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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영의 ‘나, 싱글맘’] 역사상 첫 번째 싱글맘, 올가 코텔코

  • 기사입력 2021.10.27 22:47

“내가 아는 한, 내가 바로 세계 역사상 첫 번째 싱글맘일 거예요.”

캐나다 실버 스포츠계의 스타이자 나의 롤모델인 올가 코텔코의 말이다. 나는 ‘젊어서도 없던 체력 나이 들어 생겼습니다’라는 책에서 올가를 처음 만났다. 이 책은 저자 브루스 그리어슨이 90대까지 최고의 육상 선수를 한 올가의 놀라운 신체 비밀을 추적한 책이다.

올가는 77세 때, 35세 이상만 참가 가능한 마스터즈 육상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그는 2014년 95세를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30개 이상의 세계기록을 갈아치우고, 750여 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간의 관심은 그의 경이로운 체력에 쏠렸으나 나는 ‘싱글맘’ 올가에 집중했다. 오, 이토록 고저스한 싱글맘이라니, 나도 올가가 되어야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올가는 시골 소학교 교사로 생활할 때까지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이어갔다. 무도회에서 재미있고 매력적인 존 코텔코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 후 올가는 그의 본 모습을 알게 된다. 바람둥이, 술주정뱅이, 폭력 남편. 그와 10년을 산 올가는 술에 취한 그가 목에 칼날을 들이댄 어느날 밤, 최소한의 짐만 챙겨 큰딸 나딘을 데리고 달아나 서부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올가의 배 속엔 둘째 딸이 있었다. 1950년대 캐나다 시골에서 아내가 남편을 떠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역사상 첫 번째 싱글맘’이라는 올가의 발언은 사실 여부를 떠나 그녀에게만은 진실이었다.

나도 부리나케 기저귀 가방만 챙겨 소림이를 안고 나가 택시를 잡아탄 경험이 있다. 올가의 도주와 모양새만 비슷할 뿐, 능동적 행동파인 그녀와 달리 내 도망의 이유는 부끄럽기만 하다. 택시 타기 10분 전, 별거 중이던 남편에게서 남은 짐도 챙길 겸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집에 들르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혼을 서두르는 그와 다르게 나는 마음의 준비를 못 한 상태였다. 모든 상황을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었으니 준비랄 것이 될 리 없었다. 아기랑 둘이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나는 그가 닥치기 전에 헐레벌떡 뛰쳐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다.

나는 그때로 돌아가 이렇게 상황을 바꾸고 싶다. ‘소림이를 안고 위풍당당 그를 맞이한다. 짐 챙기는 그를 거들고 법원 약속도 잡는다. 마지막으로, 돌아오지 않을 그의 뒤통수에 대고선 잘 가, 손을 흔든다.’

올가는 언니네 집으로 들어가 둘째 딸을 출산했다. 공장에서 일하며 야간 대학을 다녔고 고생 끝에 교육학 학사 학위를 땄다. 세 모녀가 다시 행복해지는 데 남편과 아빠는 필요치 않았다. 저자는 그녀의 진취적 행보를 역경설로 풀이했다.

“역경설(Adversity Hypothesis)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학습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역경을 맞닥뜨리고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역경을 극복하는 방법과 힘을 얻게 된다.”

강원도 가는 길의 연속된 터널이 내 길에도 있었다. 터널 하나를 겨우 통과하면 바로 또 터널이 나왔다. 욕이 나와도 통과를 안 할 수가 없다. 불행 속에도 행운은 있다. 터널들은 쌍둥이처럼 닮아 통과할 때마다 시간이 단축됐다. 갈수록 헛! 헛! ‘도장 깨기’ 하듯 터널을 통과했고, 어느 순간엔 나도 올가처럼 신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 결과, 현재의 나는 소림이와의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일상은 거저먹을 수 없다. 나의 실존이 역경설의 근거다. 역경설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다. 역경 없는 인생은 없다. 여기에서 나는 하나를 더 배운다. ‘싱글맘’이라는 틀에 나를 가둘 필요가 없다는 것. 누구나 비혼, 사별, 이혼 등으로 싱글맘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그때는 어깨를 으쓱 올리면서 짧은 영어 한 문장 외쳐주면 그만이다.

“So what? 어쩌라고!”

나는 올가 코엘코가 ‘어쩌라고 정신’의 대가였을 거라 확신한다. 아무나 구사 가능한 기술은 아니다. 연속된 터널 십수 개를 통과하고, 90세를 넘기고도 육상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어쩌라고!’에 도달할 수 있다. 아무나는 못 해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흔네 살에 육상대회에 나가는 사람은 드물어도 누구나 십수 개의 터널은 통과하니까. 통과는 통과로서 의미를 갖지 ‘멋지게’ 따위의 수식어는 필요 없다.

방금 올가 코텔코 여사가 잠시 내려와서는, 이렇게 잘 알면서도 때때로 방황 중인 내 등을 쓸어주고 한 말씀 남기셨다.

“오늘이 괜찮기에 내일도, 앞으로도 괜찮을 겁니다. 만약 예상치 못한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냥 받아들이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요."

90세가 넘어서도 육상 선수로 활동하던 올가 코텔코. (출처, 캐나다 육상 잡지)
90세가 넘어서도 육상 선수로 활동하던 올가 코텔코. (출처, 캐나다 육상 잡지)
올가 코텔코의 놀라운 신체 비밀을 연구한 브루스 그리어슨의 테드 강연. (유튜브 TED영상)
올가 코텔코의 놀라운 신체 비밀을 연구한 브루스 그리어슨의 테드 강연. (유튜브 TED영상)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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