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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 모피는 패션시장에서 사라질까

패션잡지 엘르 ‘Fur-free’ 선언, "모피 유행은 지났다"
소비자들, 동물권리와 동물복지에 점점 관심 커져
세계적 명품브랜드들도 모피 사용 중단
유럽 국가들도 점차 밍크 사육과 판매 금지
친환경 비건 패션이 새로운 트렌드

  • 기사입력 2021.12.04 15:02
  • 최종수정 2021.12.04 15:10

우먼타임스 = 성기평 기자

부의 상징이던 모피. 겨울이 오면 따스하고 부드러운 모피 코트를 걸치는 건 모든 여성의 꿈이었다.

그런 모피가 이제는 인간의 동물학대와 잔인함, 탐욕을 반성하고 ‘시대에 뒤처지는 반윤리적 패션’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동물 복지’와 ‘친환경 소재’는 세계적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모피 코트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수백 마리의 야생동물이 희생된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1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인간에게 옷을 제공하느라고 죽어간다. 밍크, 여우, 친칠라, 너구리 등이다. 심지어 개와 고양이도 희생된다. 질 좋은 모피를 많이 얻기 위해서 산 채로 피부를 벗겨내 모피를 생산하거나 많이 먹여서 살을 찌운다. 모피의 80~90%는 대부분은 비좁고 비위생적인 사육농장에서 나온다.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이끌던 철인학교는 입학 규정으로 ‘동물을 먹지 말 것’, ‘동물을 입지 말 것’을 내걸었다. 피타고라스는 인간과 동물 모두 영혼을 갖고 있으며 죽으면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몸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패션 잡지 엘르, fur-free 선언]

세계적 패션잡지 엘르(ELLE)가 모피와 관련된 사진과 기사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2일 발표했다. 패션잡지로는 처음이다.

발레리아 ​베솔로 요피즈 엘르 수석 부사장은 이날 런던에서 열린 ‘2021 보이시스(VOICES) 콘퍼런스’에서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45개 국제판이 모두 ‘퍼 프리fur-free)’ 선언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모피 금지(#Fur Free)’라는 문구가 적힌 아이보리색 스웨터를 입고 나타났다.

2일 런던에서 열린 ‘2021 보이시스(VOICES) 콘퍼런스’에서 모피 반대 셔츠를 입고 나온 발레리아 ​베솔로 요피즈 엘르 수석 부사장. (비즈니스 오브 패션 누리집)
2일 런던에서 열린 ‘2021 보이시스(VOICES) 콘퍼런스’에서 모피 반대 셔츠를 입고 나온 발레리아 ​베솔로 요피즈 엘르 수석 부사장. (비즈니스 오브 패션 누리집)

현재 13개 국가판이 이미 이를 지키고 있으며 한국판은 내년 1월부터 모피 관련 콘텐츠를 싣지 않는다. 1945년 창간된 엘르는 40여 국가에서 각 나라의 개별 버전으로 발행되고 있다. 약 3300만 명의 오프라인 독자와 1억 명의 온라인 독자가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모피 유행은 지났다. 럭셔리 산업의 주요 고객층인 Z세대에게 모피는 구식으로 여겨진다. Z세대는 패션에 책임감, 윤리, 독창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패션산업이 지속가능하고 독창적 대안을 기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즉각 환영했다. 피제이 스미스 휴먼소사이어티 미국 지부 패션정책 감독관은 “엘르의 이번 발표는 패션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며 “잔혹한 죽음을 당하는 수많은 동물들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엘르의 ‘퍼 프리’ 선언은 엘르의 모기업인 라가르데르 그룹과 동물보호단체 휴먼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등의 협의로 이뤄졌다.

[모피 버리는 세계 패션업계]

패션업계가 모피반대로 돌아서고 있는 건 동물보호단체의 지속적인 압박과 캠페인, 동물권리와 동물복지에 대한 시대적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면서다.

세계 4대 패션쇼인 런던패션위크는 모피로 만든 옷을 런웨이에서 퇴출한 지 오래다. 암스테르담, 오슬로, 멜버른, 헬싱키 등지의 소규모 패션 위크들도 모피를 금지하고 있다. 파리와 밀라노, 뉴욕의 대형 패션 위크들은 디자이너에게 선택권을 주고 있다.

명품 패션 브랜드들도 거의 대부분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 이제 명품 브랜드에서 모피 제품을 찾기는 힘들다. 프라다, 구찌, 입생로랑, 버버리, 베르사체, 마이클코스. 캘빈클라인, 아르마니, 랄프로렌, 타미힐피거, 비비안웨스트우드, 코치, 톰포드 등은 일찍이 모피 프리를 선언한 브랜드다.

[유럽 국가들, 모피 생산과 판매 금지 움직임]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나라들도 모피 생산과 판매에 제동을 걸었다. 영국은 2000년부터 모피를 목적으로 한 동물 사육을 금지했다. 지역 별로 모피 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곳도 있다. 오스트리아는 2004년 모피 동물 사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했으며 이탈리아는 모든 밍크농장을 폐쇄했다. 스웨덴도 2000년부터 전국의 모든 여우농장을 폐쇄했다. 약 2만 개 모피 농장이 성업하면서 세계 2위 모피 생산국이었던 노르웨이도 모피 생산을 전면 금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미국의 주와 이스라엘, 뉴질랜드, 인도 등도 모피 수입, 제작,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모피단체인 ‘퍼 유럽’에 따르면 덴마크, 폴란드, 핀란드, 네덜란드, 리투아니아가 주요 모피 생산국인데 2018년 기준 EU 내 4350개 농장에서 밍크 3470만 마리, 여우 270만 마리, 친칠라 22만7천 마리, 너구리 16만6천 마리 등 모피 동물 3780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동물 사육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세계 1위 모피 생산국인 덴마크는 밍크 사육농장에 갇혀 있는 동물들이 코로나에 감염되자 대거 살처분하고 밍크 사육을 잠정 금지했다. 밍크는 호흡기 질환에 취약해 인간으로부터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다. 덴마크에는 밍크 사육 농장이 1000개가 넘고 대부분 2만여 마리씩 기른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다른 EU 국가들은 모피 농장을 폐쇄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네덜란드는 폐쇄 시점을 2024년에서 올해 3월로 앞당겼고, 프랑스는 2025년으로 못 박았다.

세계 최대 모피 생산국인 덴마크 모피 사육장에 지난해 코로나가 번지자 덴마크 군부대가 코로나에 감염된 밍크 사체를 매립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최대 모피 생산국인 덴마크 모피 사육장에 지난해 코로나가 번지자 덴마크 군부대가 코로나에 감염된 밍크 사체를 매립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모피 시장과 큰손 중국]

서구 소비자들이 동물복지에 눈을 뜨며 패션업계가 이에 부응하고 코로나가 동물에게도 퍼지면서 모피 산업은 대체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 모피 시장을 살기고 있는 건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모피 수입국이자 주요 생산국이다. 모피가 여전히 부의 상징, 중산층 기준으로 통한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덴마크의 모피 경매장 ‘코펜하겐 퍼’에는 중국인 수천 명이 몰려든다. 세계 모피 생산량 40~50억 달러의 절반 가량이 중국에 팔려간다. 아시아는 세계 모피 판매량의 35∼40%를 차지한다. 한국도 주요 시장 중 하나다.

[그런데 한국은?]

한국은 모피에 반대하는세계적 추세에 여전히 뒤떨어져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 모피 세일이 등장하고 아직도 모피를 걸치는 것에 죄의식이나 윤리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다. 외국과 달리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도 모피 반대 캠페인에 소극적이다.

전세계적 모피 퇴출 운동(Fur-free)에도 불구하고 국내 모피 소비는 거꾸로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 러시아에 이어 모피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중 하나다. 동물보호단체는 우리나라도 모피 제품 판매와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모피 제조·가공·수입·수출을 금지하는 별도의 관리 체계가 없다. 국내 모피 수입량은 대체로 200억 달러 선으로 대부분 중국에서 온다.

2018년 10월 국제동물권리단체 페타(PETA)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동물 패션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0월 국제동물권리단체 페타(PETA)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동물 패션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동물의 가죽과 털을 대체하는 친환경 소재들]

모피가 패션 시장에서 영원히 사라질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 등 국제 동물 보호 단체들은 EU에 모피 농장의 영구적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이 요구를 이미 수용했고 독일, 노르웨이 등은 단계적 폐쇄에 들어갔다.

그러나 밍크가 코로나 감염으로 공급이 줄면서 밍크 날가죽 가격이 50% 이상 급등하자 폴란드나 그리스, 캐나다, 미국 같은 나라들에서 밍크를 더 많이 길러 부족분을 채울 거라는 업계의 전망도 있다. 중국은 이미 모피 생산을 늘렸다.

최근에는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이 11월 24일 공식 홈페이지에 폭로한 핀란드 모피농장 여우 사진과 영상이 큰 충격을 주었다. 여우들은 좁고 황폐한 공장식 농장 케이지 안에 갇혀 고통스럽게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피 생산량을 최대로 늘리기 위해 억지로 살을 찌운 상태였다. 기형적인 발과 병든 눈 등 사진만으로도 동물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인간들은 여우를 마취 없이 항문을 통해 감전시켜 죽였다.

국제 동물보호단체가 최근 공개한 핀란드 동물사육 농장에 갇힌 여우. 모피 생산량을 최대로 늘리기 위해 억지로 살을 찌웠고 병든 모습으로 죽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HSI 홈페이지)
국제 동물보호단체가 최근 공개한 핀란드 동물사육 농장에 갇힌 여우. 모피 생산량을 최대로 늘리기 위해 억지로 살을 찌웠고 병든 모습으로 죽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HSI 홈페이지)

감염병의 위험성뿐 아니라 잔혹한 사육 실태가 자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입지 않는 ‘비건(vegan, 채식주의자) 패션’이 세계적으로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다. 살아있는 오리와 거위의 깃털을 뽑아 만든 오리털, 구스다운 재킷이 아니더라도 따스하고 가볍고 관리도 쉬운 친환경 소재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세계 패션업계들은 동물 가죽을 대체할 ‘비건 레더’ 개발에 적극 나서며 인조나 식물성 가죽, 페트병, 고무 등을 활용한 업사이클링(Upcycling)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미국 친환경 스타트업 마이코웍스와 손잡고 올해 하반기 중 버섯 가죽으로 만든 ‘빅토리아 백’을 출시할 예정이다. 스파 브랜드 H&M은 바이오 기반 원사와 선인장으로 제작한 청바지, 샌들, 핸드백 등을 선보이고 있다.

G20 정상회의 참석차 로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11월 30일 로마 콜로세움에서 한지 가방을 들고 브리짓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G20 정상회의 참석차 로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11월 30일 로마 콜로세움에서 한지 가방을 들고 브리짓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말 주요 20개국(G20) 정상 배우자 모임에 참석한 김정숙 여사가 닥나무 한지 가죽으로 만든 국내산 비건 가방을 들어 화제에 올랐다. 언뜻 보기엔 동물 가죽인지 한지 가죽인지 구별이 안 된다.

패션 시장에서 모피는 ‘페이크 퍼’로, 가죽은 ‘에코 레더’로 옮겨 가고 있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동물의 털이나 가죽 대신 옷의 새로운 소재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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