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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가부장적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 기사입력 2020.02.17 16:36
  • 최종수정 2020.08.24 15:41
양성평등교육진흥원 직원들이 2019년 10월 일상에서의 평등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평등의 사전적 정의는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평등이라는 개념이 가정이라는 범주 안으로 들어가서 그 의미가 확정되어질 때는, 권력관계에 따라 분류된 상위, 하위의 개념이 없고, 종속과 피종속의 관계가 없는, 두 명의 인격체가 만나 의사합치를 이루어 그 탄생부터 존속, 소멸까지 평등을 지향하는 가정이라고 정의 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에서의 평등은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함을 추구한다고 표방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이자 관습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유교적 가치에 따라 가부장제가 사회의 주류 체제로 자리잡게 된다. 가부장제는 한국 가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약 40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체제로서 위치를 갖게 됐다. 

가부장제, 또는 남성본위 문화는 한국 사회의 정책, 경제, 법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존재하고 기능해왔다. 1980년에 들어서야 남녀평등의 가치 아래 자율 또는 타율적으로 가부장 문화가 약해지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으나, 아직은 가부장제를 대체했다거나 전복시켰다고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부부가 되기 전 받아온 교육,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그들이 사회적 통념이라고 생각하는 성 역할론, 제3자의 시선 등 가부장제의 장벽은 아직 높기만 하다. 

한국 사회가 진정한 평등가정으로 가는 길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제 폐지 판결(2004년), 재산권 균등상속 판결('딸들의 반란', 2002년)을 볼 때, 가부장제의 근간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한국 사회도 젊은 세대의 가치관의 변화와 남녀 평등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논의, 행동주의적 페미니즘에 힘입어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평등가정이란, 가장 쉽게 말하면 가부장제에서 탈피한 가정을 의미한다. 그걸 증명하는 가장 기본적 통계는 남편과 아내의 가사노동 시간 비교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맞벌이 부부의 비중은 46.3%(567만5000쌍)다. 그런데 맞벌이 부부를 기준으로 본 주중 가사 시간은 남편이 17.4분, 아내는 129.5분으로 아내가 남편보다 7.4배나 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결과는 ‘가사노동이나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가부장제식 사고가 여전히 뿌리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부장제가 꼭 여성만을 억압하는 것은 아니다. 가부장제 체제 하에서 한국 남성들은 그들의 노동을 강제받고, 한 가정의 책임자로서의 무게가 양 어깨를 짓누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더 힘든가를 따지는 건 실익이 없다고 생각되어진다.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공유경제가 등장하고 공유경제는 필연적으로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주도할 수밖에 없으므로 맞벌이 가구는 계속 더 증가할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상황에서 가부장제를 고수하는 태도는 경제적 관점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지고, 평등가정이라는 지향점과는 동떨어진 채, 여성과 남성 둘 다에게(특히, 여성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적 폐단만을 낳을 것이다. 

재산 소유권을 살펴보면, 주부가 경제학적으로는 비경제 활동인구의 범주에 속한다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육아 및 가사가 노동으로 인정된다. 민법에서는 부부가 결혼한 후 생성된 재산에는 여성의 육아 및 가사노동이 포함된다. 상속 순위에서도 아내가 1순위다.

가사노동의 대부분(설거지, 요리, 청소 등)은 여성이 도맡아 하고 남성은 ‘도와주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가사를 '돕는다'는 건 평등의 관점에서 부당한 인식이다. 가사노동은 부부 공동의 일이지, 한 명에게 특정된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할 때의 육아도 거의 어머니의 독박육아로 이루어진다. 

현재 한국의 가정내 평등은 요원하다. 벨 훅스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책에서 페미니즘을 "가부장제, 백인우월주의, 자본주의 등의 체제의 모순에서 오는 폭력에 종언을 고하는 운동"으로 정의했다.

평등가정이라는 측면에서만 페미니즘 운동을 국한시켜볼 때, 진정한 평등가정을 이룩하기 위해선 가부장제를 소멸시켜야 한다.

평등가정을 이룩하기 위해 가부장제를 전복시키는 길은 무엇일까.

첫째, 여성의 고용과 노동이 더 장려돼야 한다. 가정 불평등 문제의 근원에는 남성보다 모자라는 여성의 경제권이 자리한다. 여성의 경제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우대 정책’, ‘육아휴직의 활성화를 통한 경력 단절 타파’,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칙의 법제화’, ‘재산 소유권을 균등하게 분배하게 하는 과세적 유인책’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나 법은 역차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다만 일정한 시한까지만 진행하는 한시법, 헌법의 기본 법리인 과잉금지의 원칙에서 나오는 법익 균형성 등을 통해 일정 부분 커버할 수 있다.

둘째, 페미니즘을 필수 교과 과정에 편입시켜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에게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무의식적 인식이나 잔재를 없애주는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장차 평등가정을 이뤄내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는 또 페미니즘 운동이 전문가의 영역(학자나 엘리트에 국한된)이 돼 학문적 게토(ghetto)안에 갇히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백래시처럼 쏟아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나 성 갈등을 해결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페미니즘 전문가는 이렇게 인상적으로 말했다.

“어떠한 진리나 체제, 정의도 시대를 넘을 수 없다. 이는 모두 그 시대 사람들의 사회적 통념을 담은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만고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것만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이제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400년간의 가정의 정의(定義)는 다시 정의(正義)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부장제라는 기본 소프트웨어를 갈아 끼워야 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러번 덧칠하지는 않는다. 화가는 새로운 도화지에 다시 그림을 구상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가부장제라는 옛날 도화지에 그린 그림을 찢고, 새로운 도화지를 꺼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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