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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작가 칼럼] 소비에도 평등이 필요하다

  • 기사입력 2021.03.12 16:38
  • 최종수정 2021.03.12 17:12

당연하지 않은 것을 무심코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성에게만 과도하게 할당되는 가사, 무거운 것을 드는 데 남성의 힘을 빌리려는 자세라든가, 남성이 여성을 보호하는 구도라든가. 썩 당연하지 않은데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식 때문에 여전히 성별에 따른 권리가 기울고 있는 게 아닐는지. 

또 우리가 당연한 줄 알고 넘어가는 것 중에 소비문화가 있다. 여성이란 이유로 돈을 더 내고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핑크택스라고 한다. 핑크택스(Pink Tax)는 동일한 상품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현상으로 ‘성차별 가격’이라고도 불린다. 

(thecreativeexchange)
(thecreativeexchange)

핑크택스의 등장은 2015년 미국 뉴욕 소비자보호원이 24개의 온·오프라인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800개 제품의 남녀용 가격 차이를 조사한 결과, 여성용이 비싼 제품은 42%로 나타나지만, 남성용이 비싼 제품은 18%인 데서 시작됐다. 

미국에서 발견된 증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핑크택스는 만연하다. 미용실에 가면 비슷한 길이를 정리하더라도 여성 커트가 남성 커트보다 최소 몇천 원은 더 비싸다. 유명한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판매한 롱패딩의 경우 남성용 패딩의 충전재가 여성용보다 2배 가량 많았지만 같은 가격에 판매됐다. 의류나 화장품 등 소소한 제품을 비롯해 방범을 강화하는 데 드는 주거비용, 여성용 건강제품에도 핑크택스가 적용된다. 

핑크택스로 논란이 됐던 제품으로 마카롱도 있는데 여성이 즐겨 찾는 디저트라서 비싼 가격이 책정됐다는 것이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차별이 해결되지 않은 마당에 내 돈 주고 내가 소비하는 ‘내돈내산’의 세계에서마저 차별당하려니 미칠 노릇이다. 

사실 제품과 서비스는 판매하는 쪽에서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구매하거나 하지 않는 방식 외에 힘을 행사할 방법이 많지 않다. 힘을 행사하고 싶다면 공권력 혹은 다수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뉴욕주는 2019년 성별에 따른 제품 가격 차별을 의미하는 ‘핑크택스’를 없애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고, 차별을 금지하는 ‘핑크택스 금지법’이 지난해부터 적용됐다. 해당 법은 생산 및 제조에 사용되는 재료나 용도, 기능적 디자인, 특징 등에 차이가 없는 유사제품을 여성용 제품이라는 이유로 가격을 다르게 부과하지 못하게 한다. 서비스업종도 마찬가지다. 이를 어길 시 처음에는 250달러, 이후에는 5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성차별적 가격을 책정한 기업에 최대 4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영국에서는 2016년 핑크택스에 반대하는 청원에 4만 명 이상 시민이 서명했고, 이후 성중립 가격 책정 미용실들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정해진 날짜에 맞춰 여성들이 함께 소비를 중단하는 ‘여성소비총파업’을 진행한 바 있다. 또 핑크택스 철폐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한 적 있지만, 참여율은 저조했다. 이쯤 되니 다시 궁금해진다. 차별받는 소비구조를 개선하는 선진국의 사례를 우리는 또 부러워하고 벤치마킹하자며 감탄하는 데서 그칠 것인가. 

같은 제품과 서비스인데 ‘여성용’이란 이유로 더 큰 비용이 청구되는 소비문화를 개선하는 첫 단계는 우리가 차별적 소비에 얼마나 동참하고 있는지 깨닫는 것이다. 미용실에서 비싼 값으로 머리를 자르는 데 거부감과 의문이 들지 않는 당연함, 재료와 공임에 차이가 없음에도 여성용이란 이유로 더 많은 액수를 지불하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안일함과 거리를 둬야 한다. 모든 성이 평등한 게 당연하듯 소비문화도 평등해야 한다.

보통 핑크색은 따뜻하고 귀여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성차별의식이 만연한 핑크택스에 따뜻함과 귀여움은 없다. 인지 못한 차별에 익숙해진 우리의 안일했던 지난날이 담겨있을 뿐이다.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여는 대신 너무나 익숙해 알아채지 못했던 성차별 가격에 의문을 갖고 솔직한 감상을 밝히는 것, 차별적 소비의 구습을 끊어내고 성중립 가격을 획득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작가 도란은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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