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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짚기] 돌연 급물살 탄 차별금지법...상반기 중에 제정되나

미온적이던 민주당 지도부 "조속히 제정 논의 시작하겠다"
입법 촉구하는 사회적 압력 계속 커져
다수당인 민주당, 검수완박 실현한 후 민생 인권 이슈로 전환

  • 기사입력 2022.04.26 16:21
  • 최종수정 2022.04.26 17:02

우먼타임스 = 심은혜 기자

여자라서, 이혼녀라서, 돌봐야 하는 아이가 많다 해서, 나이가 많아서, 신체나 정신장애를 가졌다 해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해서,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 해서,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 해서, 특정 종교를 믿는다 해서, 성소수자라서, 동성애를 커밍아웃했다 해서, 외국인 노동자라서, 불쾌감을 주는 용모라 해서, 키가 작다 해서, 감옥에 갔다 온 적이 있다 해서, 가정형편이 어렵다 해서....

당신은 이중 한 가지, 또는 한 가지 이상에 따른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위에 열거한 것들 때문에(겉으로는 다른 이유를 댔을지 몰라도) 경제활동이나 취직, 교육, 공공서비스, 시설 이용 등에서 평생 한 번이라도 차별을 받았다고 느낀 적이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 아닐까.

그런데 차별적 행위를 한 기업주나 사용자, 공무원, 기관이나 단체 종사자들은 처벌이 되지 않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처벌할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

그런 사람들을 법적으로 처벌하고 피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구제하자는 법안이 15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논의가 돼왔다. 바로 ‘차별별금지법’이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다수의 의원들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이 법은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학력, 종교, 사상, 정치적 의견, 출신국가, 출신민족, 출신 지역,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피부색, 혼인 여부,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임신과 출산, 용모나 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출신 학교, 전과,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과 이용 등의 영역에서 정당한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피해를 구제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발의한 의원들 법안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1000만~3000만 원의 벌금이나 1~3년의 징역에 처하고, 차별을 받은 이는 인권위에 진정해 시정명령을 받을 수 있고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이상민·박주민·권인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또는 평등법, 처음에는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안 4건이 계류 중이다. 이번이 8번째 발의다.

그러나 그동안 성적지향·학력·고용형태 등의 항목에 대해 보수종교계(성 정체성 문제)와 재계(고용의 문제), 보수학부모단체(동성애 문제)가 강하게 반대해왔다. 각 정당들도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여론의 눈치를 보고,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면서도 막상 공청회엔 소극적이어서 법안은 국회 문턱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차별금지법은 15년 전인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 권고안을 법무부에 제출하면서 공론화됐다. 노무현 정부는 차별금지법을 정부입법 형태로 발의했으나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유엔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우리 정부에 9차례나 권고했다. 그간 많은 인권단체와 시민단체, 진보단체, 지식인그룹, 문화예술인 등이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시위나 농성을 벌였다. 국회 앞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차별금지법 4월 임시국회 내 입법을 촉구하며 보름째 단식농성 중이다.

지지부진하던 이 차별금지법이 5~6월 중에 제정될 가능성이 갑자기 커졌다.

소속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했는데도 미온적이었던 민주당이 25일 공식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의지를 밝히면서 상반기 중 입법에 힘을 실은 것이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며 “문 대통령 임기 안에 처리해야 한다. 사실상 남은 2주 정도가 마지막 기회다. 이제 약속을 지킬 시간”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조속히 의원총회를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당론으로 확정하라”고 촉구하면서 “국민의힘과 협의해 법사위 공청회를 개최하고 법안 심의에 착수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도 이 회의에서 “15년 전 평등법 논의가 시작됐지만 부끄럽게도 그동안 국회는 법 제정에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힘차게 시작하겠다”며 “단식농성 중인 분들과 차별받는 모든 분께 미안하다. 더 이상 여러분을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법 제정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하라는 사회적 압박이 다수당인 민주당을 향하고 있다. 25일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하라는 사회적 압박이 다수당인 민주당을 향하고 있다. 25일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배경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검찰개혁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한 후 꽉 막힌 정국을 역시 다수 의석을 무기로 삼아 민생·인권 이슈로 전환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재논의 문제로 여야가 충돌하는 가운데, 다음 입법 과제로 차별금지법을 추진하면서 정국 주도권을 계속 쥐고 가겠다는 것이다. 또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검찰개혁에 가려진 인권·민생 과제를 챙기는 정당으로 유권자들에게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민주당 당원 일부는 27일까지 5월 내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연서명을 받고 있다. 이들은 4월 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5월 내 제정하자고 요구했다.

최근 민주노총과 성소수자·장애인 단체들도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입법하라고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정의당도 이 법 추진에 적극적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이날 바로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이 평등과 포용, 차별과 혐오 중 누구의 편에 설지 지방선거를 앞둔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표심이 두렵다면 평등법 제정을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한다”며 “의원총회를 열어 당론으로 채택하고 4월 안으로 제정하라”고 압박했다.

정권교체기의 와중에서 차별금지법이 검찰개혁에 이어 이슈가 되면서 차별금지법이 민주당의 의석수 힘에 의해 상반기 중에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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