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도란 작가 칼럼] 여성을 ‘전시’해야 하는 이유

  • 기사입력 2021.01.22 17:27

지난해 9월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여성가족부 2021년 예산안에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 예산 3억 원이 포함됐다. 국립여성사박물관 설립은 논의된 지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그동안 부지 선정이나 예산 편성에 어려움이 있어 추진이 지연되던 터였다. 하지만 올해 예산안에 확실히 포함된 만큼 2023년 완공을 기대해볼 만하다. 

여성의 생활사와 정치, 경제, 노동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복합적으로 제공하는 박물관은 새로 건립될 국립여성사박물관이 그 역할을 해내겠지만 이미 국내에는 여성을 주제로 다루는 박물관이 몇 군데 있다. 

국립여성사전시관.
국립여성사전시관.

우선 경기도 고양시에 ‘국립여성사전시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역사에 이바지한 여성의 기록과 여성 생활사를 보여주는 유물, 작품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향후 국립여성사전시관은 위에 언급한 국립여성사박물관으로 확대, 이전될 예정이다. 확대, 이전과 동시에 기존 전시관에서 보여주던 콘텐츠를 다양한 주제로 확충된다고 볼 수 있다. 국립여상사박물관 예정지는 서울시 은평구다. 

서울시 마포구에는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록하고 교육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있다. 생존자의 일생과 참혹한 역사를 보여주고 생존자 할머니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와 정신대 배상 소송을 벌였다. (민족과 여성 역사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와 정신대 배상 소송을 벌였다. (민족과 여성 역사관)

부산에는 ‘민족과 여성 역사관’이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군 성노예의 명예 회복을 위해 세워진 인권 박물관이다. 생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리며 올바른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로 개관했다. 일본군 성노예의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 일본군 성노예와 근로 정신대 생존자들이 투쟁해온 7년의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이처럼 수가 많지는 않지만 이미 건립돼 제 몫을 하는 여성 주제의 전시관을 보면서 희미하게 의문이 든다. 여성 박물관은 건립돼 있고 건립이 예정된 곳도 있건만, 남성 박물관은 어째서 한 군데도 없는 것일까. 남성에게 알려야 할 역사는 없다는 뜻인가?

조심스레 짐작해보건대 여성에 비해 남성은 억압받은 역사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일본군에게 성노예 피해를 본 것은 여성이었다. 단순히 일제강점기뿐만이 아니다. 국력이 약할 때 전쟁에서 공을 세운 남성은 가문의 영광이었지만, 노예로 끌려간 여성은 고향에 돌아와서도 ‘화냥년’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남성 인사들은 두고두고 이름을 알리고 정치인이 됐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여성의 목소리는 대체로 회자되지 않고, 여성의 노고는 그저 옥바라지로 정리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 미주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을 역임한 여성독립운동가 이혜련. 그의 남편은 안창호다. (국립여성사전시관)
일제강점기 미주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을 역임한 여성독립운동가 이혜련. 그의 남편은 안창호다. (국립여성사전시관)

성별은 생이 시작되면서부터 주어진 것, 선택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 성별에 의해 여성은 역사에서 피를 흘리고 억압받고 살아온 기록이 너무 많아서 박물관으로 건립돼 겨우 목소리를 낸다. 반대로 남성은 억압받은 역사가 적고 기록도 부족하기에 남성을 주제로 한 박물관은 건립이 어려운 게 아닐까.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박물관이 있긴 하다. 용산에 있는 전쟁박물관에 가면 남성의 공로가 멋지게 전시돼 있으니 말이다. 

억압받은 역사를 덮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는 건 훌륭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은 더 많이 ‘전시’돼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전시는 볼거리로 전락하는 전시가 아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불평등과 억압의 역사, 민주주의 사회를 살면서도 여전히 벌어지는 차별의 형태를 끊임없이 전시하며 성 평등의 균형을 맞춰가야 한다. 

일각에서는 여성의 전시를 ‘오버’라고 비아냥거리거나 ‘역차별’이라 규정지을지도 모른다. 그 말도 틀린 바는 없다. 차별과 폭압이 익숙한 여성의 세계에서 평등에 가까워지려면 차별받는 이들이 ‘오버’해서라도 전시장에 세워져야 한다. 

혹시 여성의 전시가 못마땅한가? 그렇다면 혹시 자신이 차별의 방관자가 아니었는지 지금이라도 용기 내 돌이켜보길 바란다.

 

*작가 도란은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를 썼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만 안 본 뉴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