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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정의 ‘불현듯’] 친애하는 당신들께

  • 기사입력 2022.10.04 14:46

지난 9월에 우먼타임스에 ‘선물’에 대한 글을 썼다(9월 2일 ‘딩동,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편). 올해 내 생일에 딸과 아들에게 나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아이들은 내게 선물을 주는 대신 ‘아동청소년그룹홈’에 치킨 쿠폰을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은 지인 몇 분이 아이들에게 치킨을 보내주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몇 년 전에 그림을 배우러 다녔던 미술학원의 선생님도,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분도 연락을 주셨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룹홈’에 선물을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분들의 연락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며칠 후 일찍 눈이 떠진 새벽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아직 어두운 창밖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짧은 글을 읽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같이 선물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다정함’이다. 다정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정이 많다’는 것이다. ‘정(情)’은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따뜻한 마음이다. 타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누는 마음이다.

‘다정함’은 정의 표현이다. 허기진 친구와 밥 한 끼를 함께 하는 마음이요, 고단한 사람과 술 한 잔을 같이 기울이는 마음이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처한 곤란을 같이 치우고 거드는 마음이다. 슬픔으로 웅크린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 같이 걸으려 애쓰는 마음이다. ‘같이’하는 마음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다. 길을 잃고 막다른 골목에 혼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 길을 찾아주고 문을 열어 준 것은 사람들이었다. 무릎이 꺾이고 허리가 휘어 주저앉아 있을 때 일으켜주고 다시 걷게 해준 것도 사람들이었다.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의 눈길이었다. 만약 그들이 그냥 지나쳤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 여기에 없을지도 모른다.

다정함의 불을 밝혀준 사람들 덕분에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 인류는 불에서 ‘밝음’과 ‘따뜻함’을 얻으면서 스스로 마음속에도 ‘밝음’과 ‘따뜻함’이라는 불씨를 심은 것 같다. 그 불씨로 서로를 보듬으면서 오랜 시간을 이어 지금까지 살아온 온 것이리라. 이 불씨는 지구라는 행성에 사람들이 사는 한 꺼지지 않을 것 같다.

며칠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날이 꽤 쌀쌀하다. 새벽에 잠시 창문을 열었다가 얼른 닫았다. 이제 문을 열어두기보다는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닫아두는 계절이다. 하지만 마음의 문까지 닫지는 말아야겠다. 누군가 내게 보내는 다정한 눈길과 내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은 열어두어야겠다.

문득 이렇게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을 ‘누군가’라고 막연하게 칭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눈길이 닿는 거리에 있는 사람이니 ‘당신’이 더 어울릴 수 있겠다. 알고 지내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마음 문을 열고 눈길을 이어 다정을 주고받는 이들은 모두 ‘당신’이겠다.

새벽까지 거세게 내리던 비는 이제 그쳤다. 거실로 빛이 스며들고 있다. 창밖에 까치 소리가 들린다. 다시 창문을 연다. 아파트 고층 건물 사이로 해가 보인다. 밝아오는 아침을 향해 인사를 해본다.

‘친애하는 당신들께 다정을 보냅니다'라고.

얼마나 다정하길래 병이 될까. 고려말 문인 이조년은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며 깊어가는 봄 밤의 심경을 읊었다. 서울 어느 산자락에 있는 전통카페 이름은 그 시조에서 따왔다. (인터넷 커뮤니티)
얼마나 다정하길래 병이 될까. 고려말 문인 이조년은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며 깊어가는 봄 밤의 심경을 읊었다. 서울 어느 산자락에 있는 전통카페 이름은 그 시조에서 따왔다. (인터넷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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