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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월 시장실 비서에 대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언행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시장 유족은 성희롱이 아니며 인권위가 절차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지난해 4월 서울행정법원에 인권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비서가 박 시장에게 보낸 ‘사랑해요’ ‘꿈에서 만나요’ 등 복원된 텔레그램 문자를 증거자료로 제출하면서 성희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유족을 대리했던 정철승 변호사는 10월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 문자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하면서 2차 가해라는 논란을 일으켰는데 “박 전 시장이 이런 대화가 공개되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극단적 선택을 한 모양”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15일 내려졌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 이정희)는 박 전 시장의 배우자인 강난희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인권위에 이어 법원 역시 박 전 시장이 비서를 성희롱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의 주요 쟁점은 ▲소송 요건을 갖췄는지 ▲인권위 권고에 절차적 위법이 있는지 ▲실체적 위법이 있는지 등 3가지였다.
[성희롱으로 인정할 근거가 충분하다]
재판부는 우선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여러 진술과 정황에 비춰 성희롱으로 인정할 근거가 충분한 만큼 이에 대한 인권위 판단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요지는 이렇다.
“텔레그램 복구 결과와 피해자와 참고인 진술 등을 볼 때 경험하지 않고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구체성이 있어 신빙성이 있다. 망인의 행위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로 만드는 내용이 주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각 행위가 성적 언동에 해당하며 성적 굴욕감을 주는 정도에 이르러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피해자는 비서직을 수행하며 자신의 지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최고 권력자인 망인을 직접 보좌했고, 각 행위에 대해 망인에게 거부 의사나 불쾌감을 표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피해자가 대화를 종결하기 위한 수동적 표현이자 밉보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말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망인에게 성적인 동기가 없었다 하더라도 성희롱 인정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인권위 판단은 적법하다]
재판부는 박 전 시장 사망으로 수사가 종결됐기 때문에 인권위도 진정을 각하했어야 한다는 유족 측의 절차적 위법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위가 당시 개시했던 조사가 성희롱 사실을 가려내기 위한 실질적 차원의 성격이었던 만큼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인권위가 형법을 비롯한 형사법상 성폭력 범죄 성립 여부에 관해서까지 판단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권위는 형사절차상 한계를 보충·보완해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를 시정하는데 필요한 구제조치를 할 수 있다. 이는 형식적 면에서 피해자의 ‘진정에 따른 조사’가 아닌 실질적 의미의 ‘직권조사’에 해당해 형사사건이 종결됐다는 이유만으로 직권조사를 개시할 수 없거나 사건을 각하해야 했다고 보기 어렵다.”
“인권위가 망인의 성희롱 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자 구제 등 제도개선을 위해 서울시장 등을 상대로 한 권고결정은 권한 범위 내의 행위로서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 강씨의 소 제기에 따른 이익은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고인의 배우자로서 추모 감정이나 인격권 등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