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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약 매일 챙겨먹고도 임신한 칠레의 여성들

무상 공급된 불량 피임약으로 인한 피해 속출

  • 기사입력 2021.04.07 14:57
  • 최종수정 2021.04.07 23:09

우먼타임스 = 김소윤 기자 

무려 170여 명에 달하는 칠레 여성이 불량 피임약을 먹고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제조 결함으로 발생한 일인데, 칠레 당국이 약의 효능에 영향이 없다는 식의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6일 CNN에 따르면 칠레 산티아고 외곽에 거주하는 네 아이의 엄마인 신티아 곤살레스는 8개월 간 아침마다 알람을 맞춰 놓고 경구 피임약을 복용했는데 피임에 실패했다.

곤살레스가 피임약을 꼬박꼬박 복용한 이유는 중고 의류를 판매하는 노점상 일자리를 잃고 경제적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5월 다섯 번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재 곤잘레스는 2개월 된 아이의 분유 값을 감당하기 벅찬 신세가 됐다.

칠레 현지의 불량 피임약 구분을 하라는 내용이 담긴 포스터 [SNS 갈무리]
칠레 현지의 불량 피임약 구분을 하라는 내용이 담긴 포스터 [SNS 갈무리]

칠레에는 곤잘레스처럼 제조 결함이 있는 경구 피임약을 매일 복용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170여 명에 달한다. 원치 않는 임신을 유발한 문제의 약은 독일의 그뤼넨탈 자회사 ‘실레시아’가 제조한 ‘아눌렛 CD’다.

매일 복용해야 하는 이 약은 21개의 노란색의 피임약과 7개의 파란색 위약이 한 팩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불량제품엔 피임약과 위약이 뒤섞여 있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지난해 칠레 보건당국이 약의 결함이 의심된다는 보건소 직원의 신고를 받고 리콜 결정을 트위터 등에 알렸지만 소비자들은 소식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 벌어졌다.

문제는 결함이 또 다른 제조단위에서도 발견됐다는 것이다. 칠레 당국은 이미 27만7,000여 팩의 불량 피임약이 유통되고 나서야 실레시아의 제조 허가를 일시 중단했다.

이후 당국은 허가를 중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레시아에 다시 제조 허가를 내줬고, ‘아눌렛 CD’도 다시 유통할 수 있도록 했다. 결함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의료인들이 걸러낼 수 있다는 것이 다시 제조 허가를 내준 이유였다.

이처럼 정부와 회사의 문제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이들은 오히려 불량 약을 복용한 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제약사 측은 “제조 결함이 있어도 약 효능엔 문제가 없다. 원래 경구 피임약 효과는 100%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피임약을 정해진 대로 복용했을 때 임신 확률이 불과 1% 미만이다.

칠레는 정부 차원에서 모든 공공의료기관을 통해 14세 이상 여성에게 피임약과 응급 피임약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복지 차원에서 이루어진 정부의 정책이었으나 관리 미흡으로 큰 부작용을 낳게 된 셈이다.

결국 여성단체 ‘밀레스’가 나서 이 문제를 알렸다. SNS, 언론 등을 통해 피임약 결함과 피해자들의 사연을 알렸고 또 다른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칠레 여성들이 낙태를 합법화하라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칠레 여성들이 낙태를 합법화하라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여성단체가 나서면서 일이 커지자 칠레 정부는 지난 2월 제조사에 6억650만 페소(약 1억 원)의 벌금을 뒤늦게 부과했다. 다만 칠레 보건당국은 “피임약 효능은 항생제, 술‧담배 영향으로 달라진다”고 말하며 여성들에게 계속 책임을 전가하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의학전문가들은 흡연으로 인한 피임약효 반감 증거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음주로 인해 피임약을 토하지 않는 이상 약 효능에 영향이 없다는 설명이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칠레에선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이거나 태아나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낙태가 허용된다. 이에 원치 않는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여성들은 낙태를 하지 못하고 출산을 해야 한다.

이와 관련 칠레에서 불량 피임약 때문에 임신한 여자에게 낙태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칠레 사법부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칠레 법원은 한 여성이 제기한 소송에서 “공립의료기관이 불량 피임약을 나눠준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소송을 제기한 여성은 지난해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보건센터에서 나라에서 제공하는 무상 피임약을 받았다.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아기를 임신했다.

이번 소송 결과로 인해 앞으로 같은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지 매체는 “회수 대상이던 불량 피임약을 복용하고 임신을 했다는 여성들이 100명이 넘는다”면서 “소송이 제기되거나 비슷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밝혔다.

한편, 올해 1월 칠레 하원의 양성평등위원회에서는 임신 14주 이내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법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 법안은 2018년 발의됐던 내용으로 2년 넘게 표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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