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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무나 될 수 없는 여성리더

  • 기사입력 2019.09.30 15:37
우먼카인드 표지 모델로 선정된 인디라 간디. (사진=박종호)

[우먼타임스 박종호 기자] 얼마 전 회사 앞 서점을 들렀다. 매거진 섹션을 둘러보다 문득 발이 멈추었다. 우먼카인드(Womankind)라는 잡지의 표지모델이 어디서 많이 본 인상이다. 영락없이 인도의 전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다.

인디라 간디는 독립영웅이자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외동딸이다. 우리에게는 네루가 쓴 세계사를 통해 알려져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네루가 저서에서 늘 언급했던 딸이 바로 그녀를 의미했다. 그녀 역시 아버지를 따라 직업 정치인의 길을 걸었고, 오랜 기간 총리로서 인도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끝내 경호원에게 암살당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대단히 영향력있는 여성이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으나, 페미니즘 잡지의 표지에 실릴 만한 인물인지는 의문이다.

참고로 우먼카인드는 호주에서 발행하는 계간지로, 우리나라에서의 인지도는 아직 그저 그렇지만 영미권에서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궁금해서 잡지를 들고 인디라 간디가 나온 글을 펼쳐보았다. 아무래도 인도최초의 여성총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나보다. 그렇다면 차라리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상징성이 낫지 않았을까?

최초의 선출직 여성총리는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로 1960년부터 총리 직을 지냈다. 정치인으로서의 업적과 자질은 둘째 치고 그녀는 늘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파키스탄의 전 총리 베나지르 부토 역시 다소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 내에서 여성인권의 상징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인디라 간디는 어떠한 측면에서 ‘여성 리더’로 분류될 수 있을까? 단지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이번호 우먼카인드에 실린 글은 비교적 담담하게 인디라 간디의 삶을 기술했다. 하지만 여성지에 실릴 글로서는 부족하다. 왜 여성리더로서 여성지의 지면에 할애되어야 할지에 대한 설명이 부재했다. 사실은 그녀가 여성리더로서의 자격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난 시점에서부터, 그 누구보다도 권위주의적인 이미지를 공고히 해왔다. 여러 역사학자들은 그녀를 두고 ‘아버지보다 더욱 아버지같은 리더십을 구축했다’고 평했다. 

오히려 당시 사람 기준으로는 흔치않게 호혜적 평등과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했던 아버지와 달리, 인도 고유의 민주주의와 연방주의의 가치를 상당 부분 훼손했다는 평이다. 정권유지를 위해 분쟁지역의 갈등을 조장하는 일도 흔했다. 자연히 여성 인권에는 관심이 없었다. 유엔개발계획 등에서 발표하는 여성인권 관련 지수는 인디라 간디 시절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일전에 남아시아에 여성 지도자들이 많은 이유를, 페미니즘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아닌 가부장적 민족주의의 변형에서 비롯된다는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워낙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지금이니, ‘여성 리더’에 대한 좀 더 심도깊은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만 적어도 인디라 간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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