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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월드컵 선수 '꽃미남' 별명 유감

성별이나 외모 기준으로 사람 평가하지 말자

  • 기사입력 2022.11.30 15:15

우먼타임스 = 이한 기자

과거 2번의 올림픽과 5번의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있었다. 기자는 그 종목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 사람 이름은 알았다. 2등 했다는 소식은 없고 늘 금메달 얘기만 들린 선수여서다. 그는 세계신기록 보유자인데 자신이 세운 신기록을 스스로 깨고 새 기록을 쓴 것만 서른 번 가까운 압도적인 선수였다.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는 그 사람(옐레나 이신바예바)을 ‘미녀새’라고 불렀다. 하늘 높이 나는 새는 장대높이뛰기 선수 별명으로 잘 어울렸다. 하지만 굳이 ‘미녀’라고 표현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좋은 뜻으로 붙인 수식어지만 사람들이 그가 어떤 경기력을 보였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가 아니라 성별이나 외모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서다.

사실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 큰 규모의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서 누가 예쁘고 잘 생겼는지 언급했다. 고백하자면, 기자도 그런 기사를 종종 썼다. 2006년과 2010년 월드컵 때는 나라별로 잘생긴 축구선수를 모아 기사로 썼다. ‘여성 독자가 미남 스타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인식에서였다. 요즘은 가능하면 그런 내용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외모는 사회적 경쟁력의 일부다. 상대의 첫인상이나 호감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그게 잘 안 된다.

하지만 성별이나 인종으로 누군가를 규정짓고 그로 인해 차별하면 안 되듯 외모 역시 누군가를 평가하는 커다란 기준이 되면 안 된다. 스포츠 선수의 수식어가 미녀나 꽃미남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요즘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이다. 누가 잘생겼는지도 화제다. ‘꽃미남’ 수식어가 이번에도 생겼다. ‘만화책을 찢고 나온 남자’라는 뜻의 별명도 들린다. 하지만 어느 팀의 누가 ‘훈남’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대한민국 조규성이 가나 모하메드 쿠두스 옆을 돌파하던 모습. (연합뉴스)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대한민국 조규성이 가나 모하메드 쿠두스 옆을 돌파하던 모습. (연합뉴스)

선수들은 부지런히 훈련했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최선을 다해 뛰었다. 팬들도 그들과 함께 숨 쉬며 가슴 뛰는 경험을 했다. 과거 ‘슛돌이’로 유명했던 한 젊은 선수는 경기 막판 동료들이 지친 기색을 보이자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양팔을 치켜들고 팀원들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눈 주위 뼈가 부러져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뛰던 선수는 공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망설임 없이 뛰어올라 다친 얼굴을 내밀며 헤딩을 시도했다.

우리나라 대표팀에게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인정되지 않고 그대로 경기가 끝난 날,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하던 감독은 끝까지 맞서 싸운 상대 팀 스태프와 마주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젊잖은 얼굴로 웃으며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스포츠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바로 그런 지점들이다. 누가 예쁘고 누가 더 잘 생겼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스포츠도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이고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큰 이벤트니까 호감형 외모의 선수에게 모이는 관심도 이해가 간다. 게다가 그 선수 역시 부지런히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해 뛰었으니 대중의 관심이 오직 외모에만 쏠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앞다퉈 ‘꽃미남’ 수식어를 붙이는 게 조금은 아쉽다. 왜냐하면 ‘미녀새’가 어색한 이름이듯 ‘꽃미남’ 역시 그라운드에 어울리지 않는 별명일 수 있어서다. 이건 그 선수가 어떤 성별이든 관계없이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얘기다.

성별이나 인종, 국적이나 나이 또는 외모 같은 기준으로 누군가를 규정하지 말자. 유명인이 대중에게 그런 경향으로 소비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언론에서 먼저 그런 수식어를 붙이는 건 자제하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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