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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㉝

등정이 가져다 주는 위대한 교훈은, 살아 내려와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기사입력 2019.11.13 11:04
■제임스 램시 울맨ㅣ출판년도 1956년ㅣ쪽수 384쪽ㅣ출판사 콜린스

루디야드 키플링이 말하기를, “숨겨져 있는 산을 찾아 나서라. 가서 그 산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오라. 잊혀졌지만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 무엇을 발견하리라.”

그래서 많은 탐험가와 등산가들은 혼자서, 또는 몇몇이 그룹을 지어 이 지구상의 오지와 고산 탐험에 나섰다. 그들은 알프스의 빛나는 바위와 얼음의 벽, 북미 대륙의 거친 산맥과 코카서스, 안데스,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서 수천 마일을 탐사해 나갔다. 그들은 남극과 북극의 정상을 찾아냈고 지구 곳곳을 뒤져서 초등반을 시도해 왔다.

어떤 이는 정상에 올랐고 어떤 이는 그러지 못했다. 또 어떤 이는 산맥 뒤에 숨겨진 승리와 성취감을 획득했고 다른 이는 절망과 좌절, 죽음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그 과정에서 위험과 상실, 고단함과 탈진 등의 고통스런 댓가를 지불해야 했으며, 이러한 고통들이 겪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결국 이 험난한 탐험의 의미와 위상은, 그들이 일궈낸 성취나 업적이 아닌 그들의 순결한 영혼 속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세계의 등산사에서 몇몇 괄목할 만한 성과들은 이내 빛을 잃고 사라졌지만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좀 더 위대한 경험들이 축적되었다. 이것이 바로 등산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정도正道다. 등산은 일정 부분 어느 경계선까지는 스포츠에 가깝다. 그러나 일반적인 스포츠에서 나타나는 규칙이나 스케줄, 시합이나 경기대회, 관중 등의 요소는 적절치가 않다.

특히 관중이라는 요소가 그러한데, 등산에는 같이 움직이는 동료대원이 필요한 것이지 관전하는 제3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등산가와 동료대원, 그리고 산만이 그 공간을 채울 뿐이다. 마터호른이나 에베레스트와 같은 극히 일부의 경우에는 누구도 동행하지 않을 수가 있다. 등산가 자신이 스스로 채점을 하고 보상을 하고 때로는 벌점을 주기도 한다.

흔히 ‘정복’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편하게 말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산은 결코 정복되지 않는다. 마터호른의 낙석은 1세기 전의 그것과 동일하게, 지금도 심각한 수준으로 등산가들을 위협하고 있다.

융프라우나 마운트 레이니어는 날카로운 레지와 눈덮인 바위로 여전히 등산가들을 압도하고 있으며, 영국의 캐언곰이나 스노우돈 같이 고도가 낮은 산에서도 추위와 폭설, 폭풍으로 많은 등산가들이 희생되고 있다.

고산에 이르는 왕도는 없다. 기술연마와 정보, 신중함과 용기, 인내심만이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인도할 것이다. 등산에서 공격이나 패배자는 없다. 이 진리를 모르는 등산가는 나치 잔당 같이 어리석고 무모하다. 등정은 산의 정상을 정복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등정이 가져다 주는 위대한 교훈은 살아 내려와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등산은 스포츠나 정복, 그 이상의 무엇이며 현실적인 장애물이나 위험한 지역을 돌파하는 것이 모험이라고 한다면, 그 모험 또한 등산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드 소쉬르의 고통스런 욕망의 몽블랑, 윔퍼의 두려운 회색 벽에서의 투쟁, 머메리의 그레퐁 슬랩에서의 1인치 올리기, 아브루찌 공의 끝없는 지평선, 엘조그와 라슈날의 백색 죽음의 안나푸르나, 말로리와 어빈의 안개 속 에베레스트에서의 실종, 스마이드의 등정 직전에서의 후퇴 등의 이야기들은, 그들의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신화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단지 잘 짜여진 한 편의 멜로드라마로 구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신화들은 다행히도 순결한 인류의 영혼이 심각한 고뇌와 경험을 통해 쟁취한 유산이 되었다. 등산의 길은 인생살이와 같다. 삶에 대한 태도와 적응방식과 같다. 산은 항상 거기 있어 우리는 언제라도 오르면 된다. 바다는 건너면 되고 아프면 고치고 잘못된 일은 바로 잡으면 된다.

표면상으로는 다양한 차이점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도전’이다. 우리가 동물과 다른 점은 ‘도전’을 한다는 사실이다. 등산에 있어서 도전의 대상은 무한하다. 그 대상이 반드시 에베레스트이거나 8천 미터 자이언트의 처녀봉일 필요는 없다.

히말라야와 안데스, 알프스, 스코틀랜드, 노르웨이의 수많은 미지의 세계는 아직도 등반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산을 오르면서 모험을 찾고 정상에서 경이로움과 환희를 맛본다. 그것이 초등이든 몇천 번째이든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등산은 믿음과 자신감의 역사다. 우리들 중에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고통을 감수할 등산가들이 여전히 많다. 안전함과 평화가 인생의 필수조건이자 목표는 아니다. 고산등반이나 클라이밍 자체는 그 의미가 크지 않다. 산에 도전하고 싶고, 또 그 도전을 시도하려는 의지가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적을 물리쳤는가? 아니다. 우리 자신을 이겨냈을 뿐이다.”

자신의 무지와 두려움을 이겨내야 진정한 승리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산에서만 터득할 수 있는 지혜다. 중요한 것은 등정이 아니라 정상을 향한 과정에 있고, 승과 패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고 등산이라는 게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글ㅣ호경필(전 한국산서회 부회장, 대한민국산악상 산악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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