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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자율주행 서빙 로봇으로 본 요즘 한국

손님 혼자 결제하고 로봇이 서빙
로봇·IT기술 발전과 그 이면 숙제

  • 기사입력 2022.11.07 14:13
  • 최종수정 2022.11.07 16:09

우먼타임스 = 이한 기자

기자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놓치기 싫은 TV 프로그램을 꼭 ‘본방사수’ 하셨다. 그때는 ‘재방송’이 많지 않고 채널 숫자가 적었으며 당시 조부모님은 ‘녹화’ 기능을 어려워 하셨다. TV를 ‘테레비’라고 부르던 두 분은 기자의 아버지가 설명서를 보며 방법을 알려드려도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귀찮았거나 새로운 기기가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러셨을 터다.

식당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음식을 서빙하는 시대다. IT 기술의 발달은 최근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픽사베이)
식당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음식을 서빙하는 시대다. IT 기술의 발달은 최근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픽사베이)

그 시절 기자의 아버지는 척척박사 같았다. 설명서만 있으면 신상 가전도 능수능란하게 다뤘고 고장 난 라디오도 직접 고쳤다. 전기가 나가면 ‘두꺼비집’을 찾아 이것저것 올렸다 내려 불도 다시 켰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도 못하는 일이 있다. 내년 봄 가족여행을 계획 중인데 아버지는 모바일 앱으로 숙소 예약을 못 하신다. 기자가 여러 번 설명해드렸지만 지금도 어디서 뭘 눌러야 하는지 헷갈리신다.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기자도 요즘 어려운 게 있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은 자주 보지만 짧은 동영상 위주로 소통하는 SNS는 낯설다. 정보를 텍스트 대신 영상으로 검색하는 일도 기자에게는 낯설다. 글은 아무리 길어도 스크롤을 한눈에 내려보면 필요한 부분만 정리해 확인할 수 있는데 영상은 필요한 정보가 어디 있는지 알기가 어려워서다. 하지만 이건 영상 문제가 아니라 달라진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자의 문제다.

오래된 것은 새 것에 길을 내준다. 쓸쓸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아버지에게 앱 사용법을 알려드리던 기자도 앞으로는 젊은 세대에게 배워야 미래의 ‘신상’이 주는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지난 주말 한 식당에서 흥미롭지만 낯선 풍경을 봐서다.

◇ 태블릿으로 결제하고 로봇이 서빙하는 식당

40년이 넘은 유명한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자주 방문했지만 한 동안 찾지 않던 곳인데 이번에 가보니 모습이 좀 변해 있었다. 메뉴는 같은데 시스템이 달라졌다. 주방과 카운터에만 사람이 있고 홀에는 직원이 없었다. 대신 자율주행 서빙로봇 2대가 있었다.

LG CLOi와 DIGICO KT 마크를 달고 있는 이 로봇(2대)은 주방에서 테이블까지 음식을 갖다줬다. 똑똑하고 안전해 보였다. 주변에 사람이 오면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길을 찾아 돌아갔다. 서빙(?)을 마치면 주방 근처 대기 장소로 혼자 돌아가 다음 임무를 기다렸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최근에 새로 생긴 듯 했다.

손님은 테이블에 앉아 태블릿 모니터 화면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카드로 결제한다. 주방에서는 음식이 완성되면 쟁반에 담아 로봇 선반에 올려두고 테이블 번호를 입력한다. 그러면 로봇은 자리로 이동해 음식을 꺼내기 좋은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 선다. 식당 관리자나 손님이 음식을 받으면 로봇은 미리 지정된 대기 장소로 돌아간다. 이 식당의 대기 장소는 주방 옆이다. 여기서 다음 음식을 받으면 다시 서빙을 시작한다.

손님들은 로봇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사진이나 영상을 찍었다. 일부 손님은 ‘어머 쟤 좀 봐 귀여워’ 하면서 웃거나 일부는 ‘로봇이 (음식을) 가지고 오니까 뭔가 어색하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서빙 로봇이 개발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호텔에서 생수나 수건 등을 객실로 배달하거나 음식을 테이블로 옮겨주는 로봇 소식도 들었다. 하지만 실제 식당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이 식당 관계자는 “서빙 직원을 구하기 어려워 로봇을 운용하기 시작했고 (해당 식당 메뉴 기준 성수기인) 여름에도 로봇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 세대 간에 생길 수 있는 디지털정보격차

기자는 태블릿으로 결제하고 로봇이 냉면을 서빙하는 이날 모습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 풍경을 느꼈다. 하나는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IT 기술과 그 속도에 대한 적응 문제다. 앞서 기자가 언급한 세대별 차이가 바로 그 문제다.

당신에게는 키오스크가 익숙한가? 일부 어르신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진행한 2021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일반 국민 대비)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9.1%다. 지난 2020년(68.6%)보다는 높아졌으나 고령층 소비자는 여전히 IT 관련 정보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의미다. 60대보다는 70대가, 70대보다는 80대 이상이 더 그렇다.

그들은 무인 주문이 어렵다. 실제 목소리를 들어보자. 경기도에 사는 유모씨(68)는 “아파트 1층에 무인카페가 생겼는데 키오스크 주문만 가능해서 잘 가지 않는다. 사용법을 모르면 직원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무인카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유모씨 남편은 올해 74세인데, “직원에게 물어보려면 '나이 든 사람이라 그런 것도 모른다’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그냥 키오스크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또래 중에도 사무실에서 컴퓨터 사용을 자주 해본 사람은 상대적으로 무인 주문에 익숙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식당에서도 한 노부부는 키오스크 주문을 망설이다 잠시 후 주차를 마치고 들어온 젊은 일행이 자리를 잡고 나서야 메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는 삶의 질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디지털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겪을 수 있어서다. 음식이나 커피 주문뿐 아니라 기차나 택시를 잡거나 영화를 예약하는 일도 대부분 단말기로 이뤄진다. 빠르고 간편하지만 새로운 플랫폼과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점점 불편해진다. 이 와중에 노년층 소비자가 소외될 수 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난 2018년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디지털 역량이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 바 있다.

◇ 달라지는 서비스 시장 모습

하나 더 짚어볼 부분은 달라지는 서비스 시장 풍경이다. 키오스크는 코로나19와 비대면 트렌드 속에 크게 늘었다. 디지털데일리 10월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공공분야의 경우 2019년 대비 2021년 약 2000대가 증가했고 민간분야에선 약 3배 이상 증가했다.

경향신문 10월 18일 보도를 보면 전국 외식업체 중 4.5%(농림축산식품부, 2021년)가 키오스크를 쓰는데 서울에서는 평균의 2배 가까운 8.8%가 사용 중이다. 피자·햄버거·샌드위치 업종만 보면 16.7%로 늘어난다. 김밥 등 간이음식점(11%)과 포장 판매 전문점(6.5%)의 도입률도 높은 편이다.

무인주문기가 늘어나면서 함께 언급됐던 얘기는 ‘인건비’다. 2018년 이코노미조선 뉴스에도 ‘키오스크<무인주문기> 1대가 직원 3명 대체…인건비 절감 자구책’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기사에서는 당시 통계를 기준으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을 느낀 영세 사업장 5곳 중 1곳이 직원을 줄였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키오스크 한 대가 직원 2~3명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 발언을 소개했다.

이날 기자와 함께 식당을 찾은 지인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지인은 가족과 함께 식음료 관련 자영업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 그는 “업주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고려하면 바쁜 시간에 잠깐만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고 싶겠지만 그게 어려우니 무인주문기나 서빙로봇 수요가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 본 자율주행 서빙 로봇
서울의 한 식당에서 본 자율주행 서빙 로봇

◇ 로봇과 통신 기술 발전...어디까지 갈까?

하나 더 짚어보아야 할 것은 로봇 기술과 통신 기술 자체의 발전이다. 실제로 자율주행 등을 활용한 IT분야 신기술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자·통신 기업의 협업도 여러 방면에서 이뤄진다.

LG전자는 지난 8월 KT와 국내 서비스 로봇 사업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양사는 로봇 제조와 서비스 분야 역량을 결합해 신사업을 찾고 차세대 로봇 연구개발을 위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국내 서비스 로봇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플랫폼 구축 및 정부 로봇 과제 협력 등을 단계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LG전자는 자율주행과 센서, AI, 카메라 등 로봇 솔루션 관련 핵심 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KT가 보유한 통신·네트워크 기술력과 안내, 배송, 서빙 등 다양한 로봇 사업 운영 노하우에 접목할 계획이다. 당시 LG전자는 “로봇솔루션을 더욱 고도화하고 로봇 판매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 해당 식당에 배치된 서빙 로봇에도 LG CLOi와 DIGICO KT 마크가 있었다.

안전 등 문제에서도 기술개발이 많이 이뤄졌다. LG전자가 개발한 이동로봇 전제어기는 올해 글로벌 시험ㆍ인증 전문기관 DNV로부터 ‘ISO13849-1’ 인증을 획득했다. 실내외배송로봇, 안내로봇 등 이동형 서비스 로봇 전용으로 개발된 안전제어 모듈로 이 인증을 받은 것은 LG전자가 처음이다.

이 제어기는 로봇에 탑재된 센서에서 보내주는 신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위험을 감지해 로봇이 안전하게 감속 및 정지할 수 있다. 손웅희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원장은 이 인증에 대해 “국내 기업이 이동형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기능안전에 대한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로봇산업 시장을 선도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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