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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㉚

-대원들의 얼굴은 수염투성이고 입술은 터서 피로 범벅이 되었고 악마 같은 기괴한 모습들로 바뀌었다

  • 기사입력 2019.10.16 10:38
■저자 윌리엄 홀게이트ㅣ출판년도 1994년ㅣ쪽수 154쪽ㅣ출판사 에르네스트 프레스

1980년 파타고니아의 티에라 델 푸에고를 탐험하던 윌리엄 홀게이트(저자)는 우연히 중앙아시아의 지도에서 아무런 표시없이 백색으로 남아있는 지역을 발견한다. 중국의 신장주와 티벳에 둘러싸여 자연적으로 고립된 아르카 타그Arka Tagh 산군이 그것이다. 아르카 타그는 북쪽으로 신장의 타클라마칸사막, 남쪽에 티벳의 창탕고원, 동쪽은 차이담의 소금벌판과 늪지대, 서쪽에는 쿤룬고원이 가로막아 난공불락의 성곽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무인구無人區(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다.

UFO가 나타나고 예티Yeti의 발자국이 발견되고 핵실험도 있었던 통제된 지역 아르카 타그는, 신장 위구르족의 튀르크어로 ‘먼 곳에 있는 산’, 또는 ‘숨어 있는 산’으로 해석된다. 19세기 말부터 유럽의 탐험가들에 의해 탐험되었지만 위구르족이나 중국, 티벳인들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영국의 에릭 십튼이 1940년대 카슈가르 총영사 시절에 이 지역에서 탐험을 한 기록이 남아있다.

홀게이트는 아르카 타그의 탐험을 위해 10년간 준비했고 1990년에 대원모집 광고를 냈다. 영국의 팀 마틴이 선발되고 중국과학연구원 신장지부의 지리학자 황민민과 첸이 지원하고, 다른 두 명의 중국인이 합류했다. 1990년 8월 15일, 홍콩을 거쳐 우룸키에 도착한 원정대는 황과 첸의 안내로 과학원 캠퍼스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장을 풀고 본격적인 원정준비에 들어갔고, 국가기밀인 인공위성 촬영지도를 입수해서 면밀히 분석했다.

이번 원정등반의 전진기지이자 사람이 거주하는 마지막 마을인 배쉬 말군에 도착하니, 이방인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먼지를 일으키며 모여든 주민들이 너무 친근하게 다가와 감동을 받을 정도다. 수많은 역경과 불운을 이겨 낸 저력 때문인지 강인한 인상을 준다. 배쉬 말군은 산악지역이 시작되는 곳으로 좁은 하천을 따라 진흙으로 지어진 집들이 죽 늘어섰는데 적막하고 황량한 분위기였다.

나무들은 보이지 않았고 마을은 대평원 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어, 마치 하늘을 향해 영혼의 구원을 바라는 듯한 형세다. 낙타몰이꾼인 압둘라와 하심이 합류하면서 전대원 8명이 식량과 등반준비로 분주하다. 압둘라는 이번 등반의 첫 번째 장애물인 무슬룩 타그에 다행히도 미국원정대를 안내한 경험자였다. 무슬룩 타그는 만년설이 있는 고산으로 배쉬 말군에서 보면 우뚝 솟아있어 무척 드라마틱하게 생긴 산이다. 홀게이트는 이 무슬룩 타그를 넘어 우루그수를 거쳐 아르카 타그의 카라무란 다반을 목표로 등반 일정을 잡았다.

중국에서는 모든 원정대에 무전기를 의무적으로 지참하게 했지만, 중국 무전기는 부피가 너무 크고 작동시키려면 두 명의 전담요원이 필요할 정도로 복잡한 기종이다. 홀게이트는 아르카 타그 산군의 고립 정도가 심하고 높기 때문에 헬기나 트럭이 접근할 수 없어, 조난이 되더라도 구조될 확률이 극히 미미하다고 판단하여 무전기를 포기했다. 8일간 준비를 마치고 19마리의 낙타에 각각 100㎏의 식량과 장비를 싣고 무인구를 향해 출발한다.

첫 날 20㎞를 5시간 진행하고 3,210미터 지점에 캠프1을 설치했다. 홀게이트는 고소가 주는 영향으로 숨을 가쁘게 쉬며 몹시 고통스러워 한다. 다음날 아침 추위에 떨면서 캠프를 철수하는데, 모든 짐을 낙타에 매다는 일은 압둘라와 하심의 가장 고되고 긴장된 작업이다. 아침에 기상해서 캠프 철수와 식사, 패킹까지 4시간이 걸렸다.

대원들은 이 소모적인 시간낭비를 걱정했다. 하지만 낙타의 속성이 일정한 시간에만 이동하고 오후 시간이 최적이라는 압둘라의 설명으로 오전에는 등반준비만 하기로 했다. 낙타의 안장을 조이고 짐을 고쳐 매고 고삐를 고정시키느라 수시로 이동을 중지해야 했다.

캠프3부터는 1893년 이 지역을 탐험했던 리틀데일의 루트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고, 우루그수를 향해 사막을 횡단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의 황이 원정대에서 이탈하겠다고 선언한다. 겨울이 다가오고 이런 고립된 지역에서 악천후에 갇히게 되면 생존은 보장되지 않는다.

황은 이미 의지가 약해졌고 등반의 성공에 대한 확신도 적었다. 홀게이트의 리더십이 검증되는 순간이다. 수십 년 전에 이 길을 지나갔던 리틀데일과 스벤 헤딘의 절대적인 리더십이 간절했지만, 중국-영국 합동원정대의 공동대장인 황의 의사결정에 간섭하기가 쉽지 않다. 4,300미터 지점의 사막에서 무더위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등반을 계속 진행했다. 태양은 지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불태우고 익히는 듯했다. 캠프5에서 황은 화해를 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우정을 회복했다.

우루그수는 두 달 전만해도 위협적인 수위로 최악의 장애물이었지만 지금은 말라 있어 진행에 무리가 없다. 계곡 중간에 캠프6를 설치하고 휴식일을 갖기로 했다. 장비를 수선하고 식량을 점검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데 이번에는 왕하이가 흔들린다. 어린 딸과 부인 곁을 이처럼 오랫동안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젊은 왕하이로서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 원정대에 자발적인 열정과 의지로 참여한 것이 아니었고, 황의 부탁으로 멀리서 온 손님을 모신다는 단순한 개념으로 참가했던 것이다. 홀게이트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인생관과 가족에 대해 얘기를 해주며 설득했다.

짐의 중량이 줄어들자 하루에 24㎞를 전진했다. 그러나 고소지대에 풀이 없어 낙타들의 식량이 부족하고 점점 야위워져 갔으며 기운을 쓰지 못했다. 배설물도 조그맣고 딱딱한 볼이 되어 대원들의 근심이 더 깊어졌다. 캠프7을 지나자 강에는 우루그 무스타그 빙하의 얼음들이 떠내려왔고 어렵게 거슬러 올라간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바람이 불고 고소가 주는 두려움 때문에 매듭을 묶고 텐트를 설치하고 땅을 파는 모든 작업이 더디어졌다.

캠프9에 접근하면서 암벽지대를 넘어서자 전혀 새로운 세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음과 빙하, 크레바스로 가득 찬 백색의 세계가 나타난 것이다. 얼음 기둥과 슬랩은 꽁꽁 얼어붙은 절의 형상이고, 그 밑으로 우루그수 강으로 이어지는 터널이 지나가는 거대한 호수였다.

그 호수는 얼음과 바위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모습이었고 끝이 안 보이는 넓이의 완벽한 평원이었다. 회색빛 하늘과 공간을 압도하는 고요와 적막은 그들을 숨막히게 했고 더 이상 전진할 엄두를 잊게 했다. 이 호수 역시 지도에 나타나지 않아 그들은 초등정을 이룬 셈이다. 홀게이트와 첸은 산소부족에도 불구하고 5,520미터 지점까지 올라가 호수와 그 주변의 산군을 정찰하는데 성공한다.

히말라야 같은 웅장함과 수직의 스릴은 없었지만 지구상의 그 어느 곳보다 고립된 이 지역의 산들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오히려 평화롭고 한적한 천상의 세계를 보는 듯했다.

다음날 카라무란 다반을 향한 최종점검에 들어가는데 압둘라가 목의 통증과 두통을 호소한다. 다리까지 부었는데 뇌수종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뇌수종의 가장 빠른 처방은 고도를 낮추는 것이다. 중간보급 지점까지는 1주일이 걸리고 전화통신을 하려면 3주일을 더 가야한다. 또 전화가 되더라도 특별한 구조수단이 없는 열악한 조건이다.

응급 의료처치를 할 수 있는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홀게이트는 자신의 비망록에 적혀있는 처방대로 시도해봤는데 기적적으로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압둘라의 발병으로 하루를 더 지체한 원정대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홀게이트는 압둘라를 남겨둔 채로 카라무란 다반을 향한 길을 개척하고 드디어 5,490미터 지점의 정상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티벳고원을 내려다봤다.

한 달 동안의 등반으로 대원들의 얼굴은 수염투성이고 입술은 터서 피로 범벅이 되었고 악마 같은 기괴한 모습들로 바뀌었다. 홀게이트는 등반을 좀 더 강하게 밀어 붙이지 못한 점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대원 8명 모두 무사히 내려왔고 19마리의 낙타와 함께 훌륭한 팀을 이루어 지도의 공백지역에 선을 이었다는 성취에 만족했다. 그리고 아직도 대자연의 역동적인 힘과 신비, 경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무명봉과 호수, 고개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새로운 설레임이 요동친다.

글ㅣ호경필(에코로바 커뮤니티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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