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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건강불평등에서 해방되는 방법 

마르탱 뱅클레르 저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

  • 기사입력 2022.10.31 13:59

언제부턴가 남성 동료나 남자친구가 내 짐을 들어주는 게 꺼려지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나 사건으로 인해 꺼려진 건 아니었고, 나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정의되는 듯해 거부감을 느낀 것 같다. 물론 내가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게 버거워 보여 선의로 도움을 줬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 큰 성인이었고 짐이나 필요한 물품을 옮기는 소소한 일은 알아서 해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럴 때면 선뜻 타인을 도우려는 동료와 친구들의 굵직한 골격과 몇 배 강한 힘이 부럽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힘센 여자로 살고 싶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는 있지만, 내 운동은 사실 부실하게 타고난 체력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정도에 그친다. 어릴 적부터 체력이 좋지 않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탓에 스스로 인지하는 자신은 늘 힘없는 존재였다. 

어쩌면 스스로를 약하게 느끼는 ‘인지’가 힘센 존재가 되고 싶은 열망을 만들었을지 모른다. 여성은 연약하고 남성은 강인하다는 고정관념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들었던 편견 중에 남자는 강인하고 이성적이며 여성은 연약하고 감성적이라는 말이 있다. 남성의 골격과 근육이 여성보다 튼튼하고 잘 발달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성과 합리, 감성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발달한다는 건 인지편향 아닐까? 사람의 성향과 정신건강을 성별에 따라 일반화하기에 우리의 다양성은 크게 발전했다.

마르탱 뱅클레르 저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 (교양인)
마르탱 뱅클레르 저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 (교양인)

여성으로 살되 여성의 몸에 자신감이 없던 나는 얼마 전 마르탱 뱅클레르의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라는 책을 통해 처음 페미니즘 의학이라는 학문을 접했다. 프랑스의 의사이자 작가인 마르탱 뱅클레르는 진료실과 자신이 운영하는 웹진을 통해 여성들에게 받는 몸에 관한 질문 144개를 추려 이 책을 구성했다. 사춘기, 월경, 섹슈얼리티, 피임, 임신, 출산, 정신질환 등을 상세하게 다룬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지속되고 있는 ‘건강불평등’을 느끼고 여성으로 사는 게 생리학적, 정신적, 사회적인 위험 요인이라는 사실을 꼬집는다. 남성보다 덜 존중받고, 치료받지 못하고, 이따금 성폭력과 차별과 비방에 노출되며 연약하게 살아가는 여성의 현실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순결이라는 관념은 부유한 백인 여성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으며 불결이라는 관념과 대비됩니다. 불결은 유색 인종이거나, 가난하거나, 정해진 남성을 위해 처녀성을 간직하지 않고 욕망을 표출하는 여성의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처녀성은 순전히 남성 중심적인 환상이고, 명백한 불평등을 보여주는 예시입니다.(중략) 그러므로 처음 관계를 맺을 때 피가 나온다는 신화는 그저 신화일 뿐입니다. 유난히 폭력적이고 상처를 입힐 만한 성관계가 아니라면 첫 관계에서 무조건 피를 흘린다는 얘기는 생리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 92p”

“아주 어릴 적부터 대다수의 남자아이에게 ‘여자애처럼’ 울지 말라고 명령하거나 또 대다수의 여자아이에게 ‘순응하는’ 방식을 따르도록 한다면 이것들은 그들의 뇌와 그들이 앞으로 내릴 결정에, 또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차적인 방식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결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 442p”

오늘 날짜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당 0.808명이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자가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누구나 알만한 이 통계는 여전히 여성을 아이를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존재로 판단한다. 출산율이 아니라 출생률이라 표기해야 정당한데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명칭과 통계는 포털 사이트에 보기 좋게 표기돼 있다. 이게 바로 사회가 인지하는 여성이고, 우리의 현재다.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를 읽으며 나는 의학 지식을 두둑이 채우는 동시에 수십 년 살며 겪어온 몸의 불평등을 기억했다. 월경과 관련해 불쾌한 농담을 참아야 했던 순간과 당연히 출산을 기대하는 사회적 시선, 여성은 약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부담스러운 선의 등 수많은 불평등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날들이 축적됐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 자신의 몸을 얼마나 알고 존중하며, 또 존중받는가이다. 내 몸을 명확히 인지하고 몸의 결정권을 확실히 손에 쥐는 것이야말로 여성이 건강불평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다.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는 뱅클레르가 진료실과 자신이 운영하는 웹진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에게 공통적으로 받은 질문 144개를 추려 답을 단 것이다. 저자는 각 연령대별로 생겨나는 고유한 질문들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여성의 생애 주기 순서로 책을 구성했다. 그리하여 사춘기, 월경, 섹슈얼리티, 피임, 아이를 낳고 싶거나 낳고 싶지 않은 경우, 임신, 출산, 수유, 갱년기, 부인과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여성의 정신질환 등이 차례로 다루어진다.

◇마르탱 뱅클레르

의사이자 작가. 프랑스 중서부 도시 투르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1983년부터 르망병원 가족계획 및 자발적임신중단센터에서 25년 동안 의사로 일하며 여성들에게 피임, 자발적 임신 중단, 완경 등 의료 조치를 제공했다. 여성들을 진료하면서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고, 여성의 입장에서 자기 결정권과 자유를 중심에 두고 여성의 건강에 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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