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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100대명산 ⑨ 도락산] 백설의 도화지에 그려진 진경산수화

우암 송시열이 '도의 즐거움'을 깨우친 명산

  • 기사입력 2023.01.20 19:14
  • 최종수정 2023.02.01 09:55

우먼타임스 = 박상주 편집국장

아버지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60살은 노인으로 넘어가는 이정표였습니다. 60살을 맞으면 떠들썩하게 환갑 잔치를 벌였습니다. 요즘이야 그저 식구들과 밥 한 끼 먹는 생일 정도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입니다. 노인의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지난 2015년 유엔이 발표한 인간생애주기 연령지표에 따르면 18~65세는 청년, 66~79세 중년, 80~99세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 노인입니다. 

유엔 기준에 따르면 나는 청년입니다. 몸도 마음도 청춘입니다.

웬 나이 타령이냐고요? 한겨울에 설산 산행을 한다고 하면 지인들이 “그 나이에 위험하다”, “이제 나이도 생각해야 한다”, “무리할 나이가 아니다” 등등의 걱정들을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60대 청년’ 상주씨는 오늘도 산을 오릅니다. 충북 단양의 도락산으로 설국 여행을 떠납니다. 

도락산은 소백산과 월악산 사이에 솟아 있습니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가르는 분기점입니다. 소백산과 월악산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신선봉과 채운봉, 검봉, 형봉이 만들어내는 산세와 풍광은 명품 산으로 분류할 만합니다. 도락산을 끼고 북쪽으로 사인암과 상선암, 증선암, 하선암 등 단양팔경 중 4경이 이어집니다.

등산기점은 상선암마을입니다. 마을 뒤편 상선암 마당을 가로질러 산으로 들어섭니다. 상선상봉~제봉~형봉~삼거리~신선봉~도락산정상~신선봉~삼거리~채운봉~검봉~큰선바위~작은선바위를 거쳐 상선암마을로 원점회귀하는 7킬로미터를 산행했습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전인미답의 눈길 위에 발 도장을 새기면서 걷습니다. 꾸준한 오르막입니다. 계단과 계단이 이어집니다. 산의 들머리인 상선암에서 정상까지 3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산입니다. 

제봉에 오르자 비로소 능선이 나타납니다. 한숨을 돌린 뒤 능선길을 걷습니다. 능선길마저 얌전하지 않습니다. 거친 암봉 사이로 난 등산로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합니다. 

능선길엔 눈이 더 많이 쌓여 있습니다. 바람이 몰고 와 쌓아 놓은 눈입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걷습니다. 아이젠에 들러붙는 눈덩이들이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널찍한 너럭바위가 나옵니다. 100여 명은 넉넉히 둘러앉을 만한 공간입니다. 도락산 최고의 전망대라는 신선봉입니다. 신성봉에 올라서면 월악산과 소백산, 황정산, 작성산, 용두산, 수리봉, 문수봉 등의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폭설이 풍광을 가렸습니다. 하늘과 땅은 모두 하얀 눈으로 덮였습니다. 하지만 조물주는 백설의 도화지 위에 새로운 산수화를 그려냅니다. 기암괴석에 하얀 고깔모자를 씌웁니다. 벼랑 끝 낙락장송 가지엔 활짝 핀 눈꽃을 그려 넣습니다. 너럭바위 한복판에 있는 물웅덩이에 물을 가득 채워 넣었습니다. 조물주만이 그려 낼 수 있는 진경산수화!

신선봉 물웅덩이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을 담고 있는 신비의 샘입니다. 상선암마을에서 선암가든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장익환씨로부터 들은 전설 한 토막. 도락산 아랫마을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숫처녀를 데리고 신선봉으로 올라갔습니다. 숫처녀에게 신선봉 물웅덩이의 물을 말끔히 퍼내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마을로 내려오기 전에 신선봉 물웅덩이에 다시 물이 가득 찰 정도로 비가 흠뻑 내렸다고 합니다.

우암 송시열 선생도 여기 어디쯤에서 산 아래를 굽어봤을 것입니다. 우암은 산에 도락(道樂)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도를 떠올릴 정도로 감동을 받았던 거지요.

신선봉에서 정상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입니다. 내궁기 삼거리를 지나 정상에 올랐습니다. 사방을 둘러싼 참나무 숲이 찬 바람을 막아줍니다. 아늑한 숲속의 빈터입니다.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쌀 미음을 먹습니다. 온몸에 온기가 돕니다. 적당히 익은 김장김치 한쪽을 베어 뭅니다. 새콤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이제 다시 삼거리로 되짚어 내려갑니다. 채운봉~검봉~큰선바위~작은선바위를 거쳐 하산을 합니다. 제봉과 형봉 쪽으로 올라오던 길보다 거칠고 가파른 느낌입니다. 등산로가 눈에 덮여 잘 보이지를 않습니다. 

다행히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했습니다. 민가의 불빛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상선암마을 선암가든에서 토종닭 백숙을 시켰습니다. 국물을 한 술 맛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구수하고 깊고 깔끔한 맛입니다. 

선암가든 이경자 사장님께 물었습니다. 무엇으로 이런 맛을 내나요? 

“황기와 영지와 파뿌리와 마늘을 넣고 푹 끓여냅니다.”

육질은 쫄깃쫄깃합니다. 또 물었습니다. 토종닭은 직접 기르시나요?

“시중에서 파는 토종 닭입니다.” 

마지막으로 죽이 나옵니다. 현미찹쌀에 은행과 밤과 대추와 인삼을 넣고 끓인 죽입니다. 그 찰 지고 고소한 맛과 예쁜 색깔에 또 한 번 놀랍니다. 도락산 설국에서 ‘도’를 즐기고, 산 아래 음식점에서 ‘식도락’을 즐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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