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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트랜스젠더, 이제 선명한 존재들(中)

- 트랜스젠더 95% "한국 사회 살아가기 어렵다"
- 이분법적 성별 구분으로 일상적 차별 및 불편 경험
- 가시화하는 트랜스젠더 늘어나지만…차별적 현실은 여전

  • 기사입력 2020.03.02 14:07
  • 최종수정 2020.08.01 16:02
지난해 6월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6월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우먼타임스 임기현 기자] 올해 1월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변희수 육군 하사의 군 복무 찬반 논쟁이 있었다. 그는 결국 강제전역됐다. 2월에는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숙명여대에 합격했으나 논란이 일자 스스로 등록을 포기했다.

트랜스젠더의 권익과 관련해 한국 사회가 외면했던 문제가 수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인간의 성 정체성을 두고 이어지는 논란 속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상처를 받고 있다.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해 이제는 우리 사회가 대답해야  할 때다. 우먼타임스는 세 번에 걸쳐 트랜스젠더에 대한 문제를 짚는다. (편집자 주)

한국의 트랜스젠더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으나 사회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고 있지만 차별적 시선은 여전히 걷히지 않은 듯하다. 

◆ 남성·여성 이분법이 만든 차별

2013년 수행된 한국 LGBTI(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트랜스젠더(총 233명)의 94.5%가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로서 살아가기가 ‘매우’ 또는 ‘별로’ 좋지 않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2명 중 1명은 일상 생활 중 차별과 폭력을 직접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연구팀은 트랜스젠더 본인의 성별 정체성에 대한 내면적 인식은 주변인의 태도와 사회적 인식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긍정하냐는 질문에 단 40%만이 그렇다고 응답했을 뿐이었다.

다른 성소수자 집단을 포함한 전체 응답자의 평균은 74.8%였다. 트랜스젠더 집단의 경우 상대적으로 더 폭력적인 사회적 인식을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트랜스젠더는 법적이고 사회적인 이분법적 성별 구분으로 인해 일상적 차별과 불편을 경험한다. 인터넷 서비스 가입이나 은행 업무처럼 개인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일을 처리할 때 주민등록상의 성별이 바뀌지 않은 경우 본인이 맞는지 확인 절차만 여러 차례 겪어야 하는 현실이다.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 다반사이고, 수영장이나 대중목욕탕은 이용하기 어렵다. 투표소에서도 본인 확인 절차를 거듭하기에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구직 시에는 차별 구조의 복잡성이 더 커진다. 성별 정보를 많이 요구하지 않는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에 종사하게 되는 트랜스젠더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의료적으로 접근해도 차별적 요소가 존재한다. 트랜스젠더들이 외부 성기 성형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거의 대다수 태국 같은 외국을 찾아가야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트랜스젠더에 대한 의료진의 이해와 외과적 수술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부 병원 및 단체를 중심으로 개선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 충분치 않은 단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에서도 의료진이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알거나 의심할 경우 응답자의 49.1%가 의료 과정 중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입원실 배정이나 진단 중 탈의 같은 의료 과정 중에도 차별을 겪는 경우가 많다. 트랜스젠더 본인의 성별 정체성이 아닌, 의료진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몸을 노출하거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아울러 호르몬 치료를 위해서는 정신과의 진단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트랜지션(트랜스젠더가 되는 과정)의 문제다.

수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성기성형수술에는 평균 2,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전적으로 트랜스젠더의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수술 후 부작용이 발생하면 다시 외국 병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0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평등행진 중인 트랜스젠더 인권 단체 트랜스해방전선. (사진=트랜스해방전선)
지난해 10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평등행진 중인 트랜스젠더 인권 단체 트랜스해방전선. (사진=트랜스해방전선)

◆ 목소리 내지만…차별적 인식 여전

복무 중 성전환자가 된 변 전 하사와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의 입학 여부를 두고 벌어졌던 논쟁과 그 결과에서도 우리나라 트랜스젠더들은 견고한 사회적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실감해야 했다. 변 전 하사의 경우 군이 트랜스젠더의 복무에 대한 규정의 부재를 근거로 ‘심신장애’라는 결격 사유를 바탕으로 전역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군의 결정보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군이 판단을 3개월 미루는 긴급구제를 권고했다. 현역 복무 중 성전환자에 대한 별도의 입법이나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법리적인 검토를 충분히 마친 후 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권고로 풀이된다. 그러나 군은 곧바로 변 전 하사를 전역시켰다.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나라는 20여 나라에 이른다.

숙명여대에 합격했지만 결국 등록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여성 A씨의 경우에도 반대 여론이 거셌다. 페미니즘을 표방한 일부 여성 커뮤니티에서도 외면받았다. 급진적 성향의  여자대학 페미니스트 그룹을 일컫는 터프(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TERF)를 중심으로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의 탈을 쓴 남성’이라고 주장했다. 생물학적으로만 판단한 것이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법원의 자의적인 성별 변경 결정에 반대하는 연서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집단적 논쟁이 일어난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와 논의가 초보적 단계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그들의 인권이나 삶, 고용 같은 근본적 문제보다는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일반의 '안전'이나 '불편'만을 중시해 사회적 일원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 전 하사의 전역을 주장한 이들은 ‘여군과의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이냐?’하는 복무 환경의 문제가 초점이었고, 숙명여대에 합격한 A씨의 경우에는 ‘여성들의 안전이 먼저다’라는 목소리가 컸다.

물론 그런 문제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해법이 오직 '배제'로만 결론지어지면 더이상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나갈 수가 없다.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던 트랜스젠더 ㄴ씨는 “근본적으로 여성 대상 범죄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를 배제하자는 목소리가 지지를 얻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다. 이 맥락을 아예 제거하자는 건 아니다”면서도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법적 성별 정정까지 마쳤는데도 난리가 난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의 존재라는 게 어디쯤에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여성 녹색당 김기홍 비례대표 예비후보가 21일 국회에서 회견하고 있다.(연합뉴스)
트랜스젠더 여성 녹색당 김기홍 비례대표 예비후보가 21일 국회에서 회견하고 있다.(연합뉴스)

커밍아웃을 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내는 트랜스젠더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변 전 하사와 A씨를 비롯해 최근에는 트랜스젠더 여성인 김기홍씨가 녹색당 비례대표 예비후보로서 국회의원에 도전하겠다 밝혔다.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나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퀴어 축제 등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이 오프라인에 모여서 존재를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대중문화에도 반영되고 있다. 성 소수자를 다룬 독립영화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도 트랜스젠더가 극중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

숙명여대에 합격한 A씨가 롤모델로 삼았다는 국내 유일의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권은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지, 남의 권리를 빼앗아 내 권리로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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