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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d It-여성 과학자를 찾아] ⑨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문성실 박사

로타바이러스 백신 개발 주도하는 글쓰는 과학자

  • 기사입력 2022.12.12 16:54
  • 최종수정 2023.02.03 11:44

사람들은 과학기술은 남성의 영역이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친 한국 여성 과학자가 적지 않다. 대학에서, 연구소에서, 기업에서 탁월한 성과와 학문적 업적을 쌓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과학기술인들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위셋, 이사장 문애리)은 뛰어난 여성 과학자·기술인을 찾아 소개하는 ‘She Did It’ 캠페인을 하고 있다. 현장에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위셋’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공공기관으로, 이공계 여성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우먼타임스는 미래의 과학자와 공학도를 꿈꾸는 여성을 위해 위셋의 협조를 받아 ‘She Did It’에 실린 여성과학자들 인터뷰를 주기적으로 전재(일부 수정)한다. 인터뷰 전문은 위셋 홈페이지(wiset.or.kr)나 위셋 블로그(m.blog.naver.com/wisetter)에서, 동영상은 유튜브 ‘위셋’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중학생 시절 과학경시대회를 나가겠다고 컴컴한 실험실에서 선생님도 없이 책에 나오는 실험들을 하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있다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문성실 박사. 그런 기억 때문이었는지 대학도 자연과학부에 들어갔는데 그때 실험실에서의 적성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한다.

​2007년 미국으로 건너간 문성실 박사는 지난 15년간 CDC에서 로타바이러스 연구와 백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She did it’보다는 ‘She is doing it’에 가깝다며, 아직도 노력하고 성장해야한다고 겸손해하는 과학자. 문 박사는 유명하거나 잘나가는 과학자가 아니라 한 번쯤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로서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관찰과 기록, 실험이 좋았던 소녀

​“학창 시절에는 소아치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만 있었어요. 하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는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을 꽤 좋아했거든요. 대학은 자연과학부에 들어갔는데 그때 은사님 중 한 분이 HIV(에이즈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 미생물학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연구를 통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거죠.

유행성출혈열의 원인인 한타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이호왕 박사님의 ‘한탄강의 기적’이라는 책도 전공 선택의 한 계기가 됐어요. 숙주 없이는 생명력이 없는 바이러스, 그 무력한 존재가 인류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학원에서 감염면역학을 공부하며 바이러스 연구에 빠지게 된 거죠.”

가방 셋, 배낭 하나 들고 미국으로

​“당시에는 한국에서 박사를 받으면 해외로 ‘박사 후 연수과정(포스닥)’을 가는 게 정해진 트랙과 같았죠. 그래서 박사 학위를 받기 전부터 미국 바이러스학회나 NIH(국립보건원) 등의 홈페이지를 거의 매일 방문했어요. 질병통제예방센터 연구원 모집 공고도 바이러스학회 홈페이지에서 봤죠. 이메일로 신청서를 접수하고 최종 오퍼를 받기까지 거의 1년이란 시간을 기다렸던 것 같네요.

2007년 2월 박사학위를 받고, 8월에 미국으로 왔어요. 벌써 15년이나 되었네요. 가방 세 개에 배낭 하나 들고 왔어요. 아직도 그날 애틀란타 공항의 하늘을 잊을 수가 없어요. CDC라면 무조건 미국 시민권자여야만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처럼 방문연구원이나 펠로우십 형태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요. 취업비자를 지원하지는 않지만 문화교류 방문비자(J1)를 발급해주는 등 외국인도 정규직이 가능해요.”

학문적 스승이자 롤모델을 만나다

“미국에서 학문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현재 저의 보스인 바오빙 지앙 박사님과 ‘로타바이러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저 글래스 박사님입니다. 지앙 박사는 외국인으로서 연구소와 학계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신 분인데요. 어떤 시상식 자리에서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상황과 마음이 이해되면서 동질감이 들더라고요. 특히 글래스 박사님은 제가 세운 이론에 한 발짝씩 다가갈 때마다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죠.

제가 ‘가면증후군’에 빠졌을 때는 제 논문 초고에 “You are frontier”라는 말로 격려를 주셨고, 학회의 키노트 스피커로 단상에 올라서는 일부러 저를 가리키면서 제 공을 세워주셨던 분입니다. 자존감이 무너졌던 그 시절, 정말 많은 힘이 되었죠.”

아동 설사를 막는 로타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매진하다

​“제가 하는 일은 5세 이하 영아를 위한 로타바이러스 백신 개발이에요. 로타바이러스는 설사로 인한 영아 사망률 중 제일 높은 비율을 차지해요. 로타바이러스 생백신은 각국의 GDP 수준뿐만 아니라 오염된 환경, 영양상태, 모체로부터의 면역, 다른 병원균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효과가 달라져요. 이 때문에 WHO에서는 ‘차세대 백신’ 개발을 독려하고 있죠.

감염된 백신주를 사용한 새로운 생백신이나 단백질 재조합을 이용한 백신도 개발되고 있지만 저희는 바이러스 활성을 없앤 사백신을 개발해 효과를 높이려 해요. 또한, 근육주사용 백신과 더불어 피부에 패치처럼 붙이는 마이크로니들을 이용한 백신도 연구하고 있어요. 올해는 폴리오바이러스백신과 로타바이러스 백신을 동시에 마이크로니들 형태로 접종하는 방법을 통해 동물에서 두 백신의 효과가 간섭효과 없이 잘 나타나는 것을 확인한 논문도 출간했어요.”

"노동집약적인 실험은 팀워크가 생명"

“지난 15년간 백신과 관련된 연구를 하면서 ‘혁신상(66th CDC&ATSDR Honor Award, CDC Director's Award for Innovation, 2018)’ 등을 받았어요. 실제 환자의 샘플에서 분리한 바이러스로 백신주를 찾아내고, 유전적 특성과 수백 마리의 동물 실험을 하는 등 성과가 한 번에 드러나는 연구가 아니라서 여러 번 길을 돌아가기도 했죠. 한두 명이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 팀이 함께 노력했기에 그런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희 같은 노동집약적인 실험은 팀워크가 생명이죠. 느리지만 함께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보람을 느끼는 가장 큰 부분인 것 같아요.”​

문성실 박사와 아이들. (위셋)
문성실 박사와 아이들. (위셋)

과학자인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

“육아와 커리어의 병행은 제가 일하는 곳의 유연한 근무환경 덕분인 것 같아요. 새벽 6시에 출근해 오후 3시 전에 퇴근할 수 있어 돌봄 시스템이 열악한 미국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를 넘어갈 수 있었죠. 남편과의 일과 시간이 겹치지 않는 상황도 도움이 되었죠.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손이 많이 가던 시절에는 출퇴근 시 졸음운전도 많았고, 집에서는 노트북을 여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또한 외국인으로서의 낮은 자존감은 재미여성과학자협회(KWiSE)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어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의 격려는 정말 소중해요. 아이들이 좀 크면서부터는 엄마 일에 대한 이해와 물리적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법을 가르쳤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년간은 홈스쿨을 했는데, 쉽지는 않았지만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어요.”

페이스북에서부터 서평, 컬럼, 에세이까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페이스북이었어요. 1일 1포스팅을 목표로 제 연구와 여성과학자, 다양성에 대한 글들을 올렸어요. 그 이후에는 과학책 서평도 썼고요. 서평을 쓰기 위한 독서와 짧지만 꾸준한 글쓰기가 ‘이로운넷’과 각종 매거진으로까지 확대되었고요.

2021년에는 여성과학자로서의 삶을 평범한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쓴 에세이집 ‘사이언스 고즈 온’도 펴냈어요. 글쓰기 자료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글은 출퇴근하며 머릿속으로 구상해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하는 방식으로 쓰고 있어요.”

여성과학자의 끈끈한 연대와 커뮤니티 활동

​“재미여성과학자협회 동남부 지부가 생긴 지 올해로 꼭 11년이 됐어요. 연구소 내외 여성과학자들과의 만남은 밥 한 번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연구와 커리어 개발, 삶의 나눔과 격려를 통해 촘촘한 네트워크를 만들었죠. 함께 걷기 위해서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네트워크 공동체에 용기 내어 들어가기, 필요한 도움에 대해서 스스름없이 이야기하기, 최선을 다해 노력하기,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하고, 자신이 받은 도움을 뒤에 오는 이들에게 베풀기 같은 지극히 평범한 방법과 태도만 갖춘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다양성에 대한 수용적인 분위기가 있는 커뮤니티 활동도 큰 힘이 됩니다.”

​"과학의 길, 더 꿈을 꾸고 준비하고 도전하라"

“미래를 꿈꾸는 여성 후배들에게는 이런 말을 전하고 싶어요. 과학의 길이 궁금하다면 꿈을 꾸고, 준비하고, 그리고 도전하세요. 그 과정에는 여러분보다 앞서 간 여성과학자들이 손을 내밀 겁니다. 그들의 손을 잡고 대한민국 여성 과학자로서 함께 걸을 수 있는 여러분을 머지않은 미래에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위셋)
(위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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