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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칼럼]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4주기…그들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다

  • 기사입력 2020.05.18 13:37
  • 최종수정 2022.08.04 23:25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17일, 10번 출구 앞에는 4년 전 그날처럼 여성들이 수많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연합뉴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17일, 10번 출구 앞에는 4년 전 그날처럼 여성들이 수많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연합뉴스)

[우먼타임스 한기봉 편집인]

4년 전인 2016년 5월 17일, 이날은 한국 여성 인권 투쟁사의 목차에 기록돼야 하는 날이다. 이른바 ‘젠더 폭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전환과 논란이 이 사건으로 불붙었다.

이날 새벽 1시 7분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남녀공용 화장실 계단에서 한 여성이 흉기로 무참히 살해됐다. 30대 남성 가해자 김성민은 한 시간 반 동안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며 남성 6명은 다 그냥 보내고 여성이 나오자 곧바로 범행했다. 스물 세 살 하모 씨는 피해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범인은 징역 30년에 전자발찌 20년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범인은 범행 동기로 “평소 여자들이 나를 무시했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우발적인 ‘묻지마 살인’이라고 발표했다.

여성들은 들고 일어났다. 여성들은 이 사건을 ‘묻지마 살인’이 아닌,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규정하고 페미사이드(femicide·여성살해)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에 분노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 범행에는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적 구조와 맥락이 깔려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여성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해시태그로 연대한 여성들은 더 이상 ‘82년생 김지영’으로 머물기를 거부했다. 강남역 앞은 물론 전국 도시의 지하철 입구에서 여성들이 시위를 갖고 수많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언론은 본질을 외면하고 성 대결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경향신문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포스트잇을 일일이 헤아리고 그 내용을 채록해 소개하는 특집을 실었다. 포스트잇은 우연하게도 ‘1004’개였다. 포스트잇은 여성 차별과 혐오를 겪고 있는 이 나라 여성들의 울분에 찬 집단고발장이었다. 매일 느끼는 위험과 위협에 대한 절박한 공소장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 남성들을 향한 차가운 경고장이었다. 이 포스트잇들은 서울시청 추모공간에 옮겨 보관됐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그렇게 한국 여성들의 ‘세월호’가 됐다.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여성들이 심리적으로 연대하고 자발적으로 거리로 뛰쳐나와 전국에서 비폭력 규탄 집회를 가진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정치권과 남성들은 당시 그 의미를 간과했다.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어 미투 운동과 함께 지구촌에 새로운 페미니즘의 조류가 불어오면서 강남역 사건은 비로소 재조명됐다. 인권 개선과 성 평등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 저항이 여러 곳에서 분출됐다. 홍대 몰카 사건 편파 수사의 문제를 비판하는 여성 집회는 수만 명이 참가하는 혜화역 시위로 이어졌다. 이들은 “내 몸은 포르노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한 여성 행동단체는 상의를 노출한 여성 사진만을 음란물로 규정해 삭제한 페이스북 사무실 앞에서 보란 듯이 상의를 벗고 시위했다. 극단적인 남성 혐오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그에 비례해 여혐의 강도도 세졌다. 성별 갈등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치권도 정부도 여성의 목소리를 의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천명했다. 여성의 안전을 담보하고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여러 법안이 만들어진 성과도 있었다.

4년의 시간이 지났다. 여성은 그때에 비해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느낄까. 사회는 변화

했을까. 조짐은 보인다. 사회 곳곳에서, 국가의 정책에서 성 평등의 가치가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몰카는 오늘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여성의 은밀한 곳을 향하고 있다. n번방 성 착취 범죄는 여성들의 삶이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매년 이날이 오면 여성들은 잊지 않고 거리에 나선다. 당시 추모공간이 마련됐던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다시 포스트잇이 붙었다. “오늘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어떤 여성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서는 안 된다.”

시민단체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은 여성 대상 범죄 규탄 발언 행사를 이날 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참가자들은 번갈아 마이크를 잡았다.

“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오늘까지 지난 4년간 끊임없이 안전을 위해 싸워왔음에도 여성들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삶을 영유하는 일이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어려운 일이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다시 불러모았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많은 여성이 자기 자리에서 싸우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일상적 차별과 멸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미투로 이어졌고 우리 마음 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세상이 여성들의 요구에 발맞춰 움직여야 할 때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4주기를 맞은 지금도 여성은 각종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n번방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남자 26만 명을 확실하게 처벌해야 한다. 남자들의 진심어린 반성과 인식의 전환이 없다면 강남역 사건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정세균 총리와 정치권은 이날 여성 안전과 성평등을 다짐하는 성명을 냈다. 내년은 강남역 살인 사건 5주기를 맞는다. 그 자리에는 어떤 목소리들이 나올까. 방송에 출연한 한 전문가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자주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유의미하게 개선된 것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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