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도란 작가 칼럼] 남녀 가사 시간이 보여준 불평등 성적표

  • 기사입력 2021.02.15 10:37
  • 최종수정 2021.02.15 18:49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통계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여성의 가사 시간이었다. 발표에 따르면 2019년 취업 여성의 가사 시간(가정관리, 돌보기)은 2시간 24분이었다. 취업 여성은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취업한 여성으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여성이 결혼 후 배우자와 가사를 분담한다면 가사 시간이 줄어들까? 이어서 확인한 통계는 잠시나마 불을 지폈던 기대감에 찬물을 들이부었다. 맞벌이 가구의 여성 가사 시간은 3시간 7분으로 취업 여성의 평균이었던 2시간 24분보다 43분 늘어났기 때문이다. 

맞벌이 가구가 되면서 가사 노동이 늘었더라도 공평하게 분담한다면 가사 시간이 늘어날 리는 없건만, 그 답은 맞벌이 가구 남성의 가사 시간에 담겨있다. 퇴근하고 매일 3시간 7분씩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과 달리 맞벌이 가구 남성의 가사 시간은 54분이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매일 2시간 13분씩 더 일하는 셈이다. 

외벌이 가구의 가사 노동 시간은 더 해괴한 자태를 드러낸다. 남편 외벌이 가구의 경우 여성이 5시간 41분, 남성이 53분 가사 노동을 한다. 반대로 아내 외벌이 가구의 경우 여성이 2시간 26분, 남성이 1시간 59분 가사노동에 참여한다. 이 절망스러운 통계는 돈을 벌든 안 벌든 여성이 가사 노동을 더 많이 하는 우리 사회의 독특한 풍토를 보여주고 있다. 

통계를 읽을수록 딱해지는 우리 사회의 못된 구석은 왜 고쳐지지 않을까? 여성에게 가사노동이 집중되는 문화가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우리 머릿속에서는 인지하지만, 가슴속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떠올려보면 결혼한 이후 많은 사람이 내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밥은 잘 얻어먹고 다니냐?”
“와이프가 밥 잘 챙겨주냐?”

드라마 며느라기의 한 장면. 출장간다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출장을 꼭 가야하냐고 말한다. 며느리의 출장으로 아들이 밥을 못 먹을까봐 걱정하고 있다.
드라마 '며느라기'의 한 장면. 출장간다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출장을 꼭 가야하냐고 말한다. 며느리의 출장으로 아들이 밥을 못 먹을까봐 걱정하고 있다.

하물며 내 주변 사람들은 저녁때면 청하지도 않은 걱정을 보탰다. 

“얼른 들어가서 남편 밥 차려줘야지.”
“오늘 저녁 메뉴는 뭐 준비했어?”

그렇게 말을 보탠 이들 중 누구 하나 악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었겠지만, 오랜 세월 누적된 가치관 속에서 가사노동에 어울리는 젠더로 여성을 지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남편은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쭉 맞벌이를 하고 있으니 밥은 남편이 차려도 되고 내가 차려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당연히 아내인 내가 저녁을 차리고 가사 노동을 할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부부 사이에 서로 밥을 얻어먹을 처지는 아니지만, 남편이 “와이프에게 밥 잘 얻어먹고 다니냐?”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반대로 나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이도 내게 “남편에게 밥 잘 얻어먹고 다니냐?”, “남편이 밥 잘 챙겨주냐?”고 묻지 않았다.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서 드러난 여성과 남성의 가사 시간 차이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가정문화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꼬집고 있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가사노동을 여성의 것으로 인지하는 그릇됨을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혹은 남성보다 여성이 살림을 잘한다는 둥 잘못된 인식을 고집하는 일면도 있다.

흔히들 가족을 사랑, 편안함, 따뜻함 등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사 노동을 떠맡는 가정이라면 사랑과 따뜻함을 어느 구석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가족 구성원의 일부만 편안하고 누군가는 불평등을 감내해야 한다면 진정한 가족이라 말할 수 없을 터다.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맞벌이 가구의 여성 가사 시간 3시간 7분, 남성 가사 시간 54분이라는 낙제 성적표가 떨어졌다면 한 번쯤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남녀가 평등한 존재라고 말은 하면서 내심 가사 노동은 여성에게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말이다. 

*작가 도란은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를 썼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만 안 본 뉴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