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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산 혀절단 사건’ 1심서 남성만 징역형, 여성은 정당방위 인정

부산지법, 성폭행 가해자 강간치상으로 징역 3년 선고

  • 기사입력 2021.08.03 16:19
  • 최종수정 2021.08.11 09:20

우먼타임스 = 박성현 기자

일명 ‘부산 황령산 혀절단 사건’의 1심 선고가 내려졌다.

만취한 20대 여성을 차에 태워 성폭행하려다 피해자의 저항으로 혀가 절단된 30대 남성이 오히려 여성을 중상해 혐의로 고소했다가 강간치상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여성은 이번 선고로 혀 절단 행위를 정당방위로 확실히 인정받았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제1형사부(부장 염경호)는 최근 감금 및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기소된 안모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판결 요지는 이렇다.

“피고인이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를 청테이프로 묶는 방법으로 감금하고, 피해자를 강간하기 위해 피해자의 입 안에 혀를 넣어 키스를 하던 중 피해자가 피고인 혀를 깨물어 저항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몸싸움을 하면서 손으로 피해자의 입 부위를 때리는 등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사실이 인정된다. 피고인은 청테이프와 콘돔을 구입한 사실이 조사에서 드러났는데도 ‘음료수를 사러 갔다. 소주, 청테이프 외 다른 물건을 구입한 적 없다’고 거짓 진술하는 등 범행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범행 방법이나 범행 경위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의 책임이 무겁고, 피해자의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

피해 여성 변호인측은 선고 후에 “과거엔 성폭행에 대응한 여성이 상해죄로 처벌받기도 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씨는 지난해 7월 부산의 번화가인 서면 일대에서 만취해 거리에 앉아 있던 피해자를 숙소에 데려다준다며 차에 태우고 인적이 드문 황령산으로 가서 성폭행을 시도했다. 여성은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왔었다. 안씨는 유사 성매매업소인 키스방에 가려다가 비용 문제로 길거리 헌팅을 하기로 하고 차량을 몰며 거리를 배회하며 범죄 대상 여성을 물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만취한 피해자가 차에서 잠이 들자 안씨는 편의점에서 청테이프와 콘돔, 소주를 구입해 청테이프로 결박하고 강제로 키스했다. 이때 여성은 안씨의 혀를 깨물어 3㎝가량이 절단됐고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화가 난 안씨는 여성의 입 부위를 때려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

혀가 잘린 안씨는 곧바로 지구대로 가서 여성을 중상해 혐의로 고소했다. 피해 여성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강간치상으로 맞고소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와 CCTV를 분석해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 의견을 달아 남성을 검찰에 넘겼다.

문제는 혀를 깨문 여성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볼 수 있느냐 여부였다. 경찰은 정당방위 심사위원회를 개최해 여성이 정당방위를 넘은 과잉방위를 했지만, 당시 상황을 볼 때 형법상 면책사유라고 판단했다.

“방어행위가 정도를 초과한 경우라도, 그 행위가 야간에 발생했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 경악, 흥분 당황으로 발생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21조 3항을 적용한 것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부산지검 동부지청도 정당방위로 인정해 불기소 처분하고 남성만 강간치상,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피해자가 혀를 깨문 것은 자신의 신체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벗어나기 위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1964년 당시 18살이던 최말자씨가 성폭행을 피하려다 가해자의 혀를 절단했으나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한 최말자씨의 재심청구 사건과 관련해 큰 관심을 끌었다. 당시 최씨의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최씨는 56년 만인 2020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지난 56년을 바로 잡고 싶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고 재심을 청구했으나 지난 2월 기각되고 말았다.

‘황령산 혀절단 사건’은 50년도 더 지난 ‘최말자씨 혀절단 사건’ 재심 청구 사건과 관련해 관심을 끌었다.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는 최씨의 재심청구는 기각됐으나 황령산 피해자는 정당방위를 인정받고 가해자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2020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최말자씨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여성단체들이 재심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령산 혀절단 사건’은 50년도 더 지난 ‘최말자씨 혀절단 사건’ 재심 청구 사건과 관련해 관심을 끌었다.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는 최씨의 재심청구는 기각됐으나 황령산 피해자는 정당방위를 인정받고 가해자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2020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최말자씨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여성단체들이 재심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재심 재판부는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청구인에 대한 공소와 재판은 반세기 전에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다”면서 당시 법원의 성차별적 인식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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