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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100대명산 ④ 가지산·운문산] 영남알프스 제1봉~제3봉 잇는 ‘V자 난코스’

가지산장에서 산장라면 안주로 막걸리 한잔
운문산 정상 억새 길은 갈색 말의 긴 목덜미

  • 기사입력 2022.12.02 14:43
  • 최종수정 2023.02.01 09:52

우먼타임스 = 박상주 편집국장

머리가 무겁습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명치에 돌덩이라도 얹힌 것 같습니다. 왜 꽃다운 젊은이 150여명이 서울시내 한 복판 길거리에서 비명횡사를 해야 했을까요? 왜 수십 차례나 사고 위험 신고를 받고도 아무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을까요? 왜 분향소엔 영정도 이름도 없었을까요? 도대체 왜 아직까지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가 하나도 없는 걸까요? 

산을 오르는 중입니다. 오늘은 가지산도립공원(영남 알프스) 아홉 봉우리 중 제1봉인 가지산과 제3봉인 운문산을 연계 산행했습니다. 석남터널을 들머리로 중봉~가지산정상~아랫재~운문산정상~상운암을 거쳐 석굴사를 날머리로 하는 15킬로미터 산행입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머릿속에 왜? 왜? 왜?가 이어집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느꼈던 것과 같은 분노와 슬픔이 가슴에 들어찹니다. 언필칭 ‘선진국’ 이라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어이없는 참사가 반복될까요? 

이태원 참사를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가지산 정상입니다. 해발 1,241미터 가지산 정상에 올라서니 과연 영남 알프스 최고봉임을 실감합니다. 천왕산과 재약산, 운문산, 신불산, 영축산, 간월산, 고헌산, 문복산 등 1,000미터가 넘는 고봉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푸른 동해도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 다가섭니다.

영남 알프스 산맥이 출렁출렁 춤을 춥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은 드넓기만 합니다. 알싸한 가을을 품은 공기가 달콤합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십니다. 평생 공짜로 마시는 공기의 고마움을 새삼 깨닫습니다. 

한 줌 공기를 마시기 위해 절박하게 몸부림쳤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떠올립니다.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화가 납니다. 열이 뻗칩니다. 가지산 정상에서 양팔을 높이 들고 목청껏 외쳤습니다.

“살려내라!”

정상석 인증샷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산객들이 일제히 “와”하는 함성으로 동조를 해줍니다. 누구를 살려내라는 앞뒤 설명도 없이 그저 “살려내라”고 외쳤을 뿐인데 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분노와 슬픔으로 모두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감정을 수습합니다. 점심 요기를 할 만한 장소를 찾습니다. 정상 바로 밑에 허름한 가건물 하나가 보입니다. 돌로 벽을 올리고 함석으로 지붕을 덮었습니다. 산꾼들의 사랑을 받는 ‘가지산장’입니다.

가지산장 안으로 성큼 들어섰습니다. 낡은 나무 탁자와 걸상이 몇 개 놓여 있습니다. 시간의 나이테를 보여주는 물건들입니다. 벽면엔 산장라면 5,000원, 두부김치 10,000원, 막걸리 5,000원, 대추차 3,000원 등 손글씨로 작성한 메뉴가 붙어 있습니다.

산장 안에서 먹을까, 밖에서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산장 앞 야외 테이블을 택했습니다. 두부김치와 막걸리를 주문했습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커플은 라면을 시킵니다. 남친이 여친에게 말합니다.

“가지산장은 라면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야. 이곳 산장라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파는 라면이기도 하지.”

솔깃합니다. 덩달아 라면을 추가로 시킵니다. 두부김치와 라면과 막걸 리가 나왔습니다. 과연 산장라면은 특제요리입니다. 물만두와 어묵, 유부, 콩나물이 그득 담겨있습니다. 국물 맛이 깊고 시원합니다. 라면맛집으로 입소문이 날 만합니다.

스위스 알프스 못지않은 풍광을 내려다보면서 막걸리잔을 기울입니다. 날씨마저 어쩌면 이리 쾌청한지요. 최고의 산상오찬입니다. 이태원 참사 때문에 울적했던 마음이 풀립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곳 요리 재료들은 산장 주인이 지게로 져서 나릅니다. 해발 1,200미터가 넘는 이곳까지 무거운 지게를 지고 올라오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요? 음식이 더 귀하고 맛있게 느껴집니다.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합니다. 마냥 눌러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산행을 마쳐야 합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운문산으로 향합니다.

한동안 능선이 이어지더니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타납니다. 부스러진 사암 때문에 미끄럽기까지 합니다. 가지산 정상에서 운문산 정상까지 5킬로미터 구간이 영남 알프스 전체 산행 코스 중 가장 힘든 구간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만합니다. 

줄줄 미끄러지면서 엉금엉금 기면서 아랫재까지 내려갑니다. 아랫재는 가지산과 운문산과 상양마을로 가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입니다. 

아랫재 산불감시 초소 앞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운문산을 오릅니다. 이제 1.5킬로미터만 가면 운문산 정상입니다. 꽤 가파른 오르막입니다. 다행히 길은 잘 닦인 흙길입니다. 

운문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억새밭이 나타납니다. 운문산 정상으로 향하는 긴 억새길이 마치 갈색 말의 긴 목덜미처럼 보입니다. 

운문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굽이굽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길은 숨통입니다. 길은 소통입니다. 

이태원 참사를 다시 떠올립니다. 인파 사이에 길이 없었습니다. 숨통이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정안전부와 용산시와 경찰청 사이에 소통이 없었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예고된 인재였습니다.

석골사 방향으로 하산을 합니다. 상운암과 비로암폭포를 거치는 코스입니다. 앞으로 4.4킬로미터를 더 가야 합니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상운암에 도착했습니다. 상운암 굴뚝에서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상운암은 ‘구름 위에 떠 있는 암자’라는 뜻입니다. 해발 1,000미터에 자리하고 있으니 구름을 깔고 있는 날이 많겠지요. 노란색 칠을 한 작은 법당이 강렬합니다. 

노승이 합장하면서 반겨주십니다. 얼마 전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지신 지수스님입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출가를 하셨다지요? 밥은 먹었는지, 하룻밤 묵고 갈 것인지 스님이 묻습니다. 당장이라도 밥상을 차려주실 기세입니다. 

오늘 하산을 해야 한다고 스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께 인사나 하고 가라고 하십니다. 스님이 법당문을 열어 주십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립니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당한 분들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유족들의 슬픔을 보듬어 달라고 부처님께 청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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