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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작가 칼럼] 며느리 손맛, 사실 별 거 없다

  • 기사입력 2021.01.15 17:44
  • 최종수정 2021.01.16 23:31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우리나라 여성 중 신지수 작가의 <며느라기>를 모르는 이가 몇이나 될까? <며느라기> 속 주인공 민사린은 우리네와 비슷한 과정을 밟아 결혼하고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결혼 전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지위가 늘어남에 따라 내적 갈등과 부당한 현실을 감내한다. 바로 ‘며느리’라는 지위다. 

이 작품은 웹드라마로 제작돼 카카오TV에서도 방영됐다. 원작을 몹시 재미있게 봤지만, 나는 차마 드라마를 볼 자신이 없었다. 짧고 절제된 웹툰을 볼 때도 속이 터질 것 같았는데, 그 답답한 광경이 눈앞에서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걸 두고 볼 자신이 없었던 거다. 

웹 드라마 ‘며느라기’의 한 장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는 음식을 만들게 하고 아들이 이를 도우려고 하자 못하게 막는다.
웹 드라마 ‘며느라기’의 한 장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는 음식을 만들게 하고 아들이 이를 도우려고 하자 못하게 막는다.

<며느라기>를 보며 속이 터질 것 같은 이유는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며느리’라는 지위를 획득한 이후 경험한 불평등한 가사와 역할의 강요 때문이다. 특히 여성이 결혼 후 며느리가 되면 당연하다시피 가사 그중에서도 요리에 대한 강요를 떠맡게 된다. 나는 그 강요를 허울 좋게 함축한 말이 ‘며느리 손맛’이 아닐까 한다. 

명절이면 며느리들이 부엌에 모여 기름진 음식을 마련하는 가정은 여전히 많다. 여성이 음식을 한다고 해서 특별한 맛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레시피도 뻔하다. 그런데도 굳이 요리가 여성의 전유물인 양 정리된다. 하지만 여성이라고 태어나면서부터 미각이나 음식 솜씨를 갖고 태어날 리가 있겠는가. 만약 명절 음식을 집안 남성이 한다고 해서 맛이 떨어진다면 그동안 익숙하게 요리에 참여하지 않아서일 뿐이다. 

그런가 하면 시가 어른의 생신이면 “며느리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다.”라는 은근한 압박을 넣거나, 맛있게 식사를 한 후에 “며느리 손맛이 좋다”라며 칭찬하는 등의 방식으로 여성의 일을 밥 짓기로 단정지어 버린다. 

나 역시 명절에 시아버지가 “며느리는 주방에 가서 어머니를 도와 상을 차리라.”라고 지시하면서 아들인 내 남편은 거실에 붙잡아두고 정치니 경제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상황을 경험했다. 이에 반감을 드러내자 아들이 거실 소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팔을 붙들고는 며느리인 내게 어서 주방에 가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며느리인 내가 시어머니를 거들어 차린 밥상에서 우러나오는 며느리 손맛에 기대가 크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며느리 손맛이 정말 좋을까? 며느리가 전문 요리인이거나 쉐프가 아닌 이상 다들 비슷한 경로를 살아온 각각의 자녀들이다. 남성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기까지 음식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면 여성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 결혼 전에 해본 요리라고는 김치볶음밥이 전부였다. 결국 며느리 손맛이란 며느리의 가사 노동이 당연시되는 이 시대가 편안하니 성평등의 변화를 원치않는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 아닐른지. 

혹은 여성 스스로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되고픈 마음에 사로잡혀 며느리 손맛의 문제를 깨우치지 못할 수도 있다. 미혼 시절부터 기혼자가 된 이후에도 주변에서는 내게 시부모님께 잘하라는 둥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둥의 덕담 비슷한 말을 줄곧 해왔다. 

당시에는 문제의식을 못 느꼈지만, 남남이던 이들이 결혼으로 가족이 됐을 때 반드시 예쁨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 그 무게감은 상당할 것이다. 또 귀염받기 위해 며느리로서 손맛을 발휘하고 음식을 잘 차려내야 한다는 건 ‘부엌일=여성의 일’이라는 가부장제의 악습에 대를 이어갈 뿐이다. 그러니 며느리란 이유로 음식 만들기에 열의를 다할 필요도, 며느리로서 예쁨을 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며느라기> 속 민사린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결국 우리가 흔히 듣는 며느리 손맛이란 여성에게 부엌일을 떠넘긴 것을 미화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며느리든 아들이든 사위든 만든 이의 성별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질 리는 없다. 손맛이란 ‘음식을 만들 때 손으로 이루는 솜씨에서 우러나오는 맛’을 뜻하는 말인데, 손으로 음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성별에 따라 손맛이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구정 명절까지 한 달여가 남았다. 결혼한 지 7년 차고 시가족을 겪을 만큼 겪었음에도 부엌일을 며느리의 것으로 단정짓는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며느리의 손맛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번 명절에도 부엌일을 강요하거나 요리 솜씨를 기대하는 발언을 듣는다면 나는 참지 않고 솔직히 말하고자 한다. 요즘 손맛은 밀키트가 대세라고. 

 

*작가 도란은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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