가부 폐지 저지 전국행동은 “현 정부와 여당은 법안까지 내놓으며 여가부를 없애고 보건복지부 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개편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부처가 타부처 산하 본부로 축소, 이관되면 기능이 전과 같을 수 없다. 장관직이 사라지기에 국무위원으로서의 심의·의결권, 전담부처의 입법권과 집행권이 삭제된다. 필연적으로 성평등 정책 총괄·조정기능은 축소·폐지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조차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의 필요성은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유엔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결의된 ‘베이징행동강령’에 명시된 것이다. 이에 반하는 정책임에도 정부는 성평등전담기구인 여가부를 복지부 산하로 가는 것이 단순한 조직개편인 것처럼 답변했다. 복지부의 전달체계 활용은 여가부 폐지가 아니어도 부처 간 협력을 통해 진행할 수 있는 것인데 복지부 산하로 가면 더 효과적인 것인 양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역시 27일 성명에서 “독립적인 성평등 전담기관이 사라지고 복지부 산하로 들어가는데 기존 업무가 축소되거나 약화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여성을 권리 주체도 아닌 복지의 대상으로만 축소하는데 이것이 성평등 강화인가”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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