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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나온 20대 여성, 도배사를 직업으로 선택하다

사회복지사 그만 두고 정년 없는 기술직 선택
자신의 선택과 직업에 대한 책 펴내
“도배는 꼼수 없는 정직한 직업”

  • 기사입력 2021.07.15 17:32

우먼타임스 = 천지인 기자

“아직 초보와 숙련 사이 어딘가에 있지만, 기술자를 향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청년 도배사입니다. 연세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후 노인복지관에 취업했지만 2년 만에 그만두고 도배라는 완전히 새로운 업(業)을 시작했습니다. 

도배를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또 다른 일에 도전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새로운 현장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도배하는 게 좋아 저의 경험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시작해 인천, 안산, 남양주, 파주, 천안 등 도배 현장이 조금씩 넓어지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제가 도배한 집에서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자 배윤슬씨(28)가 책에 자신을 소개한 글이다. 배씨는 최근 ‘청년 도배사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이 책이 관심을 끌며 인터뷰가 여러 주류 언론 지면에 실리며 유명해졌다.

그가 언론의 관심을 끈 건 우선 ‘고학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가는 외고를 나와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소위 ‘SKY’ 출신이다. 그리고 안정적인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자발적으로 그만 두고 몸을 쓰는 기술직인 도배사를 택한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명문대 졸업자는 건설현장의 '노가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회통념을 부숴버린 인물이기에 관심을 끌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고 후회없고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갖고 있다.

배씨는 요즘 매일 새벽 5시 작업복과 안전화 차림으로 집을 나서 경기 신도시의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출근한다. 도배사 경력 2년째다.

건설현장에서 도배를 하는 배윤슬씨. (저자 제공)
건설현장에서 도배를 하는 배윤슬씨. (저자 제공)

그의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지어져가는 아파트 안에서 시멘트벽을 벽지로 채워가며 몸을 써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새롭고 낯선 직업에 도전한 내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주변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내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숨기지 않고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다. 무시와 차별을 받기도 했다.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꾹 참고 다시 벽 앞에 서며 버텼다.”

배씨의 꿈은 사회복지사였다. 그래서 대학도 관련 학과로 갔고, 첫 직장도 노인복지관이었다. 그러나 폐쇄된 조직문화가 익숙하지가 않았고 새로운 시도라도 하려면 “하던 대로 하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꼭 내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보니 조직 안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퇴사를 결심하고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정년이 없고 조직 내 갈등 없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술직을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타일시공사는 타일이 무거워서, 건축도장사는 아토피 피부염이 있어 포기했다. 도배가 딱 맞을 거 같아 곧장 도배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에서 한 달간 실무를 익힌 후 2019년 가을부터 곧바로 아파트 건설현장에 투입됐다. 2년간 8곳의 현장에서 일하며 이젠 실력 있는 어엿한 도배사로 성장했다. 부모도 딸의 선택을 반대하지 않고 응원했다.

노력하고 고생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사회복지사 시절보다 수입이 1.5배쯤 된다고 한다. SNS를 통해 도배사 되는 길을 알려 달라는 또래 청년들의 메시지도 자주 받는다.

일을 시작한지 2개월 만에 7㎏가 빠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노력한 만큼 성장하고 회식이나 모임 같은 사회생활의 비중이 적어 만족스럽다. 몸을 쓴 만큼 성과가 나오는 노동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SNS에 하루하루의 단상을 올리기 시작했다가 이를 주의 깊게 살펴본 한 출판사 제안을 받고 책까지 내게 됐다.

배씨가 낸 책의 부제는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이다. 그는 “도배 일을 하면서 직업적으로도 삶 전반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우물 안 개구리였는데 내가 아는 우물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배씨는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가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젊고 똑똑한 아가씨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말하는데 남들의 평가와 시선은 한순간이잖아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몸쓰는 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지만 몸으로 터득한 기술도 가치 있고, 어떤 부분에선 경쟁력이 있음을 다른 청년들도 생각해봤으면 해서 책을 내게 됐어요.”

아직도 주변 사람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 왜 도배를 하느냐. 학벌이 아깝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배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일을 하든 발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체돼 회의만 느끼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 도배는 정직해요. 꼼수를 쓰면 도배지가 우는 등 바로 결과가 드러나요. 성과를 포장할 수도 없죠. 노력한 만큼 기술이 늘고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요. 차가운 시멘트벽이 제 손을 거쳐 아늑해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그는 도배를 하며 정신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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