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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의 오늘〕 ①지도자의 여자 

은둔에서 공개적으로, 권력을 가진 김정은의 여자들
정상 국가 이미지로 보이기 위한 변화

  • 기사입력 2020.01.16 10:12
  • 최종수정 2020.02.18 14:01

[우먼타임스 고승화 기자] 북한은 더디지만 내부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성들의 역할과 지위도 변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친 세습체제 속에서 북한 여성들은 권부와 일반 가정, 장마당에 이르기까지 모습이 달라져가고 있다. 북한 여성들의 현재, 그 변화해가는 모습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우상화의 틀 속에 머무른 김일성의 여자들
잘 알려졌다시피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는 많은 여자들이 존재했다. 김일성에게는 공식적 아내인 김정숙과 김성애, 그리고 비공식적 연인인 한성희, 홍영숙, 김송죽 등이 있었다. 

김일성은 1941년 김정숙과 결혼해 김정일을 낳았다. 김정숙은 16세에 빨치산 부대에 입대해 독립운동에 열정적으로 참가했다고 알려진다. 보기 드문 여성 명사수라고 북한 조선대백과 사전에도 기록됐다. 항일운동의 여성 영웅으로 추켜세워지기도 했는데, 사실 이는 훗날 김정일이 실행한 우상화 작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정보국(CIA)이나 김일성의 직속담당 기자였던 한재덕씨 등에 따르면 김정숙은 사실 여장부라기보다는 소박하고 그저 빨래와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 비슷한 여자였다고 전해진다. 

김정숙은 1949년 네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다소 다르다. 이 당시 김일성에게는 이미 다음 여인 김성애가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장면을 목격하고 김정숙이 분노하자 김일성이 김정숙을 발로 차서 결국 유산 끝에 본인도 사망했다는 것이다. 

김정숙이 사망하면서 1952년부터 김성애가 김일성의 공식적 아내 역할을 한다. 1963년 식을 올리고 1970년대 중앙여성동맹위원장 자리에 오르면서 김성애의 세력이 자리잡았다. 그는 민중에게 스스로를 우상화시키는 작업에 열중했다. 김정숙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고 자신과 자식 김평일, 김영일의 위상을 키우느라 애썼다.  

하지만 훗날 김정숙의 아들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자 우상화되는 국모가 뒤바뀐다. 김성애에게 밀려나는 친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김정일은 김성애의 흔적을 빠르게 지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김정숙은 사후에 ‘백두산3대장군: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 ‘항일의 여성 영웅’, ‘혁명의 어머니’와 같은 칭호를 부여받으면서 우상화된다. 

김일성 주석(가운데), 부인 김정숙(왼쪽),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숨기기 급급했던 김정일의 여자들
생모와 계모들을 보며 자란 김정일은 스스로의 여자 관계 또한 꽤나 복잡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홍일천, 성혜림, 김영숙, 고용희(김정은 母), 김옥이 있다. 이 외에 김혜숙, 손희림, 홍영숙, 정혜순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이 다수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5세 연상의 배우 성혜림이다. 성혜림은 김일성의 친구 리기영의 며느리이자 김정일 친구의 형수였다. 다시 말해 유부녀였다. 떳떳하지 못한 관계였기 때문에 비밀리에 부쳐진 여자지만, 둘은 동거까지 했다고 알려진다. 그녀는 슬하에 2017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독살된 김정남을 두었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장남이었지만 개방을 지지하고,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한 사건 등으로 김정일의 눈밖에 벗어나 후계구도에서 밀리면서 중국과 마카오 등에서 유랑생활을 했다. 

김영숙은 김정일의 유일한 정실부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일성이 직접 며느리로 간택한 여인이다. 인민보안국의 타자수에서 시작해 노동당 간부부 문서원으로 일하다가 눈에 띄었다. 순종적이고 남편의 바람을 숙명으로 여기는 전형적인 구시대적 여성이라고 알려진다. 

다음으로 김정은의 친모인 재일교포 고용희가 있다. 고용희는 만수대예술단에서 활동 중이었는데, 김정일의 숨겨진 내연녀 박애라가 고용희를 김정일에게 소개했다. 둘은 동거를 했고 고용희는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낳는다. 그는 김정일에게 가장 사랑받았다고 알려진 여자다. 하지만 김정일의 여성 편력 때문이었을까. 유선암 선고에도 불구하고 유방을 절단하지 않아 결국 사망한다.

마지막 여자로 알려진 김옥은 다른 치정 싸움과 달리 꽤 조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눈에 들면서 1980년 초반부터는 김정일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다. 고용희와 그 자식들과도 원만한 사이였으며, 딱히 눈에 띄는 행보가 없다는 것을 보아 그저 김정일의 숨겨진 여자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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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김정일의 여인들은 공식 활동이 거의 없었다. 물론 인민에게 공개하기에 떳떳하지 않은 관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대 두 지도자들은 공식적인 관계였을 때도 부인들이 대외활동을 하거나 매스컴에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 김정은 곁에는 부드러운 리설주와 카리스마 김여정이 있다

평창올림픽에 참석한 김여정 (사진=연합뉴스)

반면 김정은 집권 이후 권부의 여성들은 역할이 보다 분명하고 대외 활동이 활발해졌다. 우선 제일 가까운 혈육인 친동생 김여정이 있다. 김여정은 김정은 위원장의 일정부터 시작해서 안보, 외교, 언론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김정은이 자신의 최측근에 김여정을 두고 대내외적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두 남매가 사이 좋게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는 인식도 생겨났다. 

특히 김여정이 평창올림픽에 등장했을 때, 뉴욕타임스와 CNN 등 많은 외신이 김여정을 미국의 이방카와 나란히 놓고 존재감을 높게 평가해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선전노동부 제1부부장에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부서 이동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앞으로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김여정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여성은 2012년 모란봉악단 시범 공연을 시작으로 점차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 리설주다.

김정은은 그동안 수많은 현장 시찰에 리설주와 동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언론에 노출시켰다. 젊은 지도자의 부인으로 얼굴을 알린 리설주는 차츰 독립적으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김정은을 대동하지 않고 중국 외교팀을 만난다든가,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중요 무대에 등장한다는 것은 이전 북한 지도자의 배우자들과는 현저히 다른 모습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때는 김정숙 여사와 함께 ‘패션외교’, ‘예술외교’ 등의 키워드를 만들면서 냉랭한 남북 분위기를 한층 녹였다고 내외신으로부터 평가받았다. 

리설주는 2018년 ‘동지’에서 ‘존경하는 여사’로 호칭이 격상됐다. 여사라는 호칭은 1970년대 김일성이 김성애에게 부여한 것이 마지막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리설주의 잦은 공식석상 등장은 북한 내부적으로도 일반 인민들 사이에 큰 열풍을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초반에는 일명 ‘딴따라’ 출신이 영부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반감이 꽤나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리설주의 자유로운 스타일과 세련됨, 화려함은 수수했던 일반 여성들의 패션에도 다양함을 가져왔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여자들, 주체적으로 나아간다
선대 지도자들의 여자들은 숨겨지기 급급했다. 이미지도 후대에 의해 수동적으로 빚어졌다. 그들은 대개 강하고 혁명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우상화 작업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미지를 주입했다. 반면 김정은 시대의 여성들은 대중 앞에 수시로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백두산 등반에 함께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사진=연합뉴스)

시대가 반영된 탓도 있겠지만 열사, 조국을 위한 희생 같은 강렬함보다는 패션이나 예술과 같은 문화적, 개인적 성향에 더 어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김정은의 여동생, 김정은의 아내 같은 수식어가 아닌 주체적 모습으로 자주 노출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 권부의 여성들은 과연 진정성 있게 변하고 있는 걸까. 지도자 옆에 선 여자들의 변화에는 다양한 해석이 따른다. 북한이 세련된 영부인을 공개적으로 내세움으로써 폐쇄적인 국가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정상국가라는 인상을 대외에 심어주고자 한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분석이다. 또 김정은이 어린 나이에 지도자 승계를 받았기 때문에 보다 빠른 시간 내에 안정적인 이미지를 쌓고자 리설주를 자주 동반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 외에도 김정은이 유학 생활을 통해 보다 진취적인 사고를 가졌다는 설이나, 선대의 복잡한 여자 문제가 권력투쟁으로 번지는 것을 보고 자라 자신은 다르게 행동한다는 설 등 여러 분석이 있다. 

리설주를 대동함으로써 북한 인민에게 가정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심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고 해석된다. 실제로 김정은 집권 초기 리설주가 일반 가정을 방문해 손수 컵을 씻던 장면은 북한 주민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파격적으로 와 닿았다. 

동기가 뭐가 됐든 변화는 시작됐다. 김정은의 최측근에 있는 여자들이 가진 잠재력과 소프트파워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 

가부장적 권력구조,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여성 진출은 상징적인 진화이다. 케케묵은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 조금은 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미지 마케팅’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아직은 김정은의 여성관이나 지도자 패밀리의 여성 역할 변화를 정의하기엔 성급한 면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북한 최고 권부의 여성들은 지난 날보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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