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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100대명산 ③ 간월산·신불산·영축산] "우마고도를 아시나요?"

울산 해산물과 밀양 농산물 오가던 교역로
소금장수 소장수 걷던 길엔 억새만 우거져

  • 기사입력 2022.11.30 11:22
  • 최종수정 2023.02.01 09:51

우먼타임스 = 박상주 편집국장

차마고도(茶馬古道)를 아시나요? 차마고도는 먼 옛날 중국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교역로였습니다.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이 오가던 길이었습니다. 해발4,000~5,000미터의 험준한 설산을 오르내리는 길이었습니다. 실크로드보다 200여년 더 오래 된 길입니다.

우마고도(牛馬古道)를 아시나요? 우마고도는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가지산도립공원을 넘는 길입니다. 해안지방인 울산의 해산물과 내륙지방인 밀양의 농산물을 교역하는 길이었습니다.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 등 해발1,000미터 이상 봉우리들을 굽이굽이 넘는 길입니다. 

오늘 산행 코스는 우마고도입니다. 우마고도 들머리인 배내고개에서 시작해 배내봉~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재~영축산~취서산장을 거쳐 울주 삼남면 방기마을로 내려오는 15킬로미터 산행입니다.

이른 아침 서울역에서 KTX를 탔습니다. 2시간 15분 만에 울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울산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배내고개를 가자고 말합니다. 배내고개는 우마고도를 넘으려는 장꾼들이 몰려들던 곳이었습니다. 요즘은 산꾼들이 몰려듭니다.

배내고개 식당에서 아침으로 산채비빔밥을 먹습니다. 산채향이 진합니다. 막걸리 한 잔을 반주로 곁들입니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산을 오릅니다. 배내봉~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재~영축산~취서산장을 거쳐 울주 삼남면 방기마을로 내려오는 15킬로미터 산행을 했습니다.

등산로로 접어듭니다. 완만하다고도 할 수도 없고, 가파르다고도 할 수 없는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침목으로 잘 정비된 계단길입니다.

40여 분 만에 배내봉(해발966미터)에 올랐습니다. 사방으로 시야가 활짝 열립니다. 북쪽으로 운문산과 가지산, 문복산, 고헌산이 줄줄이 달립니다. 남쪽으로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이 솟아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천황산과 재약산이 우뚝합니다.  동으로 푸른 동해가 아득히 펼쳐집니다.

배내봉부터는 평탄한 능선길입니다. 이따금 가벼운 암릉 구간도 만나지만 대개는 기분 좋은 흙길입니다. 배내봉에서 1시간 남짓 걸으니 간월산 정상(1,069m)입니다.  

간월산 정상에 섰습니다. 산 아래로 억새꽃이 까마득하게 물결칩니다. 5만 평(16만5000㎡) 규모의 간월재 억새평원입니다. 간월재는 사자평과 신불재와 더불어 영남 알프스를 억새 명소로 만드는 곳입니다.

갑자기 안개가 몰려옵니다. 후드득 빗방울까지 떨어집니다. 산맥들이 순식간에 안개 장막 뒤로 숨습니다. 지척의 억새들만 눈에 들어올 뿐입니다. 억새평원 사이로 한 가닥 능선길이 이어집니다. 안개를 뚫고 억새길을 걷습니다. 울산 소금장수와 언양 소장수, 건어물이나 간고등어를 짊어진 장꾼들이 넘던 길입니다. 

소금장수들은 그 무거운 소금 가마니를 지고 거친 산길을 어떻게 넘었을까요? 언양 소장수들은 그 무서운 호랑이와 표범이 출몰하던 깊은 산골을 어떻게 지났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삶의 여정은 고달픕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무거운 택배 물건을 나르고, 위험한 기계 앞에서 일을 하고, 밤 늦도록 컴퓨터 자판을 두드립니다. 그러다가 과로사를 하기도 하고,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기도 하고, 이런 저런 직업병을 얻기도 합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이 넘어야 하는 ‘삶의 우마고도’는 여전히 험합니다.

 

어느새 신불산입니다. 영남 알프스 아홉 봉우리 중 네 번째로 높은 산(해발 1,159미터) 입니다. 신불산은 동족상잔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산입니다. 지리산 못지 않게 빨치산들의 피로 물들어 있는 산입니다. 

신불산은 빨치산 사령관 하준수(남도부)가 게릴라 활동을 벌이던 무대였습니다. 하준수는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과 이태의 소설 ‘남부군’의 주인공 모델이 된 인물이지요. 상주씨가 젊은 시절 탐독했던 소설들입니다.

하준수는 일본 중앙대학 재학 중 조선학도병 징집을 거부한 채 귀국을 합니다. 그리고는 지리산에 입산하여 무장 독립투쟁을 시작합니다. 해방 이후 여운형 선생을 도와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합니다. 잠시 이승만의 경호실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여운형이 암살을 당하고,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친일파들이 다시 설쳐 대기 시작했습니다. 분노한 하준수는 남로당에 입당합니다.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무장투쟁을 벌입니다. 

하준수는 1948년 남한 정부 수립 이후 월북을 합니다. 소련 군정으로부터 레닌 훈장과 영웅칭호를 받고, 인민군 소장이 됩니다.

하준수가 다시 남한으로 내려온 것은 한국전쟁 때 였습니다. 김일성은 하준수에게 남도부라는 가명과 중장 계급장을 주면서 특별한 지시를 내립니다.

"신불산을 거점으로 후방을 교란하시오. 우리는 대구에서 만납시다. 함께 부산으로 진격합시다."

남도부는 유격요원 300여 명을 이끌고 신불산으로 내려옵니다. 왕방골과 배내골 사이 우뚝 솟은 ‘681갈산고지’에 지휘본부를 세웁니다. 사방을 한 눈에 경계할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신불산, 간월산, 영축산, 배내봉 등 험준한 고봉들에 둘러싸인 곳이었습니다.

남도부 부대는 한때 1,000여 명 규모로 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엔 최후의 10여 명만이 남게 됩니다. 결국 북한은 남도부에게 유격활동을 접고 도시 지하공작을 벌이라는 지령을 내립니다. 남도부는 고물상으로 변장하고는 대구에 잠입합니다. 친척집을 기웃거리다가 잠복하고 있던 특무부대에 의해 체포됩니다.  남도부는 육군특무부대장 김창룡에 의해 서울 수색의 육군사형집행장에서 총살을 당합니다. 그의 나이 꽃다운 34살 때였습니다.

남도부 빨치산은 70여년의 일입니다. 이제 전설이나 역사나 이야기로 묻혀야 할 시점입니다. 하지만 남도부 이야기는 21세기 한반도에서도 여전히 현실입니다. 

남북은 휴전선으로 갈린 채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합동군사 훈련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질 세라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그 성능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어떻게 하면 잘 죽일까 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은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소금장수와 소장수와 간고등어장수가 걸었던 억새길을 걷습니다. 빨치산과 군경이 쫓고 쫓기던 억새길을 걷습니다. 드넓은 신불재 억새평원을 지나 영축산 정상을 향해 오릅니다. 

영축산 정상에 섰습니다. 영축산은 인도에 있는 산입니다.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하던 곳입니다. 영남 알프스의 영축산은 인도의 영축산과 산세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영축산 기슭에 자리한 통도사는 영축총림이라고 부르지요.

벌써 어두워 지기 시작합니다. 서둘러 하산을 합니다. 취서산장 방면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길이 가파르고 거칩니다. 어둠까지 겹칩니다. 헤드랜턴을 켭니다. 가느다란 한 줄기 불빛이 어둠을 가릅니다. 얼른 내려가서 국밥에 막걸리 한 사발 해야 겠습니다. 소금장수와 소장수, 간고등어장수, 심지어 빨치산들도 산행을 마치고 나면 막걸리 한 잔 씩 걸치지 않았을까요? 산행의 백미는 정상주, 그 다음은 하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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