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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잡러 서지은의 ‘도발’] 서로의 안녕을 보아요

  • 기사입력 2022.09.08 17:12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안녕?’하고 인사한다. 헤어질 때도 안녕하며 손을 흔든다.

사전을 찾아보면 안녕(安寧)’아무 탈 없이 편안함이라고 되어있다. 편하고 안락한 상태인 '안녕'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이자, '안녕하라'는 말에는 상대의 안녕을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다.

뮤지션 잔나비<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곡을 참 좋아한다. 곡의 선율이 아름답고 보컬의 음색도 그윽하지만, 가사가 가장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언젠가 또 그날이 온대도 우린 서둘러 뒤돌지 말아요. 마주보던 그대로 뒷걸음치면서 서로의 안녕을 보아요……

서로의 안녕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임을 새삼 알게 해준 곡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질 때, 또 서로의 안부가 궁금할 때, ‘안녕이라는 말을 데려 오는 거라고.

그런데 가만 돌아보니,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녕한날은 참 드문 것 같다. 크고 작은 사건들에 부대끼고 이를 해결하려다 포기와 좌절을 껴안은 채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아 보인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절을 거치며 우리에게 안녕은 어느덧 귀한 단어가 되었다.

2022, 여느 해보다 조금 일찍 맞이하게 된 우리 명절 추석을 앞두고 뉴스에서 규모가 역대급이라며 입 모아 경고 메시지를 알린태풍 힌남노가 왔다. 지난여름 대한민국을 강타한 역대급폭우의 아픈 기억이 채 아물기도 전이다. 귀성길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보며 가족의 안녕을 빌고 싶은 마음은 당장 오늘의 무사를 소망하기에 이르렀다.

20199월 아빠가 폐에 생긴 병환으로 사망하자 내 친가 쪽에 남은 남자 형제는 작은아버지 한 분이 되었다. 그런데 작은아버지마저 올해 위암 진단을 받은 상황이다. 절친의 어머니는 얼마 전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이 어려워 항암치료를 시작했고, 또 다른 친구의 시어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아 가족들이 근심에 쌓여있다. 지난 2월에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했음에도 바이러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 나를 비롯한 가족 세 명이 모두 오미크론에 확진 되었다. 게다가 격리치료가 끝난 후에도 나는 상당 기간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마음 연못에 크고 작은 돌들이 연속으로 날아드는 것만 같은 나날들이다. 하나의 파문이 사라지기도 전에 새로운 파문이 일어 파문과 파문이 겹치는 지점마다 무릎을 접고 울고 싶어진다. 그러나 우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방편이 나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실제로는 조금도 울지 않았다. 울고 싶지만 울 수 없고, 울어지지도 않는 내가 가여웠다. 동시에 저를 가여워하는 스스로를 견디기 힘들었음도 고백한다. 비극의 기록을 자기연민의 누름돌로 삼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만큼이나 나이 들수록 누군가와 친밀하게 지내며 무언가를 깊이 공유하는 일이 점점 두렵다. 나눠주고 나눔 받는 것을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삼는 건 고마우면서도 쓸쓸한 일이다. 때로는 배려와 호의의 등가 교환을 요구 당할까 봐 마음의 빗장을 잠그고 싶어지기도 한다. 마음의 방이 점점 좁아지다 마침내 마음이 죄다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면서도 차라리 마음이 소멸하면 사는 게 좀 더 수월해질 것 같다는 소심한 상념에 빠진다.

그럼에도,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존재라는 것, 사람 인() ()가 서로에게 기댄 모양이라는 의미부여는 너무 흔한 말임에도 위로가 된다. 위로에는 힘이 있다, 등을 가만히 쓸어주는 힘이. 위로는 구한다는 말은, 누군가를 구원자로 삼겠다는 말이 아니라 서로의 안녕을 보고 싶다는 뜻이다.

곧 퇴근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안녕과, 어딘가로 향해야 하는 당신의 안녕을 본다. 서로가 바라보는 안녕을 부디 부족한 안녕의 틈을 메우는 힘으로 삼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선다. 그렇게 가만히 되뇐다.

밤새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귀성은 서로의 안녕을 묻고 확인하는 것이다. 추석 연휴를 맞아 부산역에 도착한 귀향객들. (연합뉴스) 
귀성은 서로의 안녕을 묻고 확인하는 것이다. 추석 연휴를 맞아 부산역에 도착한 귀향객들. (연합뉴스) 

(서지은은) 걷고 말하고 듣고 읽고, 특히 쓰는 걸 좋아한다. 많은 페친을 둔 페이스북의 인플루언서다. 여러 직업을 가진 싱글워킹맘으로 최장수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의 꿈을 꾼다. 나이 마흔 다섯인 2020, 첫 에세이집 '내가 이토록 평범하게 살 줄이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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