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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공공의료 데이터, 보험사 제공 '된다' vs '안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활용되고 있는 공공의료데이터...핵심은 '공익적 가치'

  • 기사입력 2022.01.31 06:10

우먼타임스 = 강푸름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8일 한화생명에서 요청한 건강보험 의료 데이터 제공 재심의를 연기했다. 

지난해 9월 한화생명 측은 건보공단에 의료 데이터 제공을 요청했으나 보험사의 연구 계획서가 과학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 등으로 미승인됐다.

심의는 4개월 만에 다시 열릴 예정이었지만 한국노총과 시민단체 측의 반발로 무산됐다. 

보험사가 공단 측에 요청한 자료는 ‘표본코호트DB'로 2002년부터 2019년까지 전 국민 가운데 2% 가량의 표준 샘플을 추린 의료 데이터다. 진료 및 건강검진 이용 현황과 요양기관 현황·보험료·장애 및 사망 여부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 (연합뉴스)

◇ 공공의료 데이터, 왜 필요한 걸까

국내 축적된 보건 의료 데이터는 공공데이터 기준 약 6조 건이 넘는다. 보험업계는 의료 데이터를 이용해 합리적인 보험료 산출이나 보장범위가 확대되는 등의 긍정적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 자료가 제대로 활용된다면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병 환자 등 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가입이 편해질 뿐 아니라 난임 검사·치료 등 고액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신상품도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험회사에 표본 데이터를 제공했지만 2017년 국정감사에서 ‘소비자들의 보험 가입에 차별을 둘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중단됐다. 보험사들은 해외에서 가져온 데이터로 상품을 만들거나 보험료를 산정해왔으나 국내 상황을 명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 내 개인정보, 정말 괜찮은걸까 

의료 데이터가 가명 처리 후 제공된다고 해도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 제공 미승인 이유도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보험사가 자체 고객 정보를 결합해 가명 정보를 식별화하고 이를 영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보험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데이터를 분석해 서비스 제공의 질을 높이려는 것일 뿐 개인정보를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개인정보 식별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현행 법상 특정 개인을 알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가명 정보를 처리할 경우 연평균 매출액의 3% 이하의 과징금,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건강보험공단의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는 ‘데이터 3법’의 취지에 따라 지난해 가명 활용을 위한 ‘보건 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정신질환·성매개감염병·후천성면역결핍증(AIDS)·희귀질환·학대 및 낙태 등을 대상에서 제외한 후 심평원의 데이터 반출을 승인했다.

하지만 특정 시점의 단기적 의료 정보를 취합한 심평원의 데이터는 개인의 진료 정보와 건강검진 정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적할 수 있는 건보공단 데이터에 비해 제한적이다. 

◇ 해외에선 이미 시작된 공공의료데이터 활용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확대로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헬스케어가 부상함에 따라 해외도 보건 의료 데이터 활용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국민의료보험 체제를 도입하고 있는 핀란드는 2007년부터 의료 서비스와 신기술을 연계하는 'e-헬스로드맵' 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핀란드 전 국민이 사회복지 및 보건 의료 분야의 모든 데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를 제공받는 통합시스템 ‘칸타(KANTA)’를 구축했다.

2019년에는 '의료 및 사회보장 데이터 2차 활용에 관한 법률'을 도입하면서 구축된 통합데이터 시스템을 외부에 개방했다. 안전한 의료 데이터 사용을 위해 보건복지부 산하에 별도로 데이터 수집·결합·사전처리 및 공개를 담당하는 데이터 허가기관(Findata)도 설치했다. 

핀란드의 '마이칸타' 서비스 사용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kela 핀란드 사회보험청)
핀란드의 '마이칸타' 서비스 사용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kela 핀란드 사회보험청)

보건 의료 데이터 공유에 보수적 태도를 취해오던 대만도 개인 건강 데이터를 포함한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돌입했다. 

대만은 중앙건강보험청(NHIA)이 보유한 의료·약제·검사 데이터를 2013년부터 디지털화하고 있다. 중앙건강보험청은 2000년부터 건강보험 가입자의 의료 정보를 개방했으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해 판매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민 단체의 반대로 2013년 이후부터 비학술 목적의 민간기업 제공을 중단했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16년 정보 통합신청 서비스 센터를 만든 후 승인받은 적격 기관만 질병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도록 했고, 2019년에는 의료 정보 제공 활용을 심의·결정해 신청자에게 통보하는 방식으로 민간기업에 한시적 허용했다. 

2020년 3월 대만 복지부 건강보험청(NHI)은 건강보험 데이터 공개를 위해 관련 법규를 수정했다. 이름이나 신분증 번호 등 식별정보를 제거한 뒤 사망자에 한해 일부 데이터를 민간 보험사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건강보험정보는 국민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데이터를 활용해 얻은 수익의 일부는 건강보험 기금 형태로 국민에게 반환될 예정이다. 

◇ 핵심은 '공익성'에 있다

시민단체는 국민 건강을 위해 축적한 공공의료 데이터를 보험사가 영리 이익에 활용하는 것은 데이터 구축·운영 취지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가명 처리된 정보라도 개인의 동의 없이 보험사가 사용하는 건 위험하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의료 데이터 활용 시 정보 유출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나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핀란드는 칸타 시스템에 등록된 회사들의 데이터 관리 시스템에 엄격한 인증과 체계적인 모니터링 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했고 대만은 민간 보험사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의 범위를 사망자로 제한했다. 

(pixabay)
(pixabay)

업계 관계자는 “가명 처리가 됐다고 해도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기업이 영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보험회사의 주장에 공익적인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건강보험공단이 민감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일반기업에 활용될 정보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세밀하게 논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여러 국가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이유는 시민들의 신뢰를 기반한 법적 장치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미래 산업분야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의료 기록이 이용되는 만큼 시민들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한 제도나 정책이 선행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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