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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등반 중 본능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산에서의 생존확률을 높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 기사입력 2019.08.26 14:36
■빅터 선더스ㅣ출판년도 1994년ㅣ쪽수 175쪽ㅣ출판사 호더 앤 스터튼

1992년 봄, 빅터 선더스는 이사를 준비하던 중에 절친한 자일파트너인 앤디 판쇼가 등반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선더스와 판쇼는 많은 날을 함께 등반했었고 정신과 육체가 이격될 정도로 술도 많이 마셨었다. 치과의사였던 판쇼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고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갔는데 선더스가 한동안 방황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 보닝턴이 인도-영국 판치출리 합동원정대에 선더스를 초청했다. 판치출리 산군은 인도의 쿠마온히말에 있는 6천 미터급의 고산지역으로 문명세계와는 철저히 차단된 곳이다. 판치출리 산군의 개척은 1929년 휴 루트렛지와 1950년대 하인리히 하러 등에 의해 탐사가 되었지만, 1976년 인도-티베트 국경수비대에 의해 판치출리 2봉(6,904m) 만이 초등되었다. 워낙 오지였고 이 지역만의 특이한 악천후로 인해 아직도 미등봉이 많이 남아 있다.

인도팀은 해리쉬 카파디아가 이끌고 영국팀은 보닝턴을 대장으로 여섯 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었는데 휴대폰이나 무전기 등의 통신수단 없이 순수하게 알파인 스타일로 도전하기로 했다. 봄베이에 도착한 보닝턴은 자신의 등산인생 30년과 에베레스트 남서벽 초등에 관한 강연을 했고, 스티븐 베나블즈는 1988년 무산소 단독으로 등정한 에베레스트 캉슝페이스(동벽) 등반에 관한 강연으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특히 보닝턴은 대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리더십의 기법과 개념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고 많은 호응이 있었다.

봄베이에서 열차로 델리까지 와서 매드콧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매드콧의 원주민들은 이방인은 물론이고 인도 대원들에게도 무뚝뚝하고 반기는 기색이 전혀 없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외국인 기피증의 결과인데 눈빛은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깊이 파여 있었고 무표정한 얼굴은 생기가 없었다. 이곳에서 포터를 모집해야 하는데 대원들의 걱정이 크다.

발라티 빙하 3,200미터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식당텐트를 만들고 식량과 장비 등을 분류했으며, 베나블즈는 자는 시간 이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데 보냈는데, 나중에 그는 이 등반의 기록들을 모아 《A Slender Thread》(2000년, 아드레날린 출판)라는 등반기를 발간했다. 인도팀은 판치출리 2봉 남서릉으로 등반 루트를 잡았고 딕 렌쇼와 베나블즈, 스티븐 서스테드, 선더스는 라지람바(6,537m) 신 루트에 도전하기로 했으며 보닝턴과 그레엄 리틀은 판치출리 2봉 서릉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로 했다.

날씨가 흐려 며칠을 캠프에 갇혀 있던 선더스팀이 6월 1일 밤에 라지람바 봉을 향해 출발했다. 낮에는 두껍고 검은 구름층이 하늘을 덮고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지만, 밤이 깊어지고 해가 뜨기 전까지는 하늘이 개이는 예측 불허의 괴상한 날씨 변화가 이어졌다. 크레바스 구간에서는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집중했는데, 이런 긴장의 연속지대를 경험하면서 산에서의 생존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이 축적되곤 했다.

각자 로프를 풀고 조심스럽게 버트레스 구간을 통과했고 해가 뜨면서 눈이 녹자 비박지를 찾았다. 강렬한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오후에는 거의 탈진상태가 되었다. 히말라야 등반은 극한의 온도와의 싸움이라는 서스테드의 경고가 예사롭지 않다.

하루를 쉬고 다음날 리지 위의 커니스와 심설 때문에 등반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수직의 벽 구간에서는 레이백 자세로 크랙을 돌파했다. 좁은 리지와 작은 빙벽들이 자주 나타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오른쪽은 커다란 커니스가 형성되었고 왼쪽에는 급경사의 사면이 끝없이 이어졌다. 안개가 짙게 깔려 바람이 불 때마다 대원들이 보였다가 다시 사라지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이 폭풍으로 바뀌었고 얼음 지대가 태반이어서 비박하기가 쉽지 않다.

히말라야의 커니스는 보통 동쪽을 향해 형성되었는데 불안정했지만 눈의 상태는 양호했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리지 아래로 계속 이동했다. 폭풍은 서로 간의 대화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거칠어졌고 아이스스크루로 확보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하강을 진행했다. 간신히 반대편 사면에 조그만 테라스를 만들어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다음날 리지 등반보다 커니스 라인을 따라가는 방식을 택했는데 얼음이 섞여있는 혼합등반이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아침 7시, 드디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동쪽으로 네팔 국경의 아피와 칸지로바가 보였고 서쪽으로 난다데비와 창가방, 두나기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한편, 라지람바 등반에 4일을 예상했지만 6일만에 전진캠프에 도착했고 6월 7일, 인도팀의 두 대원이 판치출리 2봉 재등에 성공했고 보닝턴과 리틀은 서릉 루트 초등정에 성공했다.

매드콧부터 보이기 시작한 판치출리 산군의 파노라마는 부드럽게 보이지만 급경사의 빙벽과 혼합등반을 요구하고 빙하까지 2천 미터의 급사면이 클라이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가디라 계곡까지는 사냥꾼들의 출입이 있었지만 판치출리 빙하로는 인간의 접근을 거부했었다. 이들은 미등봉인 판치출리 5봉(6,437m) 등반을 위해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3,500미터 지점의 바가토라 패스를 지나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대원들은, 남은 등반기간이 5일뿐이어서 최대한 신속하고 적당한 난이도의 루트를 찾기로 했다. 거대한 세락이 있었지만 그다지 까다롭지 않게 보이는 사우스콜을 통한 등반 라인을 선택했다. 베나블즈와 서스테드가 러셀을 하며 루트를 개척해 나갔다. 빙하의 구조가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 인상적인데 무척 힘들고 겁도 나는 종잡을 수 없는 길이었고, 그들이 지나가는 루트 위에 서 있는 빙탑들이 위협적으로 압박해 왔다.

눈사태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판단한 지점에 텐트를 설치하고 잠을 청했는데 빙탑들이 무너지면서 그들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기겁을 하며 곧바로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악몽의 밤이 시작되었다. 눈은 크러스트가 되어 여전히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고 전진을 재촉하여 5,850미터 지점의 사우스콜에 도착했다. 정상까지는 6백여 미터 남았지만 식량 부족으로 하루를 지체했다. 눈사태가 서너 차례 이어졌는데 콩코드 기가 이륙할 때 나는 굉음이 들렸다.

다음날 새벽 2시, 보닝턴이 갑자기 등정을 포기하고 잔류하겠다는 뜻밖의 선언을 했다. 그가 지쳐있기는 했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판단인 것 같았다. 등반 중 본능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산에서의 생존확률을 높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2~3백 미터의 혼합등반 구간을 지나면 정상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리지가 나타날 것 같다.

서스테드가 선등을 하며 몇몇 크럭스를 넘어섰고, 빙벽구간을 프런트포인팅으로 트래버스했다. 남봉 부근에 도착하니 구름이 몰려와 그들을 이승과 분리하려는 듯이 뒤덮었다. 그들은 더욱 긴장하며 스텝을 위로 옮겼다. 정상에는 12시 이전까지 도착해야 어두워지기 전에 베이스캠프로 귀환 할 수가 있을 텐데, 남봉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다.

빙벽 트래버스 구간에서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이 지점에서 하산하자고 했지만 렌쇼와 베나블즈가 한 시간만 더 가자고 우기는 바람에 등반을 계속 진행했고, 6월 20일 오후 3시에 등정에 성공했다. 대원들은 지체없이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고 많이 지쳐 있어서 위험한 하산이 무척 불안했다.

앵글 하켄과 너트로 확보를 하며 하강을 진행했는데 베나블즈의 앵커가 빠지면서 50미터를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렌쇼의 제동이 성공하면서 더 이상의 추락은 멈출 수 있었지만 베나블즈의 몸무게를 고스란히 지탱하고 있는 렌쇼의 고통은 엄청났다. 베나블즈에게 소리쳐 봤지만 대답이 없다. 서스테드가 지쳐가는 렌쇼를 도와 베나블즈를 확보했다.

베나블즈는 죽지 않았지만 왼쪽 발목과 오른쪽 무릎이 부러지고 가슴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그는 혼돈의 상태에 빠져있었고 무사히 살아서 내려갈 수 있을지 누구도 자신이 없다. 대원들은 베나블즈의 출혈을 막기 위해 부러진 다리를 배낭에 집어넣고 로프로 단단히 묶어 고정시켰다. 12시간에 걸친 하산은 그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고통의 연속이었다.

식량이 부족해서 먹지도 못했겠지만 거동이 쉽지 않아 배설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5,600미터 지점의 텐트에서 보닝턴과 서스테드가 구조를 요청하러 내려갔고 나머지 대원들은 베이스캠프를 오가면서 식량을 옮겼다. 텐트 안은 베나블즈의 출혈로 피 냄새가 진동했고 눈이 계속해서 내리는 바람에 대원들은 점점 고립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3일 후 구조 헬기가 떴고 몰골이 잠자리같이 변한 베나블즈를 무사히 보낸 대원들은, 사흘을 걸어서 판치출리 계곡을 겨우 빠져나왔다.

글ㅣ호경필(에코로바 커뮤니티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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