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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경제학] 옷장으로 들어온 채식주의

구스다운 패딩 한 벌에 거위 15~20마리 털 필요
천연모피는 ‘고급’ 인조모피는 ‘저렴’하다는 건 옛말
웰론, 신슐레이트 등 동물 털 대체할 신소재 다양

  • 기사입력 2022.11.29 18:07
  • 최종수정 2022.11.30 11:40

우먼타임스 = 곽은영 기자

날씨가 추워지면서 코트, 모피, 패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겨울 옷에는 보온을 위해 동물의 털이나 가죽이 사용된다. 그런데 동물의 털과 가죽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패션업계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몇 년 전부터 동물의 가죽과 털 대신 식물성 소재나 버려지는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비건 제품을 내놓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환경적이거나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동물 착취에 대한 반감은 비건 패션 시장을 키웠다. 채식이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입는 것부터 바꿀 수 있다는 관점이 적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국내 비건 패션 브랜드 ‘낫아워스’의 신하나 대표는 “채식보다 동물성 소재의 옷을 사지 않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비거니즘은 동물학대를 모두 배제하는 삶의 실천이자 철학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각자 삶에서 더 편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실천하면 된다.”고 말했다. 

동물의 털과 가죽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최근 패션업계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동물의 가죽과 털을 대체한 소재로 만든 옷을 선보이고 있다. (픽사베이)
동물의 털과 가죽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최근 패션업계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동물의 가죽과 털을 대체한 소재로 만든 옷을 선보이고 있다. (픽사베이)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30세대 절반 이상이 비건 라이프를 살아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비건 라이프 스타일은 이제 시대정신이 되어가고 있다. 

비건은 과거에는 주로 육류나 달걀, 우유와 같은 동물의 부산물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의미했지만 최근에는 식습관을 넘어 패션과 뷰티 같은 생활 전반에서 동물 착취에 반대하며 동물보호 가치를 실현하자는 ‘비거니즘’으로 확대되고 있다. 

◇ 천연모피는 ‘고급’ 인조모피는 ‘저렴’하다는 건 옛말

패션은 시대를 보는 바로미터다. 사실 과거에는 진짜 동물의 털과 가죽을 벗겨서 만든 밍크코트는 부와 럭셔리의 상징이었다. 가짜 가죽은 ‘레자’로 불리며 싼 맛에 입는 저렴한 제품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이제는 진짜 가죽이나 모피를 입는 일이 오히려 ‘의식이 떨어지는 행동’이 됐다. 천연모피는 고급스럽고 인조모피는 저렴하다는 이분법은 패션계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공식이 됐다. 

실제로 명품 브랜드에서는 몇 년 전부터 더 이상 천연모피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마이클 코어스, 구찌,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는 몇 해 전부터 더 이상 천연모피를 팔지 않기로 했고 얼마 전 서거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2019년 11월 인조모피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미국 유명 백화점들도 잇따라 천연모피 판매 중단을 선언했고 세계 4대 패션쇼인 런던패션위크에서는 모피로 만든 옷은 런웨이에 선보이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잡지 ‘엘르’는 작년 말, 앞으로 잡지는 물론 SNS를 포함한 모든 매체에 모피 관련 콘텐츠를 싣지 않기로 결정했다. 패션 잡지사 중 모피 콘텐츠 금지 결정을 내린 건 엘르가 처음이다. 발레리아 베솔로 요피즈 엘르 부사장은 12월 영국에서 열린 패션 행사에 참석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피는 유행이 지났다. Z세대는 패션에 책임감과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모피 금지를 계기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패션산업에 집중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처럼 업계 내에서 모피를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배경에는 모피가 동물을 학대해서 얻은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있다. 모피 외에 오리나 거위 털을 충전재로 이용한 패딩도 동물학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보온성이 높다고 알려진 구스다운과 덕다운은 거위와 오리의 가슴과 겨드랑이 부위 솜털로 만드는데 대체로 살아있는 거위와 오리에게서 털을 강제로 뜯어내는 방식으로 채취된다. 이를 ‘라이브 플러킹(Live Plucking)’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머리카락을 통째로 뽑힐 때와 비슷한 강도의 고통을 주는 행동이다. 이 과정에서 동물은 큰 고통과 공포를 느끼고 살갗이 찢겨져 나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구스다운 패딩 한 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털은 얼마나 될까. 업계에 따르면 거위 15~20마리에서 털을 뜯어내야 한다. 오리나 거위는 생후 10주째부터 마취도 없이 산 채로 털을 뜯긴다. 동물보호단체 PETA에 따르면 거위나 오리는 죽기 전까지 최대 15번가량 라이브 플러킹을 당한다. 

◇ 동물학대로 만든 옷 퇴출해도 대체 소재 많아

낫아워스의 패디드 자켓.겉 감은 100% 재활용 나일론, 안감은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충전재는 3M사의 2온스 신슐레이트™를 사용했다.  (낫아워스)
낫아워스의 패디드 자켓.겉 감은 100% 재활용 나일론, 안감은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충전재는 3M사의 2온스 신슐레이트™를 사용했다. (낫아워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학대로 만들어진 옷을 퇴출하더라도 이를 대체할 친환경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올해 3월 진행한 모피·다운 반대 퍼포먼스에서 “시중에는 동물 털을 대체할 만한 패딩 소재로 솜 패딩뿐 아니라 프리마로프트, 웰론, 신슐레이트 등 동물을 이용하지 않은 비건 제품들이 나와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다운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 의식 부족으로 매년 다운 제품 수입과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패션업계에서는 동물 학대로 만들어지는 모피나 다운 제품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동물 학대 행위 없이 윤리적인 방법으로 생산된 제품에 대한 기준인 ‘책임 다운 기준(RDS)’을 적용하거나 신소재를 활용한 패딩을 개발하고 있다. 동물의 털을 대체할 만큼 따뜻하고 생활방수나 정전기 방지 기능을 갖춘 인공충전재를 개발하고 있는 것. 

대표적으로 이원복 대표도 언급한 웰론 소재가 있다. 2004년 국내 기업 세은텍스에서 개발한 신소재로 오리털을 모방한 최초의 인조 충전재로 특허 등록 돼 있다. 부드러운 극세사로 구성돼 털 빠짐 현상이 없다. 덕다운보다 무게는 더 나가지만 물세탁 시 몰림 현상이 적고 복원력이 뛰어나다. 리복, 휠라, 에잇세컨즈에서 해당 소재로 패딩을 선보였다. 

미국 3M사가 개발한 신슐레이트 소재도 있다. 미세한 섬유를 극세사로 가공해 에어포켓과 같은 경계층을 만들어 공기를 가둬두는 원리로 보온에 특화돼 있다. 거위털의 1.5배 이상의 보온성에 부피감은 절반으로 줄여 패션과 보온성 두 가지를 다 잡았다. MLB, 비이커, 휠라, K2, 앤더슨벨, 인스턴트펑크에서 해당 소재로 상품을 선보였다. 

프리마로프트도 패딩 소재다. 1980년 미국 육군에서 개발된 신소재로 습기에 약한 다운의 단점을 보완, 방수기능과 땀 배출 기능 뛰어나 야외 활동 시에도 체온을 유지시킨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 부문 골프웨어 왁, 스톤아일랜드, 유니폼브릿지 등에서 이 소재로 제품을 선보였다.

아예 ‘비건’을 콘셉트로 론칭된 국내 브랜드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낫아워스와 비건타이거가 있다. 낫아워스는 동물성 원료와 함께 PVC 소재도 사용하지 않는 비견 패션 브랜드다. ‘우리의 것이 아닌’이라는 이름처럼 동물의 털과 가죽 등을 이용하지 않는다. 100% 재활용 나일론과 재활용 폴리에스터, 신슐레이트, 유기농 선인장 가죽과 같은 친환경 소재들을 사용해서 옷을 만든다. 비건타이거에서는 유기농으로 재배한 선인장과 와인을 착즙하고 남은 찌꺼기, 콩기름으로 만든 폴리에스터 등을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다만 ‘비건’을 그린워싱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많으므로 소재를 살펴볼 때 주의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한 제품에 대해서 친환경적이라거나 동물 친화적이라고 홍보하는 경우가 있는데 동물소재를 활용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친환경적이지는 않다.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아 보다 윤리적일 수는 있지만 이러한 마케팅 포인트가 자칫 패션업계가 안고 있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와 겹쳐져 더 많은 환경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에 꼭 필요한 경우 소재를 고려한 구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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