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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정의 ‘불현듯’] "딩동,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 기사입력 2022.09.02 17:05
  • 최종수정 2022.09.02 17:31

"엄마, 선물이 있어."

퇴근하는 아들 손에 내가 좋아하는 도넛 상자가 들려있다. 웃는 얼굴이다. 엄마에게 무언가 줄 수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같이 먹으라며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려준다. 도넛 한 입과 커피 한 모금을 먹는다. 달달함과 ​쌉쌀함이 어우러지면서 녹는다. 나도 웃는 얼굴이 된다.

"선물이 있어."

오늘은 선물을 받는 날인가 보다. 아들이 빵을 선물로 내밀기 몇 시간 전, 점심에 만난 친구한테 선물을 받았다. 시인의 책 한 권과 빨간색 작은 필통과 알록달록한 색의 샤프 연필 세 자루다. 싱긋 웃는 표정으로 건네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에 살짝 마음이 붉어진다. 다정한 응원에 마음이 으쓱해진다. 이제 곧 대학원 개강이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뜻인가 보다. 고마운 마음에 나도 웃는 표정이 된다.

“엄마, 받고 싶은 선물 있어요?”

딸에게 연락이 왔다. 며칠 후면 내 생일이다. 나는 딸에게 나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에게도 같은 부탁을 했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순순히 내 말대로 하겠다고 답했다.

나는 지인 중에 ’아동청소년그룹홈’에서 보육사로 일하고 있는 분께 연락을 드렸다. 사연을 말씀드리고 아이들에게 2학기 개학 선물로 치킨을 선물하고 싶은데 받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아동청소년그룹홈‘은 가족과 함께 살기 어려운 몇몇 아이들이 가정을 이루며 함께 사는 집이다. 지역사회 안의 아파트나 빌라, 단독주택에서 아이들에게 가정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이곳의 목적이다. 통상 서너 명의 사회복지사가 24시간, 365일 돌아가며 일곱 명 이내의 아이들을 돌본다. 함께 잠을 자고 밥을 해 먹이고 빨래, 청소 등등 집안일을 해 준다. 엄마나 이모처럼, 아빠나 삼촌처럼 칭찬도 하고 참견도 하고 야단도 치고 걱정도 한다.

하지만 지원되는 재정이 빠듯해서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요즘 유행하는 배달 음식을 사주기 어렵다. 한창 자라는 10대 아이들인데 요즘 흔히 얘기하는 ’1인 1 닭‘ 주문도 힘들다. 지인인 사회복지사님은 먹성 좋은 사내아이 세 명을 돌보고 있다면서 흔쾌히 내 부탁을 받아주셨다. 아이들에게 오늘 저녁 ’1인 1 닭‘ 이라는 즐거운 선물을 주게 되었다고 기뻐하셨다. 나도 기쁘고 내게 소식을 전해 들은 내 딸과 아들도 기뻐했다.

치킨 몇 마리를 선물하면서 아이들에게 힘내라든지 희망을 품으라든지 하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치킨 한 마리를 먹으면서 몇 시간 즐겁고, 그 즐거움으로 다른 일을 할 때 힘 있게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다.

나는 오늘 아들과 친구에게 받은 깜짝 선물로 기쁨을 누렸다. 또 내 생일 선물을 그룹홈 아이들에게 돌리면서 아이들이 신나고 기뻐할 생각에 나도 벌써 기쁘고 행복하다.

인생은 한 방의 커다란 운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힘들고 지칠 때 한 알, 슬프고 외로울 때 한 알씩 입에 물고 단맛을 즐길 수 있는 작은 기쁨들이 오히려 살아가는 힘이 된다. 사탕 봉지에 든 색색의 여러 가지 맛 사탕 같은 기쁨.

달고나 같이 노랗고 녹진녹진한 햇살이 흐르는 가을이 왔다. 이 가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선물 사기 나들이를 해보시라. 선물은 받을 때보다 고를 때 더 행복감이 크다는 연구를 읽은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는 건, 결국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것임을....

아들이 준 선물을 먹으며...선물로 받은 시집을 읽는다.
아들이 준 선물을 먹으며...선물로 받은 시집을 읽는다.

(최희정은) 젊어서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다 육아를 핑계로 그만두고 이십여 년을 딸과 아들을 키웠다. 오십이 코앞인 어느 날 ‘불현듯’ 내 이름으로 다시 살고 싶어 재취업을 했다. 지금은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하면서 이곳저곳에 글을 쓴다. 돌봄과 글쓰기, 둘 다 마음으로 깊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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