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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작가 칼럼] ‘여자 상주’는 안 되는 걸까?

  • 기사입력 2020.12.24 15:33
  • 최종수정 2020.12.24 15:49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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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레 장례를 준비했다. 딸만 내리 셋인 우리 집에서는 큰 형부에게 상주의 완장을 두르게 했다. 아버지의 직계 자손은 나를 포함한 딸이 셋이나 있었음에도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가족은 가족이되 성이 다르고 함께 산 지 몇 년 안 된 큰 형부가 그 자리에 3일 내내 머물렀다. 

분명한 자손은 나인데 큰언니의 혼인으로 가족이 된 형부가 ‘상주’를 해야 하는 건 자못 찜찜했다. 그럼에도 어떤 처신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딸만 있는 집에서 아들이 상주 역할을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가족과 친척들 때문이었다. 누구 하나라도 여성이 상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상주=남성’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은 집안의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보유하고 있었다. 

상주는 장례식 내내 빈소를 지켜야 한다. 상주였던 형부 곁에 나를 포함한 세 자매가 일렬로 서서 함께 조문객을 맞았다. 물론 형부도 사람이기에 잠은 자야 했고, 가끔은 쉬어야 했다. 그럴 땐 딸들인 우리만 돌아가며 빈소에 남아있긴 했지만, 우리의 역할은 빈소를 지키는 것보다 조문객들의 음식을 챙기는 데 더 집중돼 있었다. 당시 세 자매 중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나뿐이라 조문객의 절반 이상이 나를 찾아왔음에도 그랬다. 

우리 집만 이상한 건 아니었다. 나는 어느 장례식장에서도 여성 상주를 본 적이 없다. 딸만 있는 집이든 아들이 섞인 집이든, 상주의 완장을 찬 여성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상주는 원래 남자가 해야 한다거나, 장례 법도가 본래 그런 게 아니냐고 되묻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한때는 상주를 남성으로 지정한 때도 있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서 운영하는 e하늘장사정보시스템에서는 그동안 상주를 ‘죽은 사람의 장자’로 표기해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비대면 추모와 성묘가 권장되면서 이 표기가 논란이 됐고, 지금은 ‘고인의 자손으로서 장례를 주관하는 사람’으로 변경됐다. 당시 보건복지부에서는 “기존 장례절차 등에 대한 사회적 통념상 안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통념이란 남성 중심의 장례문화에서 고인의 자손인 여성이 음식 대접이나 하도록 차별하는 것일까? 남성이 상주의 완장을 차고, 영정을 들고 행렬 앞을 걸을 때 여성들은 고개를 숙이고 곡을 하며 그 뒤를 따르는 남성 중심적이자 가부장적인 장례문화가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통념인지 궁금해진다. 남성은 검은 양복을 입지만 여성은 과거의 복식인 소복(한복)을 입는 구별 짓기가 정녕 아무렇지 않은 걸까?

장례란 죽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의례다. 의례란 예를 갖춰 행사를 치르는 법식인데 여기에 은근한 성차별과 가부장적 인식이 도사리고 있다면 수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다들 그러니까 등의 핑계는 잘못된 장례문화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행인지 사회 곳곳에서는 그동안의 잘못된 장례문화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20~50대 성인 1,3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장례문화의 실태와 대안적인 장례문화 및 정책에 대한 인식 파악’ 조사가 있었다. 

이 조사에서 ‘장례에서 상주는 남성이 해야 한다’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15.1%와 동의하지 않는 편이라는 44.8%가 있었고 매우 동의하는 6.5%가 있었다. 

또 ‘제사에 있어 성별에 따라 역할을 한정하고 차별하는 문화는 변화해야 한다’에 매우 동의하는 40.8%와 동의하는 편인 48.4%가 있었고, 동의하지 않는 1.2%가 있었다. 

한국 여성의 전화에서는 올해 8월 문상이나 장례와 관련해 성차별적 경험담을 모집했다. 이는 ‘성평등한 장례문화 만들기’ 캠페인과 사례집 출간에 활용된다고 한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 그동안 여성 상주를 용납하지 못하는 잘못된 문화가 있었다면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지금이라도 그 문화를 고쳐가야 할 것이다. 비슷한 세대가 아닌 여러 세대가 함께 치르는 장례이기에 고쳐가는 게 어렵다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소중한 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의례를 치르는 자격에서 차별받고, 차별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조금 더 용기를 내봐도 좋을듯하다. 

 

*작가 도란은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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