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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시네마] ④2020년에 생각해보는 고전 ‘델마와 루이스’

  • 기사입력 2020.02.13 10:34
  • 최종수정 2020.08.01 19:50
유명한 마지막 장면.

영화는 사회와 문화, 역사를 반영하거나 투영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지구촌에 일고 있는 페미니즘의 물결은 영화가 놓칠 수 없는 소재다. 물론 여성영화, 또는 여성주의 영화라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은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국내외 곳곳에서 여성영화제도 열리고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겪는 폭력과 차별의 고발이든, 여성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든, 가정과 어머니의 문제이든, 여성의 욕망을 다루든, 여성영화라는 카테고리 안에 넣을 수 있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영화들이 나왔고 또 나오고 있다. 우먼타임스는 '우먼 인 시네마' 연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영화 속에 그려진 여성과 여성문제를 생각해본다. (편집자주)   

[우먼타임스 박종호 기자] 여성영화를 논할 때 리들리 스콧의 1991년 작품 <델마와 루이스>는 빼놓을 수 없다. 개봉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대표적인 페미니즘 영화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여성영화에 대한 담론이 활발한 오늘날 재평가가 활발한 작품이기도 하다.

(스포일러의 위험성을 감수하고)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보수적 남편을 둔 평범한 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식당에서 일하는 독신의 루이스(수잔 서랜든)는 어느 날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델마는 남편의 허락 없이 루이스의 차에 오른다. 두 사람은 도로 휴게소에서 강간하려는 동네 건달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다. 여행은 도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경찰에 쫓기는 두 여인의 도주는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워 보인다. 그들에게 일터와 가정으로의 복귀는 가부장제로의 귀속을 의미했다. 두 여인은 사막을 가로질러 도주하다 절벽 앞에 놓인다. 그들의 선택은? 마지막 명장면이 나온다.

모두가 호평하는 부분은 명백히 살인범죄자였던 두 여주인공에게 관객이 감정적으로 동조하게 만들어다는 점이다. 남성 캐릭터들의 악행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영화 역시 ‘그 남자의 강간 시도가 없었다면 우리가 죄를 지을 일도 없었다’는 대사를 삽입해 주인공들이 피해자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들의 범죄는 불의에 대한 저항 수단으로 기능했다.

영화 속 스틸 이미지.

그래서 이 영화의 개봉 이후 미국 사회에서 여성억압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졌다. 두 여성 주인공이 탈선해 자유를 만끽한다는 이야기는 당시 미국 내에서도 신선한 소재였다. 특히 미국은 유럽보다 보수적 분위기가 강할 뿐더러,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 역시 8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부터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이따금씩 드러내던 프렌치 필름이 아닌, 할리우드에서 드러내 놓고 남성우월주의적 문화를 비판하는 영화가 화제를 낳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서사와 의미만으로 역사에 남는 명작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로서의 최소한의 재미, 그리고 현대적 관점에서도 높게 평가할 만한 요소들은 필수에 가깝다. 이는 좋은 작품이 워낙 여러 시대, 여러 관점에 걸쳐 다양하게 해석되는 현상과 유사하다. <델마와 루이스>의 평가 역시 과거에는 여주인공들의 범죄와 도주를 ‘해방’으로 인식하는 페미니즘 비평이 학계의 이목을 끌었다면,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입체적 캐릭터 창조와 영화적 기교가 다시금 평단과 대중 양 쪽에서의 호평으로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활용 면에서 워낙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왔다. 그는 <에이리언> 시리즈에서도 전통적으로 남성이 맡아왔던 역할에 여성을 캐스팅하는 센스를 발휘한 적이 있다. 물론 일부 여성학자들은 “그것은 남성이 담당하던 역할을 여성이 맡게 된 것에 불과하다”며 그의 영화를 페미니즘 담론과 연결지어 설명하려는 시도를 애써 부인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다수는 “영화라는 매체 특성상 주인공을 중심으로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그의 시도 자체를 애써 평가절하할 이유가 없다는 데 입을 모은다. 

젊은 시절의 브래드 피트도 등장한다. 루이스를 유혹하는 꽃미남으로 분했다. (유튜브 캡쳐)

그렇기에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 속 여성 캐릭터뿐만 아니라 주변부로 밀려난 남성 캐릭터의 세심한 활용은 오늘날 더욱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이 영화에서 남성 캐릭터들은 다양하게 묘사된다. 남성우월의식에 사로잡힌 폭력적 인물에서부터, 여성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진상들도 등장하지만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캐릭터들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럼으로써 스콧은 남성을 무조건 여성을 착취하는 악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결국 그는 다분히 남성우월적 사회분위기 자체를 겨냥했을 뿐, 남성 그 자체를 비난한다는 비판을 영리하게 피해갔다. 이는 오늘날 유행하는 급진적 페미니즘 사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많은 여성 영화가 남성 캐릭터를 도구적으로 활용하고 그친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는 있다. 이는 우리나라 독립영화계의 고질적 숙제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의 화제작 <벌새>만 해도, 극 중 남성 캐릭터들이 단 하나도 예외 없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는 비판이 그러하다. 그러니 오늘날 쏟아지는 여성 영화들이 더 높은 평가를 바란다면 <델마와 루이스>의 현대적 성취를 다시금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이견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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