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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d It-여성 과학자를 찾아] ⑤한국천문연구원 최초 여성천문학자 안영숙 연구원

-갖가지 천문 자료를 수집 분석해 달력 만들어
-고대 천문학 연구의 선구자

  • 기사입력 2022.10.28 12:00
  • 최종수정 2023.02.03 11:47

사람들은 과학기술은 남성의 영역이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친 한국 여성 과학자가 적지 않다. 대학에서, 연구소에서, 기업에서 탁월한 성과와 학문적 업적을 쌓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과학기술인들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위셋, 이사장 안혜연)은 뛰어난 여성 과학자·기술인을 찾아 소개하는 ‘She Did It’ 캠페인을 하고 있다. 현장에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위셋’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공공기관으로, 이공계 여성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우먼타임스는 미래의 과학자와 공학도를 꿈꾸는 여성을 위해 위셋의 협조를 받아 ‘She Did It’에 실린 여성과학자들 인터뷰를 주기적으로 전재(일부 수정)한다. 인터뷰 전문은 위셋 홈페이지(wiset.or.kr)나 위셋 블로그(m.blog.naver.com/wisetter)에서, 동영상은 유튜브 ‘위셋’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우먼타임스 = 심은혜 기자

매년 나오는 달력은 누가 만들까. 어떤 과정을 거칠까. 한국천문연구원 최초의 여성천문학자 안영숙 책임연구원. 그는 천문의 변화를 연구해 기초자료를 모아 달력을 만드는 사람이다.

또 드물게 우리나라의 고(古)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다. ​천문의 역사를 대중화한 천문 역사 연구의 초창기 주역이다. 달력의 기초자료가 되는 천문 역법(천체 운행 계산을 통해 날짜와 천체의 출몰 시각 등을 정하는 방법)의 현대화 작업 등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20년 올해의 KASI인 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KASI'는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국천문연구원(Korea Astronomy and Space Science Institute) 약자다.

​안영숙 연구원은 천문학의 역법 분야는 사람들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활형 학문이라며, 사람들이 일상에 불편 없이 살아가고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주는 것이 천문학자로서의 보람이라고 한다.

(위셋)
(위셋)

- 여성으로는 매우 드물게 천문학을 전공했는데요. 왜 천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는지요.

“우리 시대에는 천문학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지학시간에 아주 간단히 언급된 정도랄까요. 처음에는 물리학이나 수학을 전공하려 했는데, 그쪽은 학문의 역사가 오래되어서 인재들이 몰릴 것이고, 천문학은 잘 알려지지 않는 분야라 제가 기여할 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천문학과를 가겠다고 하니 모두 반대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만은 “공부는 너를 위해 시키는 거니까 네가 원한다면 가라”라고 하셨죠.”

​- 한국천문연구원 사상 최초의 연구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1974년에 설립되었고, 저는 1977년 12월 겨울에 입사했어요. 그다음 여성 연구원이 1992년 6월쯤 입사했으니 거의 15년간 여성연구원은 저 혼자였지요. 한 예로 1977년 겨울에 소백산천문대로 관측을 갔는데, 여성용 화장실이 없었어요. 그 당시까지 그곳에 여성 관측자가 간 적이 없었으니까요. 저 때문에 새롭게 시설을 손보느라 애써주시던 생각이 납니다.”

- 달력을 만드는 천문학자인데 달력은 어떻게 만드나요.

“사람들은 달력을 만드는 게 뭐 큰 어려움이 있겠냐고들 생각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24절기, 일출과 일몰시간, 명절 등을 계산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1년을 365일, 음력 1달은 평균 29일이나 30일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계산을 하면 날짜 등이 다르게 나와요. 사실 1년은 약 365.242189일이고 음력 1달은 29.53059일이기 때문이죠.

또 매년 행성의 운동에 의한 섭동(간섭운동)도 같이 계산해야 합니다. 이런 계산들을 통해 국내 전 지역의 일월출몰시각, 박명 시각(여명, 황혼), 태양의 고도와 방위각 등을 알아내죠. 이런 수십 개의 항목들을 계산해 제대로 된 답을 구해야만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달력을 만드는 데 어떤 시행착오 같은 건 없었나요.

“1995년경에 동료들과 우리나라의 자체적인 천문역법계산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미국이나 중국의 자료가 없이도 우리에게 맞는 달력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후에도 상당 기간 달력이 통일되지 않았어요. 저희가 발표한 자료 대신 관례처럼 옛날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았지요. 실제로 2006년 설날은 신문과 포털 사이트에서 발표하는 날짜가 틀려서 많은 민원 전화를 받았어요. 이 때문에 연구원 주도 하에 2018년 천문법을 만들었어요..”

안 연구원의 원래 전공은 관측(식변광성 관측)이었다. 10년 가까이 소백산 천문대로 관측을 다녔다. 그런데 그를 눈여겨본 한 교수가 조선시대의 역법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안 연구원은 과거의 역법을 공부해서 과거와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 분야 연구에 뛰어들었다.

​“2000년경부터 고대 천문학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천문현상은 반복되는 주기가 있어요. 이를 기록한 천문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현대의 천문현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는 조선시대의 관측기기들을 복원하는 데 주력했어요. 2000년도의 간의(簡儀, 지금의 망원경 역할)를 비롯해 해시계류,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여러 의기들을 복원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표준연력이라고 말하는 우리나라의 삼국-고려-조선시대에 걸친 연력표(음양력대조표), 일식도, 천문현상집 등을 편찬했어요. 이것은 고천문학의 가장 기본적 단계의 작업이었고, 이것을 이용해 고천문학의 DB를 만들었어요. 후배들은 이 자료들을 디딤돌 삼아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저의 보람이기도 합니다.

현대 천문학 지식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대민 업무도 많았어요. 명리학을 하는 사람들, 사주팔자를 보기 위해 년, 월, 일의 간지를 물어보는 사람들, 옛날 중국 문헌들을 공부하다 지금과 다르다며 그 이유를 물으러 오는 분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 국내 천문 역사에 관심을 더 갖게 되었죠.”

- 과거의 기록이 현대 천문학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천문현상은 반복되는 주기가 있어요. 짧게는 1일 이내이기도 하지만, 핼리혜성 같은 것은 76년의 주기를 가지고 있죠. 이를 알려면 과거의 관측 기록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오랜 기록(고려 475여 년, 조선 500여 년)은 여러 천문현상들을 검증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어요. 또한 별들도 계속 진화하고 변화하는데, 그 주기가 상당히 길어요. 이때 과거의 기록들을 보면서 ‘아, 그때 폭발이 있어서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이 정도로 빛나고 있구나’ ‘그래서 이런 형태를 갖추고 있구나’라는 것들을 알 수 있죠. 이렇게 과거의 기록은 현대의 천문현상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천문학자로서 어떤 보람을 느끼나요.

“일출일몰 시각, 박명 시각, 달의 출몰 시각과 월령, 24기 시각, 계절의 변화, 낮밤의 길이, 태양의 운동(1년의 길이), 달의 운동(음력), 명절의 계산 등 국민이 제가 제공하는 자료를 이용해 일상에 불편 없이 살아가는 것이 천문학자로서의 보람이지요. 그리고 일식 월식 예보와 혜성의 출현 등과 같은 천문 현상도 국민들에게 알려주죠. 천문학은 사람들의 삶에서 뗄 수 없는 생활형 학문입니다.”

- 천문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천문학은 별의 크기와 운동, 거리, 은하의 크기, 우주 공간을 채우는 물질, 우주의 기원, 우주의 나이 등 무한한 호기심을 최첨단 기기로 조사하며 의문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에요.

천문학은 수학과 물리학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저처럼 고천문학을 연구하고 싶다면 한문 공부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코딩도 중요합니다. 달 궤도 계산, 인공위성 쏘아 올릴 때 그 궤적 계산, 우주모형을 모델링해서 실제 망원경 관측치와 맞추는 작업 등 천문학자가 하는 많은 일에는 코딩이 필요하거든요. 프로그램 코딩하는 법을 배워두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연구원으로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인생은 깁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열심히 살다 보면 번아웃이 올 수 있어요. 적절한 휴식은 더 많은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답니다. 가끔은 산책도 하며 주위를 둘러보세요. 또한 연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이 중요합니다. 상사와 동료, 후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바쁘거나 힘들 때 많은 힘과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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