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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란의 ‘히잡 반대 반정부 시위’와 월드컵의 연대

미국에 패하자 환호하던 이란 남성, 군경 총에 사망
이란 선수들 한때 국가 제창 거부
미국 대표팀, 이란 국기서 엠블럼 삭제

  • 기사입력 2022.12.02 13:16
  • 최종수정 2022.12.02 13:19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스포츠는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세계적 관심이 쏠린 월드컵은 더욱 그렇다. 여성 인권이 전반적으로 열악한 중동에서 처음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역설적으로 이 문제가 주요 국제 이슈로 떠올랐다. 월드컵은 자국 정부의 인권 탄압에 저항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여성 문제뿐 아니라 경기 초반에 유럽 국가 선수들이 동성애 권리를 지지하는 ‘원 러브 완장’을 차는 문제로도 월드컵은 진통을 겪었다. 선수들의 정치적 언행을 금지하는 FIFA가 옐로 카드를 주겠다고 경고하자 이 완장 착용은 좌절됐지만 월드컵은 늘 이런 문제로 뒤숭숭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관심을 끈 나라는 주최국 카타르가 아니라 이란이다. 서방의 각국 대표팀, 응원단, 이란 선수들마저 이란의 반정부 시위와 연대해 이란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란은 9월 중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에 끌려갔다가 의문사한 후 전국적으로 ‘히잡 착용 반대 및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사태 초기부터 강경 진압에 나서 어린이 60명을 포함해 448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의 주요 도시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이란 선수들은 지난달 21일 잉글랜드와의 1차전에서 자국의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침묵했다. 시위대에 동조한다는 의미였다. 이란 응원단에서도 시위대 구호가 된 ‘여성, 삶, 자유’(Women, Life, Freedom) 팻말이 등장했다.

그러자 이란 정부는 1차전 직후 선수들이 반정부적 행태를 보이면 가족이 고문이나 감금을 당할 수 있다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후 웨일스, 미국과의 경기 때는 이란 선수들은 경기장에 국가가 흘러나오자 입을 조금씩 움직였다. 마지못해 부르는 인상이 확연했다. 응원석에서도 반정부 시위 구호나 마흐사 아미니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란 정부는 카타르에 혁명수비대 요원들을 파견해 반정부 행동을 단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29일 미국과의 경기 전에 이란 선수들이 국가를 부르고 있다. 자국 정부의 협박으로 마지못해 입을 움직이는 모습이 확연하다. (연합뉴스)
11월 29일 미국과의 경기 전에 이란 선수들이 국가를 부르고 있다. 자국 정부의 협박으로 마지못해 입을 움직이는 모습이 확연하다. (연합뉴스)

급기야 29일 이란 대표팀이 미국에 패해 16강 탈락이 확정되자 이에 환호하던 이란 남성이 이란 보안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과 이란은 정치•외교적으로 줄곧 대립해 왔다. 미국 대표팀이 27일 공식 SNS에 이슬람 공화국 엠블럼을 삭제한 이란 국기를 올리자 이란 정부는 미국을 월드컵에서 즉각 퇴출시키거나 10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려야 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상당수 이란인은 이란 정권에 대한 반발과 선수들이 연대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이란 대표팀에 대한 응원을 거부하고 있다.

서방 언론들은 27세의 이란 남성 메흐란 사막이 미국과의 경기 직후 이란 북부 도시 반다르 안잘리에서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이란 대표팀의 패배를 축하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시민들이 곳곳에서 축포를 터뜨리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장면도 온라인에 올라왔다. 30일 테헤란에서 열린 이 남성의 장례식에서 추모객들이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장면도 공개됐다.

이 남성은 공교롭게도 미국전에서 뛴 이란 미드필더 사이드 에자톨리히와 친구로 유소년 축구팀에서 함께 운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친구는 자신의 SNS에 추모와 함께 ‘언젠가는 가면이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 우리 조국이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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